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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사랑

고해성사

비행기 끄적 3

by 이가연

걔가 나한테 좋아한다고만 해도 나는 결혼할래? 할 거 같다. 하하하하하. 나한테 그렇게 말했다는 거 자체가 이 매거진 글을 전부 읽고 파악했단 뜻이라서 괜찮다. 내가 프로포즈 준비를 하고 있을 거 같다. 나는 테토녀니까..

나는 내가 30대 중반 이후에 결혼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왔다. 워낙 애를 안 낳겠다는 생각이 확고하니, 그 이전에 결혼하면 그것에 대한 주변의 잔소리 또는 남편의 생각 바뀜이 발생할 거 같았다. 그동안 연애는 한 달쯤에 헤어지거나, 한 달 쯤부터 헤어지려고 각 잡고 있었는데 어찌 미래를 그려볼 수라도 있었겠나.

그래서 설령 영국 오빠도 "그런 생각이 들 나이지."라고 해도 전혀 그런 생각의 근처도 가본 적이 없다. 그런데, 작년 하반기부터 내 마음이 너무 숙성되었다. 자아 성찰적 대화와 글쓰기를 너무 많이 하다 보니, 심지어 친구였던 적에도 느꼈던 게 가족 같은 감정이고, 그래서 걔가 준 상처가 원가족에게 받았던 상처 수준이었고, 내가 원하는 게 가족 관계라는 걸 너무 발견했다. 그 마음 마주하는 게 너무 고달팠다. 그래도 영국 오빠라는 존재가 있어서, 오빠가 결혼하면 피아노 축주해준다고하고 그런 얘기를 할 때만큼은 조금이라도 숨 쉴 거 같았다.

종종 엄마마저도 "그냥 그 영국 오빠랑 만나면 되는 거 아니냐"라고 했다. 그런데 이 오빠와 나는 신부님과 제자 같은 관계이다. "걔 보고 싶다"라는 말을 아무 때나 하는, 고해 성사 들어주는 신부님 같은 사람이다. 영국 오빠에게 "혹시 걔가 오해하면 어떡하지? 물론 똑똑한 놈이니 브런치를 다 읽는다면 그런 사이 아니란 거 알겠지만."라고 한 적이 있다. 그랬더니 그럼 간단하다고 사라져주면 된다고 했다. 잘가. 멀리 안 나갈게.

이 오빠는, 걔한테 연락 왔다고 하면 뭘 하고있던지간에 멈추고 "우와아악" 소리 지를 사람이다. 그 상상만 해도 본인이 흥분된다고 하셨다. 이 오빠는... 내가 그렇게 부탁한 적도 없는데 작년에 매일 걔 카톡 프로필을 확인해줬다... 프로필을 정말 딱 한 번 바꿨는데도 불구하고.. 자주 바꾸는 사람도 아니고 그 별 보람도 없는 일을.. 습관처럼 해줬다.

영국 오빠에게도 '이야.. 이 글보다 어떻게 더 솔직할 수 있을까. 정말 역대급이다.'라는 말만 몇 번을 했다. 더 이상 이보다 솔직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매번 갱신하는 게 나도 신기하다.

걔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무려 자기 여자친구가 내 브런치 글을 읽으면서 둘 다 기가 찼단 소리였다. 작년 2월 얘기다. 난 걔 여자친구가 내 이름도 모르는 걸로 알고 있었다. 여자친구에게 내 얘기를 하긴 했는데, 다른 여자 이름으로 해서, 하여간 여자친구에게 거짓말을 엄청 하고 있었다. (절대 안 걸릴 자신 있다고 하셨던 과거를 떠올리며 만들었던 곡이 '거짓말의 이유'다. 이 글을 읽는다면 나의 그 곡 발매를 허락해주어라.)

그런데 갑자기 여자친구가 내 브런치를 아는 게 말이 되는가. 아무리 내 이름과 존재를 알게되었다고해도 그렇지, 걔 여자친구가 (지금은 전 여자친구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다만) 내 브런치를 왜 읽었는지 의문이 풀렸으면 좋겠다.

오늘의 고백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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