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18 더들 도어 (Durdle Door)

by 이가연

오늘은 딱 30분만 기차 타면 되어서 값이 2만 2천 원 나왔다. 런던에서 소튼 왕복 기차는 6만 6천원 했다.

밖에서 아침 먹고 싶어서 7시에 호텔에서 출발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음식만 먹는데에 질려버렸기 때문이다. 애초에 영국 오면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를 먹어야하는데, 지금 5일 차인데 한 번도 안 먹었다. 지난 번엔 저것만 매일 아침 먹어서 질렸는데, 밸런스 조절이 필요하다.

그런데 카페에서 음식은 8시부터 된다고 했다. 아니 All Day Served 라메... 싶었지만 그냥 기차역에 일찍 가서 기다리기로 했다.

영국 대중교통을 탈 때면 anyone suspicious, 수상한 사람이 보이면 바로 직원에게 말해라는 안내 방송이 들린다. 또 "See it, say it, sort it." 보고 말하면 해결된다는 캐치프레이즈도 있다. 이런 점이 참 마음에 든다. 한국에서 지하철 탈 때는 그런 안내 안 들린다.

기차에서 내렸는데, 버스가 40분 뒤에 온다길래 얼른 근처에서 아침을 먹기로 했다. 버스 놓칠까봐 아침을 좀 급히 먹었다. 우버 부르려고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잡혔고, 9시 5분 걸 놓치면 11시 56분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시골에서 나이 든 아주머니 한 분이 정겹게 운영하는 가게의 잉글리시 브렉퍼스트라 좋았다. 이건 한국에서도 종종 생각 난다.



운전할 줄 아는 사람이면, 이런 데서 버스 기사 하는 것도 정말 할만한 직업이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풍경이 예뻤다. 매일 봐도 예쁠 거 같다. 게다가 영국은 거의 모든 승객이 타고 내릴 때, 땡큐를 한다. 한국에선 절대 볼 수 없는 풍경과 승객들이라, 일하는 맛과 보람이 들 거 같다. 버스 기사들 대부분이 웃으면서 일하는 걸 봐서, 진지하게 영어가 부족한 한국인이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더들 도어는 하얀 절벽이 있다는 점에서 세븐 시스터즈와 비슷하다. (대신 도어가 있다.) 다만 세븐 시스터즈는 버스 배차 간격이 1시간이었고, 버스 내려서도 5분 밖에 안 걸었다. 여기는 배차 간격 2시간에, 내려서도 30분을 걸어야했다. 바다 보면서도 '이따가는 어떻게 돌아가냐...' 싶었다. 그리고 세븐 시스터즈는 바로 앞에 아이스크림 트럭이며 화장실이며 다 있는데, 여긴 좀 걸어야 있다. 걷느라 힘들었어서 오레오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아무리 해도 안 뜯겨서 뜯어달라고 했다..)

공통점이 또 있다면, 바닷가 절벽이라 언제 가도 바람이 엄청나게 분다. 여름에 가도 바람 불어 추웠다. 또 혼자 막상 가서 할 건 별로 없다. 그냥 절벽과 바닷가 좀 쳐다보다가 온다. 그런데 그 순간 풍경은 기가 막힌다. 한국에선 제주도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에메랄드 빛깔 바닷물이다. 주변엔 현장 학습 온 듯한 학생들과 노인들이 주로 있었다. 아무래도 평일이라 그런 것 같다.

기념품을 웬만하면 안 사려고했는데, 더들 도어는 다시 안 올 거 같아서 선물용 하나, 내 거 하나 샀다. 내 거는 더들 도어가 그려진 노트다. 기념품 중에 가장 쓸모 있는 녀석이 바로 반팔 티셔츠와 노트다. 그 외엔 안 사기로 했다. 반팔 티셔츠는 여름에 집에서 질리도록 입고, 노트는 타로 노트로 쓰면 끝까지 다 쓴다.

"여기 바람 겁나 부네요." 라고 기념품 가게에서 계산하면서 말했더니, 지난 주엔 더 불었다고 다 날아가는 줄 알았다며 여름에 사람 많을 때보다 지금이 딱 좋다고 얘기해줬다. 얼마나 정겨운가. 나는 이렇게 오며가며 말할 수 있는 그 1분이 너무 좋다. 생존에 필수적이다. 필. 수.

30분 걸어서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도 한참 기다릴 거 같아서 혹시 몰라 우버를 불렀다. 이번엔 다행히 한 번에 잡혔다. 터키 출신 기사였다. 영화 아일라 봤냐고 물어봤더니 당연히 봤다고 엄마가 엄청 울었다고 했다. 나는 영화는 아직 안 보고 다큐만 유튜브로 봤는데 나도 다큐 보고 울었다고 했다. 터키 사람 보면 예아 형제의 나라 하는 재미가 있다.

이제 본머스로 돌아가는 기차다. 8시 45분에 아침을 먹고, 9시 반엔 더들 도어를 구경한 뒤, 11시엔 다시 기차 역으로 돌아왔다. 12시 현재 얼른 호텔 침대에 다시 눕기만을 기다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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