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날씨도 구리고, 얼마 안 걸었어도 발 아프다. 영국은 날씨가 흐릴 때와 맑을 때가 천지차이다. 흐린 날에 연극 예매해 둬서 다행이다.
친구 때문에 열받아서 한참을 글 썼다가 지웠다. 영국에 있으면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에 대해선 쓰고 싶지 않다. 하지만 원래 같았으면 곧바로 공유하는 영국 오빠가 있는데, 근래 부재중이라 메모장에 쓰게 된다. (여러 번 언급한 바, ADHD로 순간 쏟아져 나오는 그걸 막을 순 없으니, 일단 쓰고 지우든 하려 한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에 집중하고 싶다.
마음을 좀 달래기 위해, 한국 전쟁 기념비를 찾았다. 부산 UN공원에서도 울었던 바 있다. 멀리서 보니 동양인들 몇 명이 있길래 한국인이겠거니 했는데, 한국인이 맞았다.
런던에만 식당이 30군데 이상 지도에 표시되어 있다. 그러곤 그중에 가까운데 찾아 들어간다. 이번에 얻어걸린 식당은, 정말이지 '오 주여. 이게 이유였나요.'싶게 했다. 친구가 어제는 2시간, 오늘은 1시간 반을 늦어서 열받았던 거였다. 일정이 다 꼬였다. 12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1시 반에 도착한다 하니, 내 공연은 2시라 끝나고 볼 수 있게 됐다. 걔 말고는 친구고 애인이고 다 이랬어서, 이런 사람들 때문에 3분 늦는다고 미안하다고 했던 걔가 특별해진 거라며 화가 났다. 걔가 특별했던 이유가 많지만, 그 중에서 비정상이 하도 많아서 정상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건 좀 없었으면 싶다. 그런데 그 덕분에 이 식당을 들어왔다. 원래는 친구랑 펍 가서 감자튀김으로나 점심을 때울 생각이었다..
그동안 런던에서 잘 먹었던 식당이어 봤자, 한식당 한 군데가 다였다. 한식당은 사실상, 영국에서 먹었으니 맛있는 거다. 여긴 태어나서 먹은 파스타 중에 제일 맛있었다. 지금까지 파스타를 먹고 반해본 건, 사우스햄튼에 있던 이태리 레스토랑밖에 안 떠오른다. 거기도 하도 먹을 게 없으니 그랬던 것이 크다. 여기는 면 자체가 보들보들 달랐다. 트러플이 들어간 메뉴 자체도 처음 먹어봤다.
한국에서 원체 '로마식 까르보나라' 어디 안 파냐고 하고 있었어서, 더욱 귀하게 느껴졌다. 로마와 프라하에서 먹었던 그 꾸덕꾸덕한 까르보나라가 먹고 싶은데, 한국은 까르보나라라고 써놓고는 죄다 그냥 크림 파스타여서 배신감을 느꼈다. 엄마가 소스를 사서 해줬는데, 로마에서 먹었던 그 맛을 어떻게든 찾고 싶었다. 그런데 그건 맛있지만 다소 짜고 평범한 느낌이 났다면, 이건 면도 소스도 고급스러웠다.
더욱 놀라운 건, 그렇다고 가격이 무지막지하게 비쌌던 것도 아니란 점이다. 원래 파스타가 3만 원 정도 하는데, 3만 5천 원이었다. 영국에서 음식에 돈을 써본 그 모든 날 모든 순간 중 가히 최고였다. 두 번 째는, 유학 중에 런던에서 뚝배기불고기 먹었을 때다. 그건 유학 중이라 평범한 뚝불도 눈물겨워 먹었다.
여긴 필히 다시 올 거다. 역시 영국 음식이 문제가 아니라, 돈이 없는 게 문제였다. 맨날 미슐랭 레스토랑 갔으면 그런 말 안 나왔다. 흑백요리사 이후로 나도 미슐랭에 관심은 갖게 되었지만, 그저 궁금했던 수준이었다. '이야 잘 얻어걸렸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역시 내 구글맵 만세다. 여행 책에서든, 인터넷에서든 맛집이라고 들으면 일단 저장해 둔다.
다만 밥 먹고 극장에 도착해서는 이야.. 싶었다. 사이드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까지일 줄 몰랐다. 2층 갈 바에야, 1층 사이드 저렴한 좌석을 선호한다. 그런데 이건 그동안 지난 11년간 뮤지컬 보러 다닌 것 중에 제일 사이드다. 내 옆에 자리가 4개가 있으면 그래도 괜찮을 줄 알았는데, 좀 심했다.
그래도 아주 오랜만에 극장에 와서 기대가 된다. 최근엔 수입이 없으니 뮤지컬을 잘 안 보러 다녔다. 보통 일 년에 세네 번은 봤는데, 올해 처음이다.
이제 곧 공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