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도착하자마자 캐리어는 맡기고, 파스타 먹으러 향했다. 지난번보다 트러플을 한참 적게 줘서 '또잉' 싶었지만, 같은 가격에도 엄마가 한 거랑 별 다를 바 없는 파스타도 많이 봤으니 그냥 먹었다. 확실히 트러플이 맛있다. 여자 직원 분 서비스가 참 좋아서, 서비스 차지가 붙어도 괜찮았다.
현대 미술 별로 안 좋아해서 테이트 모던은 안 가봤다. 날씨가 흐릿흐릿 당장 비 올 것 같아서, 배를 안 타기로 했더니 한 시간 남짓 시간이 남았었다. 밀레니엄 브리지를 건너고 나니, 바로 앞에 테이트 모던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들어갔다. 역시 현대 미술은 안 좋아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런던을 벌써 열다섯 번째 와봤기에, 아직도 안 가본 유명 명소면 다 이유가 있다.
런던이라고 처음엔 도파민이 뿜뿜 해서 무리했더니, 어느덧 만 2 천보를 넘은 걸 확인했다. 한 8천 보부터 기절할 것 같았다. 중간에 쉑쉑버거 먹으며 충전했는데도 회복되지 않았다. 결국 그냥 공항에 일찍 가기로 했다. 원래 계획대로 배를 탔으면 발이 덜 아팠을 텐데, 중간중간 비가 올 정도였다. 워낙 날씨 좋은 날들에 타봐서 실망할 거 같았다. 내년에 타면 되지. 이미 2022, 24, 25년에 세 번 탔다.
이번에 사람들이 내가 캐리어 끌고 계단 오르내릴 때마다 도와주길래 너무 고마우면서도 이상했다. 새로 바르기 시작한 선크림이 바르면 얼굴이 대따 하얘지던데 그래서 창백하고 피곤해 보이나 싶었는데, 지금까지 기내용 캐리어를 끌고 다녔단 게 떠올랐다. 이번엔 큰 가방을 들고 낑낑거리니 그런 게 분명하다.
이 친절하고 낯선 사람에 거부감 없는 사람들. '착한 사람들'이라고 썼다가 한국인이 착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라서 바꿨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은 이 정도로 즉각 말 걸며 도움이 필요하냐 묻지 않는다. 내가 할머니도 아니고, 젊은 사람인데, 여자라 그런가 역시 영국 신사들이라며 박수가 나온다. 비단 남자뿐만이 아니다. 여자도 도와줄까 하고 들어준 적이 있다.
그냥 내 표정이 어리둥절 두리번두리번 이상하기만 해도 도움이 필요하냐고 묻는다. 한두 번이 아니다. 도움이 필요한 건 아니고, 그냥 잘못 내린 거였는데 참 고마웠다. 한국도 제발 이랬으면 좋겠다. 분명 한국도 아직 시골은 안 이러리라, 한 20년 전에는 안 이랬으리라 믿는다.
지금 심정으론, 원래는 내년 2월에 오겠다고 했지만 취소다. 런던 음악 교육 엑스포 오고 싶어 했는데, 그거 하나로 오기엔 2월 날씨가 아주 별로일 거다. 지금으로선 오더라도 내년 여름일 거 같다.
설령 영국 땅에 만나고 싶은 사람이 한 명도 없어지더라고, 영국은 지구상에서 내가 한국을 제외하고 가장 편안하게 느끼는 나라다. 2022년 처음 런던에 왔을 때부터 그렇게 느꼈다. 누구와도 상관없이, 영국은 계속 제2의 고향일 것이다. 아무리 여기 살기는 징글징글해서 싫다고 해도, 때 되면 또 올 것을 아는 곳, 고향이다.
당장 영국 가고 싶은 욕망만 심하지 않으면 돈 걱정이 없다. 그건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