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강력한 방어 기제 중 하나가 유머란 걸 안다. 자학 개그가 입에 배었단 건, 너무 아파서다.
얼마나 많은 순간 이제 정말 한계라고, 위기라고 느꼈는지 모른다. 여전히 종종 상처의 순간이 떠오른다. '가슴이 찢어진다'는 한국말은 누가 만들었을까. 영어의 break은 잘 와닿지 않는다. 정말 다리 찢기 하듯이, 고기를 찢듯이 찢어지는 느낌이다. 언제쯤 안 이럴까.
드라마를 볼 땐 너무 즐거웠다. 계속 온몸을 베베 꼴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드라마를 끄면 현실이다. 혼자 막 즐거워했을수록, 현실감이 확 들면서 괴로웠다. 소위 현타라는 말과 다르다. 현타는 무감각하고 공허한 상태가 아닌가. 나는 모든 감각이 다시 되살아나는 느낌이다. 드라마는 잠깐 마취약이었을 뿐.
원래는 시시때때로 그랬는데, 이젠 어쩌다 가끔이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발견한 방법들이다.
가장 간단한 방법 첫째, "사탄아 물러가라"를 서너 번 중얼거린다. 쓸~~ 데 없는 불안과 생각이 몰려들 때 보통 괴롭다. 진짜 사탄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걸로 안 될 때가 있다. 현실적으로는, 그때마다 필요한 약을 입에 넣는다. 수면 도와주는 약을 먹으면 1시간이면 잠이 온다. 오늘도 시차 적응 때문에 새벽 3시까지 잠이 안 와서 아까 먹었다. 곧 졸릴 거다. 새벽이면 온갖 부정적 생각이 도사리기 쉽다. 아침에 힘들면 생각 좀 줄여주게 ADHD 약, 밤에 힘들면 잠 오는 약 먹으면 된.. 다..
여담으로, 내가 봐도 나는 ADHD약 필요 없을 거 같고, 영국엔 비상약만 들고 갔을 정도로 원래 정신과 약을 끊었었다. 과거 내가 얼마나 힘들게 약을 끊었었는지는 말하지 않는 편이 더 좋을 거 같다. 그렇게 힘들게 끊은 약을, 작년에도 그렇게 다시 안 가려고 한 병원을, 누구 때문에 라고 해버리면 나도 힘들고, 상대도 힘들다.
다시 정신과를 찾게 된 덕분에 내가 ADHD란 걸 발견했으니, 다행인 일이다.
마지막은, 이렇게 솔직하게 다 글로 남기는 것이다. 올해 2월부터 정말 많은 글을 써왔다. 물론 이 중엔, 다시 읽으면 너무도 부끄러울 글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그때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것, 이거 참 아무나 할 수 없단 것도 올해 알았다. ADHD 슈퍼 파워다. 글을 쓰고 나면, 스스로에게 토닥여주는 기분이다.
언젠가는 사탄이 아니라 천사의 목소리에 둘러싸여 사는 것만 같고, 어떤 약도 생각이 전혀 안 나고, 글도 지금의 절반 이하로 줄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