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6 밤길은 어려워

by 이가연

이 호텔이 저렴한, 아니 부담 가능한 가격대였는 대신, 단점이 있다. 밤에 걸어오기 무섭다. 가장 가까운 역으로부터 14분 거리다. 이 호텔이 처음은 아닌데, 그때도 밤에 걸어오기 무섭다고 기억해 뒀다.

위치가 그다지 좋지 않은데, 그때도 선택한 데엔 다 이유가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가격대에서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안 그럼 런던 중심부에서 너무 멀어진다. 지금도 50분이다.

그때는 밤에 딱 한 번 걸었다. 보통 밤에 잘 나가있을 일이 없다. 여행지에서도 저녁 먹고 아주 깜깜해지기 전에 들어온다. 그런데 이번엔 밤에 들어올 일이 계속 생겨서 더 문제가 될 거란 걸 생각 못 했다. 다행히 오늘은 저녁 8시에 호텔 도착 예정이다. 일몰 시각이 저녁 7시 20분이니, 8시면 아직 완전히 밤은 아닐 것이다.

앞에 여자 두 명이 걸어가고 있길래 다행이라 생각하며 따라 걷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횡단보도에서 길이 갈라지는 거 아닌가. 내가 '어쩌지 어쩌지'하고 당황하는 모습을 그 여자들이 봤다.

"괜찮냐. 도움이 필요하냐." 나에게 물었다. 그렇게 다정히 말 거는 사람은 한국엔 50대 이상 아주머니 밖에 없다. 괜히 한국에 4050대 지인만 있는 게 아닌 거 같다. 내 얼굴이 뭐 당장 오줌 지릴 얼굴까진 아니었을 텐데, 이래서 나만 낯선 사람에게 쉽게 말 거는 게 아닌 해외에 살고 싶다. 이런 게 없으니 서울에선 혼자 밖에 외출하기 싫고 서점만 가는 거다. 나만 시도하고,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나를 잘 받아들여주지 않는 느낌이 드니까, 매우 안 맞고 힘들다. (맞다. 5월에 영국와서도 글 쓸 때 한국 욕 자제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여기 있으면 여기에 감사할 것이지, 한국을 괜히 생각해서 혼자 열 받을 필요는 없다. 이제부터 그러하겠다.)

"나 호텔 가는데. 나 지금 핵 무섭거든." 했다. 그랬더니 처음엔 저 쪽으로 가면 된다 하더니, "같이 가줄까?" 하며 고맙게도 큰 길 나올 때까지 같이 걸어줬다.

좀 민망스러워서 "서울 올 일 있게 되면 이해할 거다."라고 했다. 그랬더니 친구 중에 서울 놀러 간 애가 있었는데, 새벽 2시에 카페 갔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내가 살던 교대역은 2분 마다 24시간 편의점이 있을 거야..

서울도 서울 나름이긴 하다. 나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공감할 거다. 남자라고 무서움을 못 느끼는 것도 아니고, 남자도 마찬가지일 거다. 안 무서우면 촌에서 온 거다. 이거 참 괜찮은 기준 되겠다. 무서우면 대도시 사람이다.

그저 지나가던 두 사람의 호의 덕에, 친구에게 음성 메시지를 왕창 남기지 않고 잘 걸어왔다. 역시 내가 좋아하는 영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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