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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이 사랑

깨달음과 의미 부여

by 이가연

'그동안 수고했어'는 걔가 아니라 친구였나 보다. 영어에는 '그동안 수고했어'라는 말이 없어서 아쉽다. 가수가 제목 따라간다는 말을 믿는데, 내가 저 친구에게 이리 손절 멘트를 칠 줄 몰랐다. 저 친구와의 관계에서 하나의 교훈을 꼽자면, '사과를 하는 게 당연하다. 그동안 사과를 안 하던 사람들이 이상한 거다. 똑같은 일로 계속 사과를 하면, 그 순간에는 내가 풀려도 터진다. 나를 위하는 사람은 절대 같은 잘못을 그토록 반복하지 않는다. 나는 이유 없이 분노하는 사람이 아니다.'이다.


사실 교훈을 하나 더 꼽아야 한다. 영국인이라고 한국인하고 다른 잣대를 내밀었다. 한국인이었으면 진작 작년 여름에 끝났을 관계다. 나도 모르게 소위... 엄청 봐주고 있었다. 한국인이었으면 진짜 얄짤 없었을 일들이었다. 한국인이 잘못을 하면, 그동안 비슷한 잘못을 했던 지난 사람들까지 다 떠올라서 얄짤 없었던 거고, 영국인은 처음이라 과거 나한테 잘못한 영국인이 없으니 넘어가기 쉬웠나 보다.




저기서 내가 말한 기질은, 신경 다양인이다. 오빠도 ADHD 특징이 좀 보인다.


나는 깨달음과 의미 부여로 살아가는 사람 같다. 이게 나의 방어 기제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힘이 드는 것이다. 54일 묵주 기도하고도 아무런 응답을 못 받았을 때, '하늘이 점지하신 때가 아니다... 서로가 아직 성장해야 할 것이 남아있는 것이다...' 했다.


내가 걔를 좋아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인정하고 사과하던 거였다. 걔가 진짜 상처받았냐고 물으니 내가 약간 애 같이 뿌엥하며 "웅!!"했다. (가만 보면 순간순간 내가 애교가 베여있었다 어우 짜증 나... 전화라서 표정이 안 보였어서 망정이지, 완전 서운해서 삐진 표정이었다.) 걔가 나한테 니가 그렇게 느꼈다면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맞다고 했을 때, 이미 거 심장이 온천탕에 들어가 있었다. 그런데 머쓱하니까 "미안하다고 말하는 게 맞다. 그게 사과냐?" 했다.


애초에 뭐 때문에 상처받았는지 기억도 안 난다. 그런데 그냥 그 순간이 되게 기억에 남았다. 이 장면 진짜 많이 곱씹혔다.


이번에 이 친구 일을 통해서, 바로 인정하고 사과한다고 해도 그게 반복되면, 그건 나를 아끼지 않는 거란 걸 깨달았다.



분노하는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너무 힘이 든다. 가장 견디기 힘든 내 모습이다. 정신 건강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고생해 온 것이 분노다. 우울, 불안, 스트레스 등은 분노에 비하면 개미 눈곱만 했다. 애초에 날 그렇게 만들지 않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사과하는 사람조차도 만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이걸 깨닫는 게 중요했다. 걔가 만약 똑같은 잘못으로 계속 사과하는 일이 생기면 어쩌겠나. 그게 누구든 과감히 손절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게 필요했다. 걔는 가뜩이나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람 중에 내 가슴에 못 박아버린 상처가 가장 많아서 더 안 된다.


위 문장을 당사자가 읽으면 심각해질 테니 아래를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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