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아닌 이상 날씨는 운이다. 9월이면 10월보다 좋을 줄 알았더니, 그냥 10월보다 기온이 따뜻할 뿐이다. 지금보다 10월에 더 맑은 날이 많을 수도 있다. 어제 카페에서 옆자리 사람에게 날씨 왜 이렇게 바람 부냐고 물어봤다. 이번 가을이 이상하댄다. 하긴, 여기 이번 여름도 이상했다고 들었다.
이런 날씨마저도 괜찮다. 그래서 여행이다. 사는 거였으면 싫었다. 어제 날씨가 안 좋았어도 아쿠아리움 가고 드로잉 했고, 오늘은 그냥 학교 가는 거라 날씨가 안 좋아도 큰 영향이 없다. 다만 내일은 투어 버스 타고 한 바퀴 돌려고 했으니, 내일은 더 나았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일기 예보를 봤을 땐 괜찮을 거 같다.
소튼 도착이다. 소튼 도착해서 기분 좋아할 때마다 웃긴다. 지난 주말에는 공연하러 시내만 봤다. 이번엔 학교로 가서 시내까지 쭉 볼 거다. 볼 거 없지만. 볼 거 없으니까 걔 보고 싶다. 에라이 퉤.
ADHD가 하는 말을 왜 다 걸러들어야하는지 예시가 생각났다. 작년 6월에 짐 싸서 휙 사흘 만에 한국 들어가면서 친구한테 10년 안에 안 온다고 했다. 두 달 만에 다시 왔고, 지금 1년 1개월 동안 4번 왔다. 어려우면... 내가 뭔가를 극혐 한다거나 치를 떤다거나 죽어도 싫다고 하는 그 모든 것들은 애증이라고 외우면 된다. 마음이 엄청 깊고 사랑해야, 그만큼 싫어도 한다.
새로운 컨설턴트랑 상담이라 엄청 걱정했는데, 다행히 잘 끝났다.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이게 다 트라우마처럼 박혀서 그렇다. 지나가는 처음 만나는 사람은 그냥 계속 지나가면 되는데, 커리어 상담은 45분 동안 꼼짝없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질문 힘들다고 말해도 안 통하고 똑같이 구는 사람을 많이 봤는데, 한 번에 알아들어줬다. 왜인 줄 아는가. ADHD라고 말하니까 자기도 진단은 안 받았지만 확신하고 자기 딸도 그런 거 같다고 했다. 역시 ADHD 거나 진단까진 아니어도 기질이 있는 사람 아니면 말이 안 통한다. 데이터가 계속 쌓인다. 극혐이다. (위 문단 주목. 사람을 너무 좋아해서 그렇다.)
생각해 보니, 커리어 컨설턴트도 ADHD에게 맞을 직업이다. 맨날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기 때문이다. ADHD는 똑같은 업무 반복을 힘들어한다. '내 케이스 진짜 어렵지 않냐'라고 하니까, 그래서 자기가 이런 거 듣는 일 좋아한다고 했다.
크게 두 가지를 얻었다. 하나는 영국에서 어떤 직업 타이틀로 더 지원을 해볼 수 있을지였다. 해외는 직업 종류 자체가 다양하다. 한국에선 내가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시도를 다 해본 기분이고, 그 누구도 나에게 유용한 조언을 못 줄 거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내가 '애들 좋아한다, 가만 앉아서 일하는 일 못한다, 외국어랑 말하는 거 좋아한다'라고 했더니,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애들 만나서 대학교 홍보하고 소개하는 직업을 써보라고 했다. 소튼 학교에 있는 직원 모집 공고를 보여줬다. (물론 소튼에 다시 살 생각은 추호도 없다.)
두 번째는 영국에 직장을 구하면 어쩌다 일 들어오면 할 수 있는 웨딩 싱어 일이다. 한국에도 축가 가수가 있지만, 혼자서는 뭐 어떻게 일을 구해야 할지 모르겠다. 축가 업체가 있는 걸로 아는데, 여러 번 지원해도 연락 안 왔다. 영국은 굳이 업체 끼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내가 영국 펍은 분위기가 환영받지 못하는 거 같고, 가뜩이나 ADHD 때문에 집중이 흐트러지는데 힘들다고 했다. 그리고 장르적으로도 안 맞는 거 같았다. 웨딩 싱어가 딱이라고 하길래, 문득 영국 결혼식은 다 뭐 대성당에서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다들 집중하고 있는 분위기 아닌가. 적어도 다들 앉아있다. 그게 중요하다. 적어도 축가 부르는데 도저히 노래를 못 부를 정도로 떠들진 않겠지. (물론 결혼식을 마지막으로 가본 게 2016년이다. 모른다.)
이미 너무 많은 걸 잘하고 있다고, 더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안다고 얘길 들어서 다시 한번 마음이 뭉클해지며 나왔다. 다음에도 이 컨설턴트랑 만나야지... 괜히 한국에서 예약할 때도, 어제도 걱정을 많이 했다. 물론 그 걱정은 매우 당연하다. 질문 연달아 하면 목 졸릴 거 같다고까지 표현 안 해도 되는 사람만 만나고 싶다. 이번엔 그 정도까지 안 말했는데도 알아서 잘 해줬다. 어차피 안 될 사람은 내가 아무리 표현해도 안 먹힌다. ADHD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