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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33 워딩에서

by 이가연

작년 9월 말 추석에 창원 갔을 때 35도였던 기억이 있다. 휴대용 선풍기를 안 켜면 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번 9월 11일 비행기를 끊으며, 한국이 긴긴 여름으로 고생할 때 영국에서 좋은 날씨를 즐길 수 있을 줄 알았다.

개뿔. 한국 날씨가 좋단다. 왜 이번 여름은 짧냐? 그 나라는 아주 덥거나 아주 추워서 좋을 때가 희귀하잖아요! 날씨 좋은 날은 한국보다 영국이 훨씬 많다.

그러나 감사한 것이 있다. 나는 한국에서 여름이 가을로 넘어가는 걸 못 견뎌한다. 몇 년 됐다. 그 가을 바람에 막 울고 싶어 한다. 막 눈물 날 거 같아서 걷기 힘들어 한다. 그런데 이번엔 영국 도착하자마자 '오 여긴 가을이네'싶었다. 그리고 한국 날씨도 지금 여기랑 비슷할 거다. 그럼 그 눈물 날 거 같은 시기를 안 보내게 되길 기대해본다.

아침은 또 웨더스푼에 갔다. 문득 지겨웠는데, 워딩 웨더스푼은 처음이다. 장소가 같은 것도 아니고 뭐 어떤가. 어제 '도대체 이걸 먹으라고 준거야?' 싶은 파스타를 본 이후로, 더욱 안전한 선택을 하고 싶어졌다.

늘 똑같은 스몰 브렉퍼스트를 먹었는데, 오늘은 토스트까지 포함된 걸 먹었다. 잉글리시 브렉퍼스트가 과연 잉글리시라 불릴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아메리칸이랑 뭐가 다른 건가. 베이컨, 소시지, 계란후라이, 해시브라운, 그리고 볶은 콩이다. 특히 이 콩은 한국에서 어떻게 먹을 수 있는지 궁금하다.

친구한테 나 먹는 모습 찍어달라고 했을 때, 스스로를 보고 왜 이렇게 귀엽나 생각한 기억이 떠올랐다. 시작은 파리에서 달팽이를 처음 먹어볼 때 먹방이었다. 그때 영상이 마음에 들어서, 지난 5월 뮤비에도 찍어달라고 해서 넣었다. 오물오물 먹는 게 귀여운 거 같다. 이야.. 이렇게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어딨을까. 나부터도 나에 대한 애증이 아주 깊다. 나의 장점은 너무 자랑스럽고 대견해서 미치겠고, 폭발할 때마다 매우 힘들다.

역시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내가 귀여우니까 주변이 다 귀엽게 보이는 거 같다! 뭐든 다 귀여워 보인다. 내가 그렇게 욕하는 전형적인 한국인, 내 안에 그 모습이 있어서 그렇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나도 한국인이기 때문이고, 그걸 되게 싫어하고 영국인을 본받고 싶기 때문이다.

아침을 먹고 갈 데가 없어서 벤치에 앉아 글을 쓰고 있다. 바닷가는 추워서 가장 두꺼운 옷인 경량 패딩을 입고 나왔다. 역시 그래도 좀 춥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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