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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26 발바닥 불나요

by 이가연

한국에서는 일주일에 만 7천 보 걸었다. 하루 일과라곤 한 15분 걸어서 서점 가서 2시간 있다 오고, 봉사 가서 2시간 있다 오는 게 다였다. 그렇게 하루 한 번 짧게 외출하는 게 제일 적당하고, 더 있을 일도 없었다. 절대 하루 두 번 나가는 일, 해 떨어지면 밖에 나갈 일을 만들지 않았고, 그럴 일도 안 생겼다.

평발 아닌 사람도 2만 보면 발 아플 거라며, 그동안 제발 좀 쉬라고 나를 채찍질했다. 그런데 만보기를 보니 어제는 만 천보, 엊그제는 8천 보 걸었다. 이런 식도 일주일이면... 아침에 일어나서 발 아파서 '아오!!!'거린다. 2만 보씩 걸은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슬프다.

한국에서 파스를 가져왔는데, 저걸 열면 파스가 겨우 2장 들어있는 줄 몰랐다. 그럼 양다리에 붙이면 한 번 밖에 못 쓴다.

한 이틀 전부터 아침부터 발 아프기 시작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픈 수준이 아니라 욱신욱신 따갑다. 오늘 8일 차밖에 안 됐는데, 불 난 거 같다. 이 글을 쓰면서도 계속 꼼지락꼼지락 스트레칭을 해주고 있다.

'나 이번엔 진짜 무리 안 했다고. 안. 했. 다. 고. 억울해!!!' 싶은데 이게 내 몸인 걸 어떡하나. 어쩐지 영국 2주가 너무 긴 거 아닌가 염려되었다. 저거보다 뭘 더 얼마나 적게 걷나. 당연히 사람들은 무리하지 말라고 하겠지만, 무리 안 하려면 한국에서처럼 하루 30분 걸어야 된다. 여기까지 와서 그건 너무 아깝다.

레슨 넘버원. 니 채찍질 그만하세요. 그동안 '아오 니가 2만 보씩 매일 걸으니까 그렇지. 아니 벤치에서 쉬라고. 왜 말 안 들어! 도파민 때문에 그렇지.'라고 2022년부터 유럽 올 때마다 생각했다. 이번 만보기를 보니 이건 그냥 내 발 문제다. 도파민에 절여져서 내가 멈추지를 못하고 싸돌아다닌 탓이 아니다.

넘버투. 이야.. 내 감각이 맞았다. 지난번에는 일주일 있었는데, 딱 하루이틀만 더 있고 싶어서 아쉬웠다. 지금도 만일 오늘 한국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안 돼!!! 그럴 순 없어.'싶다. 다음부터는 8-9일 잡으면 되겠다. 발바닥이 사망하셔서 안되겠다.

내일은 호텔을 친구네 도시로 이동한다. 그동안 평일 내내 못 만났다. 호텔에서 가까운 펍으로 가면 된다. 친구랑 세네 시간씩 그냥 수다 떠는 걸 좋아하고, 그게 제일 하고 싶었다. 공연은 한국에서도 했다. 그런데 한국에는 지인이 다 4050이라 같이 술 마실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도 없다. 영국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이제 5일 남았다. 발바닥 상태를 보아하면, '이야 아직도 5일이나 남았어?'싶다. 오늘은 만 보 이하로 걷는 걸 목표로 하겠다... 누가 이런 목표를 세울까 싶어서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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