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17 4일 차 이야기

by 이가연

젠장. 오픈 마이크 하려고 화장도 하고 원피스도 챙겨 입었는데, 오늘 안하고 다음주부터 한다고 한다. 그냥 마이크랑 스피커만 있으면 하면 안 되냐니까, 장비도 아직 안 꺼내서 안 된다고 했다. 영국 애들 학기가 다음주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래서 아무리 당일 날 그냥 가서 이름 적는 거라해도, 미리 연락을 취해서 확답을 듣고 싶었다. 여긴 내가 홈페이지를 통해 연락해도 안 받았었다.

어차피 지금 3일 연속 공연해서 피로가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물론 공연을 위해, 기력이 좀 남아도 아끼려고 바닷가 안 가고 호텔에서 쉰 건데, 아깝긴 하다. 역시 뭘 안 했더니 오늘은 기차 값이 제일 많이 나가고 10만 원도 안 썼다.

하늘이 좀 나를 멈춰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애초에 3일 연속 공연도 신기록이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도저히 저 길로는 발걸음이 절대 떨어지지 않는 길이 나오길래 돌아가더라도 큰 길로 향했다. 무서워도 꾹 참고 걸을 수 있는 수준이 있고, 아예 생각도 못 하는 길이 있다. 사우스햄튼 살 때는 시티 센터에 살아서 무서울 일이 잘 없던 걸 깨달았다. 큰 도로에서 딱 5분만 걸으면 기숙사였다. 거기만 좀 무서웠다. 앞으로 여기서 4번의 밤이 더 남았는데, 참고해야겠다.


노란 색은 상점들이다. 상점이 모여 있으면 간판이 있어서 사람이 없어도 빛은 있다. 그래서 노란 색으로 표시한 도로만 걸어야 한다. X표 친 구간과 비슷한 길이 앞으로 나오면, 이제 지도만 보고도 내가 밤에 걸을 수 없는 길이란 걸 알아둬야겠다.

2주 동안 있으면서 매일 매일이 환상적일 수는 없다. 이런 날도 있어야 한다. 그사이 1일차부터 3일차까지 브이로그를 다 편집했다. 4일차는 별 거 없지만, 앞으로 뭐가 나올지 모른다. 이번주에 미리 정하고 온 일정이 목요일 학교 가는 거 밖에 없다. 당장 내일 아침도 일어나서 컨디션과 날씨 보고 1시간 반 기차를 탈지, 걸어서 15분 거리 바닷가를 갈지 결정할 거다. 왠지 후자가 될 듯 싶다. 그래도 런던에서 본머스로 이동하고, 공연하려고 갔다가 허탕친 게 다인 오늘보다 내일이 두 배는 더 재밌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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