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영국을 급히 떠났던 그 기분의 10%는 느껴진다. 더 이상 여기 있을 이유를 모르겠다 하는 그 생각 때문이다. 뭐 딱히 보고 싶은 게 없다. 그때도 그랬다. 여기 더 있어봤자 할 거라곤 여행밖에 없는데 싫다고 했다.
한국에서 느꼈던 답답함과 지금 느끼는 숨 막히는 답답함, 우열을 못 가리겠다. 적어도 한국은 엄마가 때 되면 밥을 준다. 끼니때마다 밥을 먹어야 하는 게 너무 귀찮고 힘들 때가 있다. 한국은 적어도 그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된다.
그런데 해외에 나오면 내가 나를 돌봐야 한다. 지금 정신 건강 상태가 내가 나를 제대로 돌볼 수 있나. 저 직업 공고에 어젯밤에도 당장 지원하고 싶어 했다. 그런데 내 지금 건강 상태가, 아무리 학교에서 일하는데 불편함이 없게, ADHD라고 힘들지 않게 지원해 준다 한들 기본 건강 상태가 되어있는 게 맞나.
나의 욕심 아닌가. 분명 떠나면서 다신 안 온다고 하고, 학생 비자 끊으며 졸업 비자 안 받겠다고 확신한 데엔 이유가 있다. 여기 진짜 싫어했다. 그걸 단순 충동이라고 치부할 수 없다.
이제야 들여다보니, 나는 그냥 걔랑 있었던 소튼 거리나 걷고 싶었지 영국에 딱히 보고 싶은 게 있어서 온 게 아니다. 물론 공연하고 싶어서 오자마자 했다. 그런데 사실상 첫날을 제외하고 둘 다 불만족스러웠고, 이후엔 하지도 못했다. 오픈 마이크 한다고 쓰여있어서 갔는데 두 번이나 안 한다 했고, 미리 연락 취해둔 곳들은 그 어디도 답을 안 줬다.
공연 실패. 친구랑 즐거운 시간 실패. 이건 영국에 취직하러 와서도 겪을 현실을 보여준다. 내가 여길 7.5개월 살면서 오픈 마이크를 4번밖에 안 한 데엔 다 이유가 있다. 그중에서도 2번은 싫은 경험 했다.
내가 정신을 못 차리니 하늘이 다시 한번 알려주는 것 같다. '아니!!!! 물리적으로 한국을 떠나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걔를 벗어나요! 나 진짜 계속 이렇게 살아요?' 싶다. 도피잖아! 영국이면 벗어나냐. 어딜 지금 벗어난 거 같냐...
표면적 이유다. 공연이고 친구고 다 '본인 스스로에게 납득시키는' 이유다. 지난 8월, 12월, 5월을 소튼 거리 걷고 싶어서 다시 왔었다. 치를 떨며 소튼 호텔을 안 잡았다. 본인이 진짜 원하던 걸 원하는 만큼 추구하지 못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 본머스에서 워딩 넘어오며 소튼에서 내렸을 때, 정말 큰 위안과 위로를 느꼈다...
문득 내가 이 정도로 장기간 힘들어하면 걔도 업보 받고 있을 거 같은데 싶다. 내가 믿는 오컬트적 믿음 바로는, 누굴 이렇게 반 죽여놓으면 행복하게 다른 사람 못 만난다. 그걸 카르마라고 부르든, 업보라고 부르든, 깊은 차원에서 뭔가 막히게 될 거란 생각이 든다. 당연히 누군가와 밥 먹고 술 마시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 내 에너지가 원체 너무 강하다. 종종 생각날 거다. 스스로 일반인과 무당 사이라 생각하는 만큼, 난 그걸 느낀다. (문득 연예인과 무당 사주가 한 끗 차이란 말이 떠오른다.)
하늘도 참 야속하다. 한국 계속 살면서 기다리고 싶어 하는 거 누가 모르나. 그러고 사는 게 너무 힘이 드니까 노력하는 거 아닌가. 그렇게 벗어나려는 발버둥이 더 힘들다는 걸 아직도 못 깨달았나 하시는 건가. 내려놓음, 내맡기기, 참 말이 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