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을 편집하다가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친구, 설마 내가 걔한테 '내가 너 없이도 잘 지낸다'를 보여주기 위해 붙들고 있던 친구인가. 이거 설마 나만 지금 알고, 걔는 글에서 내가 말하는 거 보면 다 알았나. (원체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속속들이 읽던 놈이기 때문이다. 똑똑한 놈.)
왜냐하면, '걔가 사라졌기 때문에 내가 영국인 친구랑 더 친해질 수 있었고 그래서 영국 발음을 얻은 거다, 영국인이랑 그렇게 친하게 지내는 한국인 유학생 잘 없었을 거다'와 같은 말을 한 기억이 있다.
영국 오빠는 또래가 아니다. 이 친구가 진짜 유일한 또래 친구였다. 얘는 내가 그동안 겪은 한국인과 다르게 유일하게 사과를 했다. 말을 안 하고 혼자 꽁하고 있다가 분노하던 것도 아니었다. 잔잔바리 화를 많이 냈었는데, 그때마다 미안하다고는 하지만 절대 고쳐지진 않은 거다. 비슷한 일로 사과를 무한 반복하는 건 진짜 미안한 게 아니다... 나를 위하던 사람이 아니다. 애초에 사과하는 사람을 못 만나봐서 이렇게 되었다.
가슴이 아프지만 백번 천 번 맞는 말이다. 이 오빠가 나의 유일한 친구인 이유는 정말 별 거 없다. 1주, 2주씩 부재해도 서운한 적이 없다. 이 사람에겐 정말 서운해본 기억이 없다. 상황을 다 설명해준다. 내가 소중했던 사람에게 분노하는 건, 모든 경우 서운함에서 출발했다.
오빠가 나처럼 안 바라는 사람도 없다고 더 바라도 된다고 해줘서 참으로 고맙고 찡했다. 너무 많은 오해를 받은 기억이 났다. 애인을 한두 달만 사귀어봤다고만 해도, 기준이 높아서 그러냐는 말을 열받을 정도로 많이 들었다. 정확히 반대다. 아예 기준이 없으니까 아무나 막 만나서 내가 3주면 화가 머리끝까지 난 거다. 3주를 넘기는 놈을 본 적이 없다. 눈이 땅바닥에 가있던 건 남자뿐만이 아니었다. 전부터 남자는 참 손절 잘했다. 걔를 제외한 모두 한두 달이면 너무너무 잘했다. 애초에 만나질 말아야 했지만, 그거라도 다행이었다. 늘 여자가 힘들었다. 여자가 속 썩였다. 그 이유는 아무래도, 친구 한두 명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연애는 안 먹어도 되는 디저트고 친구는 밥이었던 거다. 친구도 디저트인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