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이 시작되니, 무대가 훨씬 확장되었다. 뭐 이런 사이드석을 만드냐고 욕하고 있었는데, 다행이었다. 몇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시야 방해도 거의 없었다. 이 글은 1부가 끝나고 인터미션 동안 쓰는 중이다.
토토로는 연극과 뮤지컬 중간 어디쯤이다. 배우들이 노래를 부르는 것은 아니지만, 따로 가수가 배경 음악을 노래한다. 어떤 곡을 들으면서는 '와 저 노래 뭐지' 싶으면서 소름이 쫙 끼쳤다. 역시 노래는 맑고 곱게 부르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세밀한 감정선을 잘 잡아서 전달하는 게 중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엊그제도 어제도 공연을 했다 보니,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감정을 더 와닿게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토토로 주제곡이 나올 때면 기분이 몽글몽글해졌다. 보통의 대극장 뮤지컬 무대처럼, 오케스트라 및 밴드가 음악을 라이브로 연주한다. 다만 안 보이는 곳에서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무대 천장에 닿을 것만 같은 나무 안에서 연주한다. 자세히는 안 보여서 더욱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내 시야에서는 바이올린과 첼로가 제일 잘 보여서 종종 연주도 구경했다.
토토로가 워낙 몸집이 크다 보니, "우어어어어"하고 울음 소리가 날 때 옆옆옆 자리 여자 아이가 막 울음소리를 냈다. 아무래도 극 특성상, 겨울왕국과 마찬가지로 여자 아이들이 꽤 있었다.
영화를 재밌게 본 사람들은 영화를 충실히 구현해서 추천한다는 예매 사이트 리뷰를 봤는데 나도 공감한다. 뮤지컬을 보러 다니는 걸 좋아해도, 같은 뮤지컬을 어지간해선 두 번 안 본 데엔 이유가 있다. 드라마고 영화고 갈등 장면을 다 스킵해야 한다. 그런데 뮤지컬은 스킵할 수가 없다. 갈등 장면이 나오면 견딜 수가 없는데, 토토로는 정말 딱 영화 '리틀 포레스트' 봤을 때의 그 편안함이 느껴졌다. 이런 악역도 없고, 갈등도 없는 스트레스 free 한 콘텐츠가 좋다. 보면서 저 배우들은 다 일본계 영국인일까? 싶기도 했다. 엠마 왓슨 어린 시절이 생각날 정도로 다들 발음이 정말 퍼펙트한 RP였기 때문이다.
아래는 토토로 영화 스포일러가 포함된다.
2부는 다소 감정적인 장면들도 나왔다. 극의 긴장감은 엄마의 병세 악화와 메이가 사라지는 걸로 표현된다. 나는 그래서 1부가 더 좋았던 거 같다. 과한 연기는 내 스타일이 아니랄까.
이미 영화를 봤기 때문에, 사라졌던 메이를 다시 찾은 장면을 보며 '이제 곧 끝나겠구먼' 싶었다. (ADHD 진단 받고, 왜 그동안 비싼 돈 주고 뮤지컬 보러 가서도 항상 딴 생각하고, 빨리 끝나길 바라게 됐는지도 이해가 됐었다.) 메이 역할을 진짜 어린이 배우가 맡으면 어떨까 싶었다. 겨울왕국에서 엘사와 안나 아역이 참 귀엽고 연기도 잘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니까 매일이 아니라, 트리플 캐스팅하면 안 되려나. 메이가 자꾸 자긴 4살이라 하는데, 24살에 더 가까워 보이니 몰입이 덜해졌다.
가장 좋았던 건, 음악이다. 배경 음악으로 노래 부르시는 분의 음색이 예술이었다. 깊고 울림을 주는 목소리였다. 단순히 톤이 낮은 게 아니라, 마음을 간질이는 느낌이었다. 몇 번을 감탄하며 들었다. 각종 악기 사운드가 어우러지는 것도 참 듣기 좋았다. 물론 거대한 토로로도 신기했고, 고양이 버스도 귀여웠다.
추천 대상
1. 갈등이 없는 평화로운 작품을 원하는 사람
얼마 전에, 등장인물 안 죽는 뮤지컬 어디 없냐는 포스팅도 봤다. 그러고 보니 많은 뮤지컬이 그렇다.
2. 영화 이웃집 토토로를 재밌게 본 사람
아마 영화를 본 사람이 관심 갖지 않을까 싶다.
3. 영어는 조금 자신 없지만 웨스트엔드에서 공연 보고 싶은 사람
시각적으로 풍성하고, 음악 자체가 울림을 준다. 워낙 영화 그대로 따라가서 이미 내용을 안다면 영어를 모르는 사람도 재밌게 볼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