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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1을 뚫을 용기, 그리고 현실

by 이가연

한 번 실용음악과 입시를 통과하면, 어지간한 경쟁률에 쫄지 않게 되니 평생 좋은 일이라고 말해왔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용기 있다, 도전적이다'는 '무모하다, 현실성이 없다'와 같이 쓰일 수도 있는 말이다.

나는 2016학년도 정시 보컬 6명 모집, 900명 지원에 최초합으로 합격했다. 경쟁률 150:1이다. 살면서 내가 지원했던 가장 높은 경쟁률에는 약 500대1도 있었다. 외국에선 상상도 못 할 경쟁률이다. 지금은 많이 낮아진 걸로 알고 있다.

대학에 입학했던 2016년부터 본격적으로 오디션을 보고, 앨범을 발매하며 활동을 했다. 늘 경쟁이었다. '이걸 지원한다고 될까'하며 이제는 대충 공고만 봐도 각이 나온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지원해 왔다. 거기엔 '내가 150대1도 뚫어봤는데'가 종종 작용한다.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5대1, 10대1 따위의 경쟁률은 경쟁률 같지도 않아 보인다... 이 글은 얼마 전 망원동 독립서점에서 산 책, '동경예대의 천재들'을 읽다가 쓰는 글이다.

p42 2015년의 경쟁률은 4.8:1. 100명의 자리를 놓고 약 500명이 경쟁했다. 뚫기 어려운 학교라는 이름에 걸맞은 경쟁률이다. 예대 전체의 경쟁률을 봐도 7.5대1에 달한다. 옛날에는 60:1을 넘었던 적도 있다고 한다. 입시 경쟁률이라기보다 차라리 현미경의 배율에 가깝다.

음... 한국의 실용음악과 보컬 전공은 2015년에 전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학교들도 100대1이 넘었습니다만. 100명의 자리를 놓고 500명이 경쟁했다는 말에, 그게 뭐 어때서요 싶다... 나는 고작 3명, 5명의 자리를 놓고 몇 천명이 경쟁하는 입시를 20번 봤는데요... 이런 독자는 거의 없겠지. 딱 실용음악과와 연극영화과만 할 수 있는 경험이다.

분명 아직까지도 자랑스러운 일이나, 그 때문에 내가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반인이면 5:1도 내가 떨어질 확률이 있다는 걸 '인지'한다. 그런데 나는, 5:1이면 그게 경쟁률 같지도 않아 보이기 때문에, '내가 왜 떨어져?' 할 가능성이 훨씬 높지 않을까.

도전 정신은 어차피 나의 디폴트 값이다. 그런데 어느 정도 현실성을 갖추어야, 길게 갈 수 있지 않을까. 너무 쉽다고 뇌가 자동으로 반응하면, 그 너무 쉬운 일도 떨어진 자신을 바라보는 게 얼마나 힘들겠는가.

이런 고충도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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