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도 왔는데 글 안 써주면 섭섭할 주제 시작이다.
이게 다 그동안 음악 때문이었다. 며칠 전부터 헤드폰을 안 가지고 다닌다. 그랬더니 과거 추억 팔이를 안 한다. 어떤 노래를 들어도 다 그 생각이 났던 거 같다. 음악을 안 들으니 너무 자유롭다.
'니가 ADHD라서 싫어.'라는 말 한마디만 들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굳이 들을 필요가 있나. ADHD라서 그랬던 특징들을 전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뭐라고 했던 말들이 넘친다. 내가 26살인데 6살처럼 통통 튀는 걸 가만히 좀 있으라고 말이나 행동을 했다. (이거만 봐도 부모네. 나만 딸램짓을 한 게 아니라, 인간 관계는 쌍방이기 때문에 걔도 부모짓을 한 거다. 이거는! 반려 동물 길거리 유기 수준의 잘못이다.) 나는 그냥 그때그때 공유한 건데 자기가 감정 쓰레기통 아니라는 등, 카톡이 니 일기장이냐는 등 그랬다. 애초에 나도 '가장' 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만 그런다. 본인이 그런 관계성을 형성해놓고, 매우 쓰레기 같이 상처 주고 무책임했다.
누드 드로잉 세션 와서 갑자기 열받아서 쓰는 글이다. 파리에서 그런 재미난 거 하고 왔다고 했으면, '신기하네'하는 반응을 예상하지 않았겠나. 모델들이 안 부끄러울까 생각할 수는 있다. 내가 본 모델들의 모습은 너무 그 일을 사랑하고 즐거워보였는데, 뭔 소리냐 다 벗고있는데 안 수치스럽겠냐에서 그 '뭔 소리냐'가 문제였다. 당시에도 얼마나 욕이 나왔으면 브런치에도 전형적인 한국인이라 써놨을까.
하나만 봐도 열을 안다는데,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다. 내가 진짜 극혐에 치를 떠는 전형적인 한국인 맞다. 그런데 못 벗어났던 이유는, 가족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가족도 내가 ADHD라는 걸 안 뒤에 그제야 좀 이해하려하고 한 것처럼, 걔도 이걸 다 알기만 하면 다를 거라는 기대 때문이다. 원체 우리 부모의 분신처럼 느껴질 정도로 닮아서, ADHD를 받아들이는 것과 비슷할 거라고 너무 믿는 거다.
그 믿음이 깨지면 이건 끝이다. 있는 그대로의 부모를 바라지 않았듯이, 나도 있는 그대로의 걔가 아니라, 나의 이 타고난 특징을 잘 이해해주길 바란다. 공부해주길 바란다. (그냥 'ADHD와 나' 글만 읽으면 된다.)
그 믿음과 사랑 때문이다. 내 정신 건강을 생각하면, 영국 오빠랑 영국인 친구처럼 ADHD고 나발이고 그런 거 몰랐어도 '너는 지극히 정상'이라고 항상 생각했던 사람이 옳다. 내가 이런 건, 뇌 자체가 남들과 달라서이고 이것은 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설명하고 이해시키는 건 상당히 힘든 일이다. 가족은 가족이니까, 걔는 걔니까 하고 싶은 거다. 다른 사람은 죽었다깨나도 한국인이고 영국인이고 대화 유지를 거부한다. 아주 금방 저리 치워버린다. 가족이랑 걔가 아닌 이상,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스트레스 받는 걸 일체 거부한다.
오빠도 과거에 "한국인들 문제점이 뭔 줄 알아?"하면서 말해줬다.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거다. 나는 감정이 정말 휙휙 바뀐다. 어떤 문제에 있어서는 비ADHD인에 이해 심각하게 깊게 빠지지만, 일상 대부분에 일에는 상대방이 당황스러울 정도다. 방금까지 맑았는데 갑자기 비 오고 그쳐서 무지개 뜨는 영국 날씨랑 같다.
걔도 내가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지 혼자 되게 스트레스 받은 거다. 딱 엄마가 그랬던 것과 같다. 나는 그런 말 했던 기억도 안 나는데, 이미 나에겐 심적으로 한참 전 일인데, 내가 말했던 말이나 고민을 계속 담아두고 있었을 거다. ADHD가 하는 말은 걸러서 들어야 한다. 영국 오빠가 이걸 아주 잘한다. 80% 걸러 듣는다고 했다. 내가 진심으로 말하고 있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감정에 말하는 걸 잘 파악하는 거다.
가끔 엄마가 해준 말들로부터 힌트를 얻었다. 진짜 딱 봐도 그당시, 그 몇 분에만 해당하는 말인데 그걸 왜 모르지? 너무 안타깝고 답답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건 나를 진심으로 care 했기 때문이다. 신경 쓰다도 아닌 거 같고, 아낀다도 오글거리고, 그렇다고 보살피다도 너무 갔고 "I care about you"의 care다.
걔는 나 때문에 일어나는 지 속사정을 쥐뿔도 말해주지 않았다. 직접적으로 말은 안 하고, 지가 감정 쓰레기통 아니라는 등의 폭탄 터트리기만 한 거다.
이런 나를 무진장 들여다보게 하고, 가족까지 들여다보게 하고, 2년 동안 10년치 사리가 나오도록 정신 수양시킨 나쁜 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