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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25 영국이 ADHD를 대하는 법

by 이가연

​교수는 내가 학교 다니는 동안에 웰빙팀이랑 자주 말한 걸 알아서, 그들도 내 ADHD를 몰랐냐고 했다. (아유... 아아휴... 그동안 나를 거쳐간 상담사와 정신과 의사가 10년 동안 몇명인데요.) 교수가 하긴 보통은 다 진단 받고 학교에 오니, 웰빙팀이 아시아인들에 대해 몰라서 같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도 웰빙팀이 다 백인들이었다고 하긴 했다. 동양인은... 정신 건강에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게 비교적 최근 일이라, 미진단 ADHD, 자폐인이 영국보다 훨씬 많을 거다. 훨씬.

알고 보니까 학부에 자폐를 가진 교수가 있었다. 원래 정해진 교수하고 만남이 끝나고 그 옆 방에 있는 교수하고 얘기해보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원래 교수는 자기가 뉴로티피컬(ADHD, 자폐와 같은 신경 다양인이 아닌 나머지)이라, 사실 뉴로다이버전트(신경 다양인)에 대해서 모른다고 이 분한테 많이 배우고 있다고 했다. 왜냐하면, ADHD는 아침에 뇌가 안 깨서 일어나기 어렵다고 하는데, 자기는 원체 동양인이니까 "왜 안 돼? 일어나!!!" 다그치는데 익숙하다고 했다. 매우 안다. 어쩔 수 없다. 홍콩인이시다.

긴장되지만 노크하고 들어갔다. 6개월 전에 자폐를 진단 받았다고 얘기해주셔서, 나도 비슷하다고 올해 진단 받았다고 했다. 얼추 봤을 때 30대 중후반으로는 였는데 늦게 진단되는 게 그만큼 흔하다. 역시 같은 신경 다양인이라 공감대가 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ADHD가 장애로 인정되지를 않는다고, 눈에 안 보이니까 계속 설명해야해서 힘들다고 했다. 교수는 그거 완전히 이해한다고 사람들은 자기가 눈을 잘 마주치니까 자폐인 줄 모르겠다고 한다고 하셨다. 그 교수는 계속 내 눈을 보면서 얘기했다. 나도 자폐인은 눈을 잘 못 마주치는 줄 알았다. ADHD와 자폐 모두 신경 다양인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이기 때문에, 더 알고 싶다. (그래서 홍콩인 교수도 음악과 자폐 관련 박사 과정을 추천해주셨다.)

말로만 듣던 늦게 자폐를 진단받은 사람하고 대화를 해봤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었다. 아무래도 나도 얼마 전에 진단을 받았다고 하니, 나를 도와주고 싶어하시는 마음이 느껴졌다.

영국은 '내가 ADHD라서 일하느라 이게 힘들다'라고 하면 무조건 법적으로 맞춰줘야 한다는 걸 강조하셨다.
혹시 영국에서 신경 다양인이라고 해서 서포트를 받은 경험이 있냐고 물어봤다. 그게 참 궁금했다. 그랬더니 이 분은 일주일에 한 번씩 라인 매니저랑 온라인 미팅이 있다고 했다. 한마디로 인사팀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일을 하는데 어려움은 없는지 직장에서 어떤 거를 도와줄 수 있는지 다 챙겨주는 거다.

기본적으로 자신을 담당하는 매니저를 트레이닝 시켜주는 거라고 했다. 뉴로티피컬들이 워낙 신경 다양인에 대한 지식이 없으니까 그거에 대해서 지식을 준다고 거라고 했다.

이게 한국 그 어디에서라도 가능한 일인가. 꿈만 같은 이야기 아닌가. (한국은 그냥 채용 안 하고 말아요. 나는 가족이랑 친구만이라도 좀 제발 제발 싶은데, 나에게 돈을 주는 고용주가요?) 대학교와 같은 큰 사업체는 워낙 법이 빡세게 되어 있어서 일하는 사람에게 무조건 맞춰줘야 된다고 했다. 매우 강조했다. 물론 조그마한 학교, 회사는 보장할 수 없다고 했다. 어느 나라든 법을 안 지키는 사업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학교 같은 곳에서는 당연하다고 했다. '일하는 사람에게 무조건 환경을 맞춰줘야되는 법'의 국회 통과라... 한국은 최소 십 년 본다. 내가 비관적인가.

말을 안 하면 이상하게 볼 수 있지만, 말을 하면 그래서 그랬구나 할 수 있다고 하셨다. 아휴 한국에서는 말을 해도 이상하게 보는 거 아니냐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진짜로 한국에서 트라우마처럼 박힌 게 좀 있는 거 같다.

나조차도 이 분이 자폐가 있다는 걸 말했기 때문에, 내가 생각한 거보다 대화가 길어지니까 좀 눈치 보이던 시점이 있었다. 이 분이 바디 랭기지로 머리를 자꾸 꼬길래 '엇 불편한가. 가야겠다.' 싶었다. 머리를 꼬거나 손톱을 뜯거나 하는 행동이 스트레스 받는다는 걸 수 있단 걸 알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 자기가 이렇게 잘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머릿 속에 다 대본이 있는 거라 했다. 노력을 통해 되는 거다. 그러니 갑작스러운 방문객인 내가 혹시 불편하지는 않을까 살피게 되었다. 배운 사람이라면... 한국인도 다 그렇게 나를 대하지 않을까... 나를 안 불편하게 해주고 싶지 않을까...


영국에서 직장 구할 때 장애에 ADHD 체크하는 거 진짜 괜찮냐, 했더니 영국은 그렇게 미리 체크하면, 인터뷰 과정에서 나를 힘들게 하는 게 아니라 편안한 환경을 만들어주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한국은 면접에서 ADHD를 꺼낼 분위기가 되냐...) 그런데 당연히 그렇게 말하면 혹시 취직이 안 될까 봐 걱정되는 것도 이해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아예 체크를 안 하고 오퍼를 받았을 때 말하는 방법도 있다고 했다. 오퍼를 줬으면, 취소를 못 한다고 무조건 법적으로 내가 일할 수 있는 컨디션을 맞춰줘야 된다고 했다. 한국 대기업은 잘 모르겠지만, 대기업이라고 그렇게 크게 다를 것 같지 않다. 일단 ADHD가 장애 인정이 안 되기 때문이다. 한국 기업이 장애인을 고용한 뒤에 고용주가 잘 하고 있나 못하나를 '계속' 체크하고 고용주를 '트레이닝' 시켜주는가. 못 들어봤다. 나는 친구고 애인이고 가족이고 고용주고, 내 ADHD 컨디션을 확실히 알고 맞춰줘야 한다. 나 좀 살려줬으면 좋겠다. 그게 영국은 가능하고 한국은 누가 봐도 불가능해보이는데 어떡하나. 한국이 발전 중인 걸 알아서, 그 발전 끝날 때까지 좀 외국 살고 싶다. 그게 원래 내 유학 목표였다. 원래도 답답했는데, 2년 동안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져서 더 답답해졌다.

마지막으로 "ADHD는 이런 슈퍼 파워가 있다. 굉장히 작은 디테일을 발견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도 빠르게 파악하고, 창의적이라는 걸 고용주에게 말해줘. 너부터 너가 슈퍼 파워 있다는 걸 믿어야 돼."라고 해준 말이 콱 와닿았다.

다 알고 있다. ADHD라서 호기심이 많고 하나에 만족할 줄 몰라서 6개 국어 하는 거라고 브런치에서도 노래를 불렀다. 다 너무 잘 알고 있는데, 단점들이 자꾸 내 일상 생활을 방해해서 그랬다. 생각해 보니, '한국에선 절대 안 받아들여진다' 이 생각에 상당히 꽂혀있다. 트라우마처럼 박힌 건 이해 되지만, 당당해져야한다.

앞으로 "ADHD has super powers(ADHD는 슈퍼 파워가 있어)!"라고 하셨던 그 얼굴을 기억해서라도, 어필하겠다. "나는 이런 슈퍼 파워가 있어, 그런데 그 이면에 이런 약점도 있어."라고 하면 한국인도 배운 사람이면 받아주지 않을까.

커리어 컨설턴트도 나는 나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고, 그걸 잘 말할 줄 알아서 훌륭하다고 했다. 그것도 정말 강점이다. 특히 한국인은.. (자꾸 일반화해서 미안하지만) 겸손 문화가 있는 만큼 그걸 잘 못하는 사람이 많다. 아무리 바뀌는 추세라 해도, 그걸 본인 입으로 말하냐고 꼽주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러나 사실 이랬다저랬다 고민이 든다는 거 자체가 다 한국에서 ADHD로 죽을 정도로 힘든 게 아닌 거다. 얼마 전, 런던 펍에서 기분 나쁜 할아버지를 만났을 때 단호히 말하고 자리를 나왔던 것처럼, 감정 인지가 늦어서 집에 와야 폭발해도 대처 다 한다. 쌍욕을 하는 것도 아니고, '물론 비ADHD인이 보기엔 이게 이 정도까진가'싶을 수 있겠지만, 내가 100으로 느꼈으면 100만큼 표출 잘한다. 어디에 살든 나는 잘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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