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ADHD와 나

분노가 1년 넘게 쌓이면

by 이가연

새벽 2시에 깨서 메일을 두 개 보냈다. 하나는 영어로, 하나는 한국어였다. 받는 대상이 둘 다 영국인, 졸업한 대학원 강사들이었다. 영어로 보낸 한 명은 그나마 낫다.

정말 열 받으면 내가 영어도 안 나오고 한국인에게 분노해왔듯 한국어로 싸재끼는구나 처음 알았다. 뇌가 일시적으로 고장난 상태이니 당연했다. 한국어 중간중간 단어는 영어로 나오는대로 썼다. 영어로 쓴 단어에는 disgusting, furious 등이 있다.

사연은 이렇다. 영어로 보낸 한 명은 분명 작년 여름 영국을 떠날 때 봤던 마지막 모습이 내게 진심이었다. 진심으로 연락 계속 하라고 했다. 그건 예의상한 말이 결코 아니었다. 그게 예의상한 말이면 나는 도대체 사람들 사이에 어떻게 섞여 살아가아할지 모르겠다. 가망이 없다. 그 정도로 믿었다. 그런데 1년이 넘도록 한 번도 답을 못 받았다. 나는 12월, 5월 방문했고 이미 12월에 그 사람을 포기했다. 그럼에도 5월 전에 연락을 몇 번 취했는데 안 받았다. 그래서 이번엔 생각도 안 했다.

그런데 예전 커리어 상담사가 출산 휴가 간다며, 그 사람에게도 연락해보라했다. 내가 이미 연락 많이 해봤다했는데, 이번 봄에는 일이 좀 있으셨다며 다시 해보라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이 사람이 싫어진 상태였지만, 그래고 셋이서 같이 만났던 좋은 추억이 있으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연락했다.

그로써 지난 1년 한 10번째 보내는 메일이었는데 역시나 답이 없었다. 이건 이미 한국에서 일이다. 보낸지 2주는 더 지났다. 그런데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는 새벽 2시에 깨서 너무 열받아서 영어로 와다다 보냈다. Hi 같은 인사도 없이 시작부터 I don't understand (이해가 안돼)였다. 그래도 나쁜 말은 안 했다. 나에게 영어로 욕 가르친 사람이 없어 다행이다. 미드, 영드도 다 욕 안 나오는 평화로운 프로그램 보길 좋아한다...

두번째는 아주 골때렸다. 영국인한테 보내는 거면서 메일 시작이 "야" 였다. 어차피 번역기 돌려봤자 Hey 로 되겠지. 다행이라 생각해야하나. 이 사람은 메일 답을 안 한거 말고도 이미 작년에 잘못한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영어조차도 안 나온 것이다.

이렇게 되면 힘든 점이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역시 한국에서 봉사밖에 못하고 살겠구나 이다. 이미 화낸 봉사처조차 많다. 봉사 구하는 것도 어려웠다. 한국에서 다 차단하고 일 그만 둔 것처럼 영국에서도 발생하면, 경제적 손실도 어마무시하고 심하면 소송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그게 막아지지 않는다. 저 두 사람에게 저리 한 것이, 향후 어떤 부정적 영향을 미치더라도 막을 수 없었다. '내가 진짜 저 학교랑 끝났구나' 생각은 애초에 지금 드는 것이고, 아예 마비 상태다. 이 새벽 2시에, 옆에 누가 있어서 내 핸드폰 던져버렸어야만 가능했다. 그렇게 만든 한국에 적이 아마 많을텐데, 영국에도 이리 만들면 어쩌나. 암담하기 그지없다.

둘째, 걔는 골백번도 더 나에게 한 심한 말들이 다. 그런데 그때마다 화가 나는 게 아니라, 항상 심장 떨어지고 심장 아파서 부여잡기만 했었다. 물론 지난 8월 중순 이후로 그러고있지 않지만, 1년 반을 그랬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발생할수록, '걔는 대체 나에게 뭐길래 분노하지 않았지. 골백번 마음이 찢어지기만 하고, 상대방이 극혐스럽지가 않았지 ' 싶어서 걔에 대한 위상이 무슨 신처럼 높아진다. 말도 안 되기 때문이다.

나는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를 크게 받으면, 그 서러움이 다 분노로만 빠진다. 얘 빼고 다 그렇고, 그건 절대 통제될 수 없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나는 일이다. 손가락이 뇌를 거치지 않고 와다다 이미 전송 누른 상태다. 뿐만 아니라, 오늘 한 행동처럼 똑같이 할 수도 있었다. 지금은 혼자 갑자기 난리가 난 거지만, 걔 겹지인이 나에게 아주 분노 자극을 팍팍 주던 상태였다. 그런데 걔 귀에 들어갈까봐, 정말 부들부들 떨며 비상 악 먹으며 차단 누르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아무 말 안하고 차단을 누를 수 있었던 게,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다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차단 누르고 나서 몇 달이 지나도, 아니 지금도, 그 겹지인에게는 욱하는 감정 계속 올라온다.)

누군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상황에서 고려가 되는 것, 그 통제 안 되는 ADHD를 미친 고통 속에 통제시키는 것, 그게 걔 아니고서 될 거란 믿음이 안 생겨서 그렇다. 평생 이럴 거 같다.

첫번째 이유는 극복이 가능하다. 애초에 좋은 사람이었으면 분노도 안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폭발하게 만들지 않는다. 애초에 멀리해야했을 사람이다. 분노에 너무 일리가 있었다. 그 표현이 세서 상대방이 반성을 안 하고 나에게 화만 날까봐 짜증나는 거다. 몇 년 전만 해도, 상대방이 못 알아듣게 욕설만 막 나왔다. 다 상담 훈련을 통해, 이제는 상대방이 내가 왜 분노하는지 알아듣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두번째 이유는 생각날 때면 도무지 납득이 안 되어서 체한듯 가슴을 치고 싶다. 이런 일이 겹치고 겹쳐 신적인 존재가 된 것이 안타깝다. 다른 사람이 생길 거란 말이 나에게 안 통할 수 밖에 없다. 부디 방법이 생겼으면 좋겠다. ADHD은 약을 먹어도 ADHD이지만, 이 정도로 일상에 자주 방해받으며, 일을 아예 못하며 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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