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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31 괜찮아

by 이가연

역시 키보드 워리어다. 글들은 날이 서있기 짝이 없는데, 영​상 찍을 때는 밝은 목소리다. 얼굴 표정으로 보나, 목소리로 보나 전혀 화나있지 않았다.

친구가 미안하다며 디엠이 왔다. 다른 한국인들도 내가 확 폭발하고 차단했을 때, 뭐라 더 말했을까 궁금했었다. 그러나 절대 듣지 않고 후다닥 다 차단하는 나도 이해해줘야 한다. 뭐라고 말하나 기회를 줬을 때, 더 폭발하게 해서 그낭 가정집 불 난 게 아니라 산불 나게 만든 한국인들 때문이다. 말로 살인이 이런 거구나 싶을 수 있다. 나조차도 1대1 메시지는 모욕죄로 고소 안 된다는 사실을 알아봤었다. 나 고소하고 싶을 거 같아서. 정말 그냥 바로 사과하면 될 일인데. 미친 속도로 가라앉을 일인데. 그걸 못 하고 산불을 유도한다.


나를 놓치기 싫은 사람이었으면, 메신저만 차단했을 뿐이니 저렇게 디엠이 와야 된다. 그누구도 오지 않았으니, 다들 내가 그러는 걸 공격으로 받고 똑같이 공격했을 거라 짐작해왔다. 나는 어쩔 수가 없던 건데, 그 사람들은 다 내가 소중하지 않았던 거라 생각하니 한국인은 4050대가 아니고서 모두 상처만 있다.

저 친구랑 지금까지 2년 친구할 수 있던 이유가 보인다. 또래랑 몇 달 이상 친구하기 어렵다. 근데 가능했던 이유는 내가 화낼 때마다 엄청나게 사과했다. 이번에 솔직히 수위가 셌는데, 실망시켜서 미안하다고 했다. 한국인이었으면 죽었다깨어나도 사과할 메시지가 아니었다. 그러니 나도 뭐라하는지 듣질 못하고 차단했다. 맞다. 늘 이렇게 풀리곤 했다. 얘가 유일했다.

워딩 호텔에 체크인하는데, 처음으로 제대로 된 오션뷰 호텔을 봤다. 그동안 국내 여행 다닐 때, 경비 아끼느라, 그리고 굳이 오션뷰 필요 없어서 다 시티뷰로 했다. 그런데 호텔 들어서서 바로 앞에 바다가 있는 걸 보고 참 기분이 좋았다. 내일이나 내일모레나, 아무리 파스 덕분에 다리 상태가 좋아졌다한들, 많이 걷고 싶지 않을텐데 방 안에서 바다를 볼 수 있어 참 좋다.

모처럼 저녁 먹으러 와서 까르보나라를 시켰는데 한 입 먹고 도저히 못 먹었다. 뭐 이런 날이 다 있나 욕이 나왔지만 계산하고 빨리 나가려했다. 며칠 동안 까르보나라 먹으러 갈까 생각했는데, 돈 아끼려고 맨날 웨더스푼이나 갔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입 먹고 못 먹었다고하니 돈 안 내도 되게 해줬다. 와우. 이게 가능했구나. 그동안 한 입 먹고 못 먹겠어서 나온 곳이 한두 곳이 아닌데, 오늘은 그렇게 따지면 운이 좋은 날이었다.

내가 그렇게 심하게 말했는데 바로 실망시켜 미안하다고 디엠 온 사람이 없었고, 밥도 한 입 먹고 못 먹었을지언정 돈 안 내게 해준 곳은 없었다. 이게 가능하다는 데이터를 얻은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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