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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냐 취직이냐

by 이가연

나의 유학 준비는 두 시기로 나뉜다. 첫째는 2015년부터 2016년, '그냥 어디든 좋으니 유학 가고 싶다' 시기였다. 그래서 영국은 국내 오디션을 보고, 일본은 직접 도쿄로 갔다. 하지만 당시 나는 어려서, 정확히 가서 뭘 배우고 싶은지보다는 그냥 어디서든 보컬 전공을 하고 싶었다. 둘째는 2022년부터다. 그때부터는 학교별로 세세하게 다 따졌다.

올해 상반기에는 그냥 어디든 좋으니 한국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지금은 다르다. 유학 생각 두 번째 시기처럼, 구체적인 기준이 있다. 영국은 런던 아니면 안 된다. 어제 교수님이 소튼 박사 장학금도 보내주셨는데, 웬만해선 피하고 싶다. 소튼이랑 적정 거리 유지하고 싶다.

일본은 일본어가 영어 수준이 아니어서 안 된다. 미국은 그동안 평생 쓴 미국 발음 빼고 영국 발음 집어넣으려고 한국 와서도 계속 노력했는데, 그게 다 말짱도루묵이 되니 조금은 꺼려진다. 호주는 애기 때 두 달 있어본 기억이 있어서 기회가 있다면 괜찮다.

ADHD와 취직은, 당장 주 35시간 일 못 한다. 그래도 영국에서 생활은 해야하니, 주 25-30시간이 적당해보인다. 여긴 '한국과 다르게' 유연하게 협상 가능하다고 적혀있는 데가 많다. 박사는 '신경 다양인' 또는 '음악과 정신 건강'과 관련이 있어야 한다.

'쌍노무시끼 때문에 한국에서 발목 묶였던 거잖아.'라는 생각이 앞으로도 머리를 칠 수 있다. 진지하게 알아보고 지원하는 게 아니라, 다 좀 '될대로 되라'였던 건 이걸 전혀 원하던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올 봄에 베트남, 홍콩 같은 한국에서 비교적 가까운 나라들만 지원하면서, '괜찮아. 걔가 나 좋다고 하면, 2주에 한 번 한국 오면 되지.'했다. 얼마나 이런 나 때문에 미쳐버리겠고 갑갑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커리어 컨설턴트가 말해준 저 직업의 업무는 진짜 설렌다. 아이들 대상이고, 이 학교 저 학교 왔다갔다 일하고, 말하는 직업이다. 이 박사 과정도 진짜 딱 내 관심 분야다. 아이들을 돕는 일이고, 자폐와 신경 다양인에 대해 엄청 배우게 되고, 내 음악 능력을 활용할 수 있다.

교수가 박사냐 취직이냐 뭐가 먼저냐 물었지만, 어쩔 땐 박사고, 어쩔 땐 취직이라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원래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는 건, 둘 다 진짜 원하는 건 아니란 뜻이다. 한국에서 유명해지는 게 제일 하고 싶은 것이기 때문이다. 근데 그건 10년 째 이미 할 만큼 다 하고 있다. 뭘 더 해야할지 답이 안 나온다. 박사 지원해서 풀펀딩 붙어서 가기로 확정했어도, 가기 직전에 한국에서 확실한 기회가 온다면 안 간다. 이건 석사 유학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석사 유학 직전에는, 사기꾼을 만나서 헛된 망상 속에 살았다.)

박사고 영국 취직이고 2순위다. 고대, 연대처럼 우열을 못 가린다. 하지만, 그래도 좀 우열을 가려볼까 한다. 박사는 저거 하나밖에 지금 나온 공고가 없지만, 취직은 어제 컨설턴트 말대로 찾아볼 거다. 그런 직업이 있는 줄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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