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신(母神)

양육자는 아이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by 마들렌

대학원에서 가족복지학을 공부할 때, 고 임종렬 박사의 저서 모신(母神)을 접하게 되었다.

리포트를 작성하기 위해서도 필요했지만, 가족복지 및 사회복지를 하는 사람은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교수님께서 강조하셨던 책이기도 했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많은 부분 이해하고 수용하게 되었으며, 심지어 그동안 내가 많은 대상자(client)들을 만나면서 가졌던 의문이 하나 둘 베일이 벗겨지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 바로 이거야." 나는 무릎을 쳤다.


이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한 생명의 출생과 성장과정 안에서 더 나아가 한 아이가 어떤 미래를 살아가게 될 것인지에 대해 어머니- 즉 양육자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그 중요성에 대해 설명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옛날에 '사회복지'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전에는 '사회사업'이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사례관리(case-management)를 대상자 중심으로 하였지만, 사회복지의 관점이 폭넓게 조정되면서는 사례관리(case-conference)로 변경을 하게 되었다. 사회복지 서비스가 필요한 대상이 한 개인으로 국한되었다가 더 넓게 그 개인과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까지 확대하여 살펴보아야지 제대로 된 서비스를 지원할 수 있다는 개념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내가 사회복지현장에서 만난 장애인, 여성, 노인, 폭력에 시달리는 피해자들... 등은 한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가족 내 갈등과 문제를 함께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고 배웠다. 무인도에서 먹을 것만 풍족하면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인간답게는 살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다움'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너무 철학적인 질문인가, 갑자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음... 그냥 어울려 살면서 즐겁고, 행복하게 살면 되는데...

'인간다움'의 사전적인 의미는,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것으로 기대되는 자질이나 덕목'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런 자질과 덕목을 대부분 가정의 어머니를 통해서 학습하게 되는 것이다.


아기는 어머니의 자궁을 떠나 세상 속으로 머리를 들이밀 때, 처음 접하는 빛과 공기에 놀라서, 그리고 폐호흡을 시작하기 위해서 울음을 터뜨린다. 아기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어머니의 태 속과는 다른 환경에서 어머니의 보호를 받고 사랑을 먹으면서 성장해 가게 된다. 어머니의 성격과 습성과 버릇, 선호하는 다양한 물질과 문명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의 유전자 결합으로 새 생명의 신체와 지능 등이 결정되기도 하지만, 더 거슬러 올라가 부계와 모계의 조합으로 '나'라는 존재가 결정이 된다는 것이다.


가끔 아이들이 말을 잘 안 듣거나, 속을 썩일 때, "너는 누구를 닮아 그렇게...."라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은 누워서 침 뱉기다. 그 말 안에는 자신과 배우자의 욕도 들어가 있고, 조상님 욕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아시다시피 당신의 아이가 하늘에서 '툭' 하고 떨어진 아이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정환경은 한 생명이 성장하는데 크나큰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져 왔다.

아이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바른 인성을 가진 인물로 성장시킬 수도 있고, 어둡고 포악하고 잔인한 인물로 성장하게 할 수도 있다.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은 남에게도 사랑을 베풀 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하겠지만, 폭력이 난무하는 가정에서 생활한 아이는 어릴 때부터 인생이 고달프기 짝이 없어서 아마도 남에게 베풀 인정도, 마음의 여유도 가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 그렇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가정폭력 가정에 2명의 아들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1명은 폭력을 답습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폭력을 행사할 것이고, 다른 1명의 아들은 자신이 봐 왔던 끔찍한 광경을 다시는 재연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다. 그처럼 성장 환경은 중요하다.


나도 가정폭력으로 암울했던 10대 시절에 많이도 방황했지만, 신앙의 힘으로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을 많이 희석시켰다. 그리고 사회복지사로 근무하면서 내가 만나는 대상자들에게 나의 정성과 열정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그래서였는지 사랑도 많이 받았다. 진심이 통했던지 고마운 기억을 많이 가지고 있다.




중증장애인시설에 근무했을 때에 1년에 단 1번만 딸을 만나러 오는 어머니가 계셨다. 경제력이 있는 집안이었는데, 출산 시 장애가 생겨서 듣지 못하게 된 딸을 치료하기 위해 전국의 병원을 찾아다녔다고 하셨다. 희한하게도 생김새가 똑같이 생겨서 내심 놀라워했다. 어머니가 1년에 한 번 만나는 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바라보는 표정이... 내 짧은 글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애끓는 모정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싶다. 보고는 싶지만, 또 한편으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딸의 모습을 마음에라도 새기시려는 듯, 소풍을 가든지 좋은 데에 가게 되거든 예쁘게 나온 사진을 1년에 1번만 보내달라고 부탁을 하고 가셨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이 어렵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장애인부모회의 어머니들에게서 굉장히 호전적인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이런 감정이 아닐까 싶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자식이 내가 눈 감고 나면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하는 마음에, 자식보다 하루라도 늦게 눈감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그것이 아픈 자식을 가진 어머니의 마음인 것이다.




아동학대 피해자를 지원하면서 젊은 부모들을 많이 만났다. 학대 가해자가 부모인 경우에는 아이와 동행할 수 없지만, 타인이 가해자일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아동의 피해상황을 알고 난 뒤 아버지들은 신고를 꺼리는 경우가 더러 있었고, 어머니들은 예민하게 반응하였다. 학대 후유증을 걱정하다가 너무 나가는 경우에는 있지도 않은 피해를 상상하여 어머니가 정신과 진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내 아이가 다른 누군가로부터 신체적으로 학대를 받고 조롱을 받으며 공포에 떨었을 상황에 눈물이 나고, 살이 벌벌 떨리게 된 것이었다.


때로는 부모교육이 필요하지 않은가 걱정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폭력, 학대에 대한 인지가 부족한 부모는 이게 신고 거리가 되냐, 시간 없으니, (신고가 되었으니 마지못해 출석하여) 빨리 마치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동학대 피해이든, 강제추행 피해이든 부모가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아동을 진정시키고, '너의 탓이 아니다'라고 안심을 시킬 수 있다. 그리고 재발방지를 위해 교육도 할 수가 있다.

아동은 부모의 사랑과 지지로 피해의 아픔에서 회복할 수 있다.

공포에 떨다가 힘을 잃은 눈동자는 보기에도 안타깝고, 애처로운 마음이 들었다.




술이 웬수같다는 생각이 어느 순간부터 들기 시작하였다.

적당하게, 품위 있게 마시면 금상첨화이겠지만, 코가 삐뚤어지게, 필름이 끊기도록 마시면 화[]의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나도 20대에는 많이도 마셨고, 그다음 날 멀쩡이 걸어 다닐 수 있었지만,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약물 복용이 필요한 나이가 지나서는 아주 몸을 조심하게 되었다.

언젠가 교육을 갔을 때, 회식을 하여 술을 많이 마시고 난 뒤, 20대는 생생하고, 30대는 쪼금 힘들고, 40대부터는 약물(영양제 등) 복용이 필요하다는 우스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것 같다. 마치 주신[酒神]을 섬기는 것처럼...


성폭력 피해를 입은 사람들 대다수가 술자리에서 낯선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떡실신을 하도록 마셨고, 일어나 보니 모텔에서 옷이 다 벗겨진 상태였다는 경우가 허다했다. 안타깝게도...

나쁜 놈들 중에 나쁜 놈은 술 안에 약물을 섞어서 의도적으로 피해를 입히는 경우도 있었는데, 우리는 피해상황을 들어보고는 약물검사(마약성분)도 의뢰한다. 증거를 찾아야지 가중처벌을 할 수가 있으니까.

세상에는 좋은 사람도 있고, 나쁜 사람도 있는데, 특히 낯선 사람에게는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어느 날 TV를 보다가 깜박 잠이 들었는데, TV에서 흘러나오는 여주인공의 대사에 정신이 번쩍 든 적이 있었다.


"~ 여기에 제 손목 값이랑 웃음 값은 없는 거예요. 저는 술만 팔아요. 그니깐 여기서 살 수 있는 건 딱 술. 술뿐이에요."


잠결에 '우와 뭐가 이렇게 신선하게 충격적이냐? '하면서 일어나 끝까지 시청했던 적이 있었다. 얼마나 주체적이고 명확한 소신의 표현인가!


그렇게 그 드라마(동백꽃 필 무렵)에 푹 빠져 몇 달을 보낸 기억이 있다. 보고 있으면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나서 그리워지기도 하였고, 보는 내내 순박하고 사람 냄새나는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그런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피해자들의 아픔을 보면서, 가해자들의 유형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모질고, 독하고, 잔인하고, 저런 못된 행동은 어디서 배웠을까 생각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건강하지 못한 가정에서 성장하였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활발해지면서 자녀가 어머니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은 아주 제한적일 수밖에 없게 되었다. 자녀가 어머니와 눈을 맞추고,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하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녀교육은 부와 모가 같이 하는 것이 맞지만, 그래도 어머니의 비중이 더 크다고 본다.

그렇다고 여성들에게 사회활동을 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그만큼 중요한 어머니의 책임과 역할을 쉬지 말라고 요청하고 싶다.


내 어머니는 옛날 사람이었으며 학식이 많은 분도 아니셨고, 지금은 안 계시지만, 참 고마운 분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아버지와의 관계는 말년에야 화해를 하셨지만, 자녀들에게는 다정하고 부드러운 분이셨기 때문이다. 일을 하시면서도 편치 않은 집안 분위기에 6남매가 엇나가지 않도록 잘 다독여 주셨고, 잘못을 하였어도 훈계는 하셨지만 매를 드신 적은 없으셨기 때문이다.


요즘의 젊은 부모세대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아이들도 물질적으로는 풍족하고, 다양한 먹거리와 볼거리, 놀이문화를 누리고 살고 있지만, 어느 순간부터 애처롭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였다. 감성적으로는 메마른 세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는 세대들이 좋은 책을 읽거나, 좋은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서 숨어있는 감성을 키우고, 자연과 친해지면서 메마른 감성을 더욱더 촉촉하게 만들어가기를 바란다.


폭력이 난무하고 피가 사방으로 튀는 영화나 드라마보다는, 가족과 함께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가슴이 따뜻해지는 드라마를 보는 그런 저녁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