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제일 강력한 전율을 느꼈다. 런던에서 노래를 불러본 것도 처음, 프로로서 노래한 지 10년 차인데 이런 전율도 처음이었다.
'아직, 너를'은 작년 4월 영국에서 쓴 노래다. 이 노래를 쓰곤, '하 아직도냐. 아직도 얘 가지고 곡이 나오냐.'하고 한숨 쉬었다. 그리곤 이 곡이 내 삶을 바꿨다. 미니 앨범의 타이틀곡이 되고, 노래하며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되는 게 뭔지 알게 되었다.
이게 다 여수에서 이 노래를 감정 과잉으로 실망스러운 경험을 한 덕이다. 오늘 전율을 느낄 때는, '감정적으로 되면 안 된다, 음정 잡아야 한다'라는 걸 생각했다. 막판엔 거의 마이크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버텨야 돼. 버텨야 돼.' 외치며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
영국에서 학교가 아닌 장소에서 한국 노래를 불러본 건 이번에 두 번째다. 전에는 '착해 빠진 게 아냐'를 불렀다. 한국 노래를 해도 되나, 싶었는데 사람들이 막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드는 걸 보고 안심했었다.
노래가 끝나고, 어떤 남자가 내 이름 좀 적어달라고 했다. 공연 기록을 하는 사람 같았다. 내가 자작곡이 모르는 언어인데 괜찮았냐고 묻자, 정말 파워풀했다고 딱 봐도 무척 감동받은 얼굴로 얘기해 줬다.
원래 팀당 3곡인데, 오늘 참여자가 너무 많다고 이메일로 보낸 엠알 중에 2곡을 고르라고 했다. '그런 너라도', '미녀와 야수', '아직, 너를' 중에 골라야 했다. '미녀와 야수'는 영어 노래니 무조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굳이 그럴 필요 없었다. 미녀와 야수보다 자작곡을 백 배는 만족스럽게 불렀다. 굳이 오늘의 아쉬움을 찾자면, 자작곡만 두 곡 했으면 더 좋았겠다.
뭘 부르든 그냥 잘 부르면 된다. 다른 사람에게도 그 두 번째 자작곡이 정말 좋았다고, 가사를 알아들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무슨 얘기냐고 물었다.
그 몇 초는, 내가 태어나 겪은 최대의 쾌락이었다. 그동안 노래하면서 전율이 돋았던 순간들을 안다. 이 노래를 앨범 녹음할 때도 그랬고, 펍에서 라이브 했을 때도 그랬다. 그때 점원도 그 노래가 제일 좋았다고 했다. 제발 그 전율을 항상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복불복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집에 왔던 기억이 있다. 늘 똑같은 부분에서 전율을 느낀다. 마지막 후렴인 '아직 너를 사랑해서 지울 수가 없는 거야'부터 '3단 사랑해'까지다.
오늘은 차원이 달랐다. 정말이지 지금껏 겪어본 전율의 오십 배, 백 배쯤 되었다. 소름이 돋다못해, 온 장기가 다 달아오른 기분이었는데 그걸 잘 견디고 부른 것에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건 그냥 이뤄진 게 아니다. 첫 라이브에선 '아하. 감정이 확 실리는 건 좋은데, 음정까지 흔들릴 수 있구나.' 배웠다. 두 번째 라이브에선 '녹음 때와 비슷한 전율을 느낄 수 있구나. 이걸 어떻게 해야 다음에도 똑같이 할 수 있을까.' 의문을 품었다.
세 번째 라이브는 강릉이었는데, 이번엔 집중을 제대로 못했다. 모니터링 환경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게 ADHD 탓이라 집중을 못하는 건지, 어떻게 해야 이 약점을 보완할 수 있을지 고민이 들었다. 이번이 네 번째였고, 이번엔 어떻게 하면 1절부터 더 집중할 수 있을지 연구하면 될 거 같다.
오늘도 사실 1절을 부르는 동안에는 각종 잡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집중해야 해. 시선 계속 저 멀리 봐. 앞에 사람들 팔짱 끼고 있다. 이쪽 쳐다보면 집중 깨질 수 있으니 사람들 보지 말고 저기 보자. 이야 그래도 사람들 조용히 잘 들어주네. 분위기 괜찮다.' 등 쉬지 않고 생각이 왔다 갔다 했다. 노래하면서 각종 잡생각이 드는 것은, 솔직히 ADHD 두뇌를 가진 자의 24시간이 이래서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잡생각이 아예 사라질 수는 없었지만, 2절부터 조금 잡혔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이 수많은 외국인들이 내 영혼이 가득 담긴 이 노래를 잘 들어준다는 사실에 나도 이입이 되어서일까. 정말 잘 부르고 싶은 마음도 한 몫했다.
이 정도 수준의 쾌락은 가끔 느껴야 맞다. 정말 '쾌락'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데, 쾌락은 고통과 같은 시소에 타는 놈이다. 딱 지난번 서울 펍에서 라이브 때 정도가 적당하다. 혈당 스파이크가 아니라 도파민 스파이크여서 자주 느끼면 뇌에 조금 해로울 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호텔에 와서 영상 모니터링을 하는데도 기분이 무척 좋았다. 다들 세 명, 네 명씩 친구들끼리 왔는데 나는 혼자 와서 응원해 주는 지인이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저렇게 영어로 말도 잘하고, 노래도 잘한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자부심이 확 들었다. 영어와 노래를 아무리 초등학교 때부터 잘했다 해도, 혼자 올 용기와 자신감도 대단하고, 거 아무리 생각해도 걔한테 너무 과분한 인간 아닌가 싶어서 피식거렸다.
그리고 오늘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 스페인어도 다 썼다. 한국어는 피시 앤 칩스 식당에 갔는데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라 썼고, 중국어는 무료 밀크티 받으면서 썼고, 일본어는 펍에 다른 공연자가 일본인이었고, 마지막으로 스페인어는 내 프로필 명함 주는데 스페인어도 할 줄 아냐며 스페인어를 하시기에 조금 한다고 어렵다고 했다. 이렇게 언어 5개를 하루 안에 다 쓴 날이 있었나 싶다. 4개는 종종 있었는데, 스페인어를 쓸 일은 거의 없어서 5개는 처음인 것 같다.
진짜 대단하다 대단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