영국 #3 무료 밀크티 나눔

by 이가연

영국 도착한 지 24시간도 되지 않아 중국어를 했다. 이게 얼마만인가. 작년 졸업식 때가 마지막 아닌가. 아, 5월에도 런던 사는 중국인 친구 봤으니 그때가 마지막이다.

튜브 타려고 기다리는데 갑자기 옆에 있던 중국인이 내게 말을 걸었다. 보통 말 거는 건 내가 하는 일이라, 누가 걸어주면 반갑다.

중국인이 중국말로 말을 걸면 원래는 기분이 나빠야 맞긴 하다. 그런데 그런 걸로 기분 나쁘면 영국에서 못 산다. 사실 무엇보다... 한국인인데 중국어를 해서 깜짝 놀라게 하는 그 모먼트가 좋다. 짜릿하다... 외국어를 잘해서 생기는 일들은 언제 칭찬 받아도 좋다.

나에게 말 건 이유는 자기들이 아이스박스에 가지고 있는 밀크티 하나를 주고 싶어서였다. 그냥 주는 게 아니라 무슨 앱 회원가입하면 준다고 했다. 한국이었으면 '뭐여. 신천지 신종 수법인가.' 했을 수 있다.

'오와 먹을 거...' 하며 회원가입 했다. 이 친구들은 밀크티를 무슨 한 20개를 아이스박스에 넣어 이동하고 있었다. 내가 같은 중국인인 줄 알고 주려고 한 거다.


너네 차타임 아냐며 거기도 대만 밀크티 집인데 내가 제일 좋아한다는 등 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들은 런던에서 학교 다니는 학생들이라 했다. 지하철 타고 한 30분 정도 같이 가서 좋았다.

9시에 호텔에서 출발해서 2시면 상당히 피곤한 시간이었다. 보통 나간지 3-4시간부터 신호가 온다. 난 이미 6 천보 걸었을 때부터 발이 아프다고 생각했는데, 만 2 천보 걸었다. 지쳐있는 와중에, 나에게 먼저 말 걸어주고 무료 밀크티도 줘서 좋았다.

차타임에서는 늘 오리지널 밀크티나 초코 밀크티만 마셨는데, 처음으로 말차 밀크티를 마셔봤다. 딱 그 대만 밀크티 프랜차이즈 맛에 말차만 들어간 느낌이 났다. 그리고 내가 원체 토핑 버블 들어가는 걸 안 좋아하고, 노 토핑을 고수하는데, 내가 먼저 말하지 않아도 "버블 없는 거도 있는데 줄까?"하고 20개 중에 뒤적뒤적해서 찾아줬다.

그 친구들이 먼저 내리고, 나는 다음 역에서 내렸다. 다음 역까지 가는 와중에, '너무 행복하다'라고 생각했다. '사람이 일상에서 너무 행복하다고 생각할 일이 있나. 보통 아무 일도 안 일어난 평범한 하루가 행복한 거 아닌가. 역시 영국은 +100, -100의 나라다. 행복하다고 속으로 말하는 일이 생긴단 게 얼마나 좋나.' 하며 튜브에서 내렸다. 한 +50쯤 된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30, -30의 나라다.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갑자기 우산도 없는데 비바람이 미친 듯이 몰아쳐서 +50에서 갑자기 잠시 -10을 맛봤다. 5분만 기다렸다가 걸었으면 비 한 방울 안 맞을 수 있었는데, 소나기인 줄도 모르고 비바람을 뚫고 걸었다. 진짜 우산 없이 걷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 수준의 강한 비바람이었는데 앞으론 소나기일 수 있단 걸 염두하고 어디 피신해야겠다. 특히 하늘이 저렇게 퍼렇디 퍼렇다가 갑자기 어두워져서 비 온단 건, 소나기다.

버킹엄 궁전을 갈까, 세인트 폴 대성당을 갈까 고민하다가 그냥 호텔로 향해서 좀 아쉬웠었다. 하지만 이따 공연을 잡아둬서 내 컨디션상 당장 호텔로 가야 한단 걸 알고 있었다. 무리해서 어디 하나 더 구경하는 건 내게 중요하지 않다. 저런 순간, 저런 에피소드가 내게 행복이다. 내게 여행이란 사람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여행의 행복 90%를 좌우한다. 오늘 낮 동안 사실상 임팩트있게 한 건 아무 것도 없었는데, 참 감사하고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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