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에게 어제 내가 그렇게 혼자 대처할 게 아니라, 개입해 줬으면 좋았겠다고 말했다. "북한 사람은 너가 평생 볼 일 없을 거다."라는 말을 두 번이나 할 동안 얘는 옆에서 뭐 했냐.. 싶었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자기도 어쩔 줄 몰랐다고, 내가 금방 대처하고 잘 나왔다고 더 길어졌으면 자기도 뭐라 했을 거라 했다. 이번 사건은 그냥 '내가 이렇게 혼자서도 잘한다'로 마무리하면 될 거 같다..
한국에서 95% 이상 혼자 공연에 다녔기 때문에, 혼자 다니는 설움이 있다. 그래서 엊그제는 아예 애가 공연 전체를 놓쳤고, 어제는 그래도 옆에 있으니 뭔가 도움이 됐길 바란 거다.
불편한 사람이 좀 많았겠나. 남자친구랑 같이 온 여자 솔로 뮤지션이 있으면 더욱 부러웠던 게, 나는 그런 보디 가드 같은 남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 달 두 달만 사귀어봤으니, 살아생전 남자친구가 내 공연에 보러 와본 적이 없다. 나이가 먹으며 내 인상도 점점 만만해 보이지 않게 변하고 있는 거 같은데, 20대 초반에는 정말 10대처럼 생겼었기에 이상한 놈들로부터 지켜줄 사람이 필요했다.
이젠 내가 내 매니저 노릇하는데 익숙해졌다. 어제 공연 영상을 확인하며, '아니 내 영상이 저렇게 마이크 스탠드로 가려지고 있었으면, 영상이 잘 찍히나 보는 게 아니라 저걸 치워줬어야지 아오. 서양 애들을 왜 이렇게 이 센스가 없지. 사진은 어떻게든 내가 가르쳐놨는데, 영상도 저 당연한 걸 가르쳐야 되나.' 싶었다. 그래도 영상 캡처는 AI 지우개로 마이크 스탠드를 지웠다.
원래는 2분이라도 사운드 체크를 하고, 그동안 영상도 미리 찍어보기 때문에 저런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 한국은 오픈 마이크라 해도 뮤지션 대우를 하기 때문에 사운드 체크를 한다. 엊그제 사우스햄튼 공연도, 미리 뮤지션 라인업이 되어있었기에 나에게 15분의 리허설 시간이 주어졌다.
내가 나의 매니저다. 한 곡을 두 곡을 부르든 정말 2분의 사운드 체크는 필요하다. 또 내가 먼저 말을 걸었을 때, 한국은 다들 뻘쭘해하여 거절감을 느껴 기분이 팍 나쁘고 화난다. 이건 한국만 그렇고, 영국은 스몰 토크 문화가 있어서 그 누구도 그러지 않는다. 내가 말 건 것에 벽 치기를 당했다는 기분 나쁨 대신 대답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내게 폭풍 질문만 하여 숨 막히고 돌아와서 열받게 한다. 어느 쪽이든 그들은 나쁜 의도가 전혀 없었지만 매우 매우 감당 안 되게 열받는 건 마찬가지이니, 나는 내 본분대로 노래만 잘하고 영상만 잘 찍어야겠다.
문득 소튼 살 때가 떠오른다. 오픈 마이크에서 기분 나쁜 경험을 하고 나면, 꼭 이 패턴을 반복한다. 내가 그런 데서 그렇게 돈도 안 받고 그런 취급을 당할 짬밥이 아닌데 분한 게 당연하다. 내년이면 10주년인데, 이젠 정말 유료만 해야지 싶다가도, 여기 와서 첫날 공연은 좋았다. 참 복불복이다. 아마 유명해질 때까지는, 열받아서 무료 공연 안 한다고 했다가, 무대가 고프니 했다가, 열받아서 진짜 안 한다고 하는 이 패턴을 반복할 거다.
그래도 오늘 본머스는 기력이 받쳐주는 한 갈 거다. 공연자에게 무료 드링크를 준다고 쓰여있었기 때문이다. 어제는 내가 공연하러 갔는데, 내 돈 주고 음식과 음료를 사 먹는 '한국이었으면 절대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건 5년 전부터 납득 안 했다.
소튼 살 때도 이와 비슷한 글을 쓰고, 또 책에도 실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괜찮다. 그 복불복 중에는 잘 얻어걸리는 좋은 경험도 있을 테니까. 아무리 열받고 극혐해도 사람에게 말 거는 걸 절대 못 막는 것처럼, 공연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이렇게 말하면 비ADHD인들은, "그냥 말을 안 걸면 되잖아. 안 하면 되잖아." 할 거 같아서 열 받는다. 그건 뭐 화장실 가지 말란 소리다. ADHD인의 모터 달린 특성이라 못 멈춘다. 지금도 짜증난다는 글 안 쓰기로 해놓고, 못 멈추겠다. 받아들이며, 그냥 제발 노력하는 만큼 좋은 사람, 좋은 공연이 얻어걸리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