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눈물

성폭력피해를 입은 어린 딸의 어머니

by 마들렌

피해자 지원 기관에서의 하루는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하다.

주간 근무 시간에는 주로 피해자 진술 녹화가 예정이 되어 있어서 일정을 계획할 수 있고, 걸려오는 전화응대로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 모르게 지나갈 때가 대부분이다. 다른 기관들도 그렇겠지만, 특히 월요일에는 주말 동안 미루어진 기관마다의 문의사항이나, 피해자의 호소 사항을 받아야 하므로 더욱더 바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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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코로나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진술 녹화나 응급키트가 의뢰되어 센터를 방문하시는 피해자가 어디를 거쳐서 왔는지, 미리 안내하고 설문조사는 하지만, 기억도 못하는 피해자에게는 어떻게 확인할 수 있겠는가? 그래서 코로나 의심 피해자의 방문으로 사무실이 몇 번 폐쇄조치가 된 적도 있었고, 사무실 방역을 하는 동안 병원의 지하 사무실에서 대기한 것도 여러 번 있었다.


저녁 근무는 대체로 조용하게 시작이 되지만,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피해자가 있기 때문에 항상 긴장 상태로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주간 근무 때 마무리하지 못한 (상담) 일지나 자료를 정리하고, 바뀐 법령 등을 숙지하면서 팀별로 나누어진 자신의 업무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곤 하였다.


저녁 근무일 때 조용하게 넘어가는 날은, 피해자가 없는 날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무실에서는 우리끼리의 금기 사항이 생겨났다. 금요일 저녁에는 절대로 요일을 물어보면 안 된다는 것, 사람들이 말하는, '불금(불타는 금요일)'이라 사건 사고가 많다 보니, 술을 마시고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성폭력피해사례가 유독 많은 요일이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또 "왜 이렇게 조용하지?"라는 말도 하면 안 된다. 말이 씨가 된다고 그런 말을 하고 나면, 거의 열이면 아홉 피해자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날도 금요일 었을 것이다. 밤 10시가 넘어갈 무렵, 조용한 사무실에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하였다. 수사팀으로 걸려온 전화를 파트너 경사님이 빠르게 달려가서 받고, 차분하게 질문하고 확인하면서 기록을 하였다. 덩달아 옆에 있던 간호사 선생과 나는 긴장하며 귀를 쫑긋 세운 체로 사건 내용을 듣게 되었다.


통화가 끝나고 나자, 담당 경사는 천천히 피해내용에 대해 말해 주었다.

"피해자는요, ~ 남자 동급생에게 성폭력 피해를 입었는데, 지금 00 센터는 응급키트 대기자가 있어서 많이 기다려야 한대요. 그래서 저희 기관으로 오시는 거고요. 피해자가 미성년이어서 어머니가 동행하신다고 해요. 지금 어머님이 몹시 날카로운 상태라서 신경을 좀 쓰셔야 할 것 같대요."


사건이 발생하면, 보통 관할 경찰서의 여성청소년수사팀에서 사건을 접수하여 [해바라기센터]에 파견되어 있는 수사팀에 증거채취를 의뢰하게 된다. 센터에는 수사팀-상담 및 법률지원팀-의료지원팀이 한조가 되어서 피해자 지원을 한다.


담당 수사관이 접수한 사건수첩을 통하여, 피해자의 인적사항과 피해상황을 같이 확인하고 각자 자신의 영역에 필요한 자료를 기록한다. 사건이 발생하면, 피해자 연령대를 확인하고 미성년일 경우, 반드시 보호자가 동행하도록 안내를 해야 한다. 이건 수사팀의 영역이고, 상담팀에서는 피해자의 심리적 상태와 동행인이 누구인지, 피해자가 피해사항에 대해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할 경우 동행인으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고,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도 파악해야 한다.


간호팀에서는 피해상황에 따라 응급키트 검사 단계를 수사팀과 의논하여 증거채취에 누락되는 것이 없도록 해야 하며, 만약의 경우를 위해 피해와 관련하여 각종 진료사항을 염두에 두고 피해자와 보호자에게 안내하도록 하는 것이 보통이다.

처음 방문하였을 때, 상담기록과 한 번의 증거채취로 가해자에 대한 최대한 많은, 정확한 자료를 수집해서 관할 경찰서의 담당 수사팀에 전달하고, 기록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며 의무였다.


십 대의 피해자는 어머니와 함께 00 센터에 가던 길에 '대기시간이 길다'는 연락을 받고, 경로를 바꿔서 우리 센터로 오시는 중이었다. 연락을 받고 1시간 이 흘쩍 경과한 뒤, 담당 수사관과 피해자 그리고 어머니가 센터에 도착하였다.

수사팀이 조금 떨어진 장소에서 사건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있는 동안, 상담실로 모녀를 안내하여 잠시 숨을 돌리시도록 하였다. 무덤덤한 피해자의 얼굴과 달리 그 어머니는 눈을 감은 채 깊은 한숨을 내쉬고 있는 모습이 참 대조적이었다.

피해상황을 파악한 후에 상담을 시작하면서 내가 느낀 것은, 동급생으로 부터 피해를 입은 아이는 지금 정신이 하나도 없고 머릿속이 하얗다는 것이다. 그래서 표정이 무덤덤하게 보이는 것일 뿐, 이 시간 이후, 집으로 돌아가서 정신이 좀 들게 되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알게 될 것이고, 그리고 그 후에는... 거대한 폭풍이 밀려올 것 같았다.


반면, 어머니는 현실 직시를 하고 계셨다. 입을 굳게 닫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으면서, 호흡을 가다듬으며 앉아 계셨다.

"(힘없는 목소리로) 내 아이가 너무 가엾고 처량하지만, 한편으로는 왜 그런 놈을 따라 나가서 그런 말도 안 되는 피해를 입었냐고! 하면서 소리를 지르고 싶어요."

"... 선생님, 어떡하면 좋을까요? 우리 애 어떡하죠? 내가 괜히 이사를 왔나 봐요. 그냥 그곳에서 살았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운전해서 오면서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어요."

어머니는 기어이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증거채취가 끝나고, 피해자와 어머니는 어두운 밤길을 뚫고 집이 있는 곳으로 떠났다. 억양이 센 어머니는 외모는 강단 있어 보였지만, 속은 이미 무너져 내리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한참 동안 나는 마음이 무거웠다. 그 어머니의 눈물이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나에게 다가와서 더욱 마음이 아프고 쓰렸다.


우리 센터는 위기지원형 기관이다. 지속 상담이 어려워서 주로 피해자가 거주하는 인근의 피해자 지원 기관으로 연계를 하곤 하였다. 물론 어머니가 동의하신 내용이었다. 그리고 또 중요한 것은, 야간에 오는 경우는 응급실에서 응급키트 진행을 하기 때문에, 날이 밝으면 성매개 감염병 예방 및 치료를 위하여 산부인과 진료를 꼭 받으시도록 안내를 한다.


성폭력피해를 입은 것도 억울하고 모욕적이고 죽을 지경인데, 성병까지 옮는 경우가 간혹 있다. 센터에서 응급키트 진행 후 산부인과 진료를 받으시도록 안내하는데, 시간을 낼 수 없다고, 바쁘다고, 혹 잠수를 타버리는 피해자가 있는데, 시간이 한참 지나서 항의 전화를 하기도 한다. 왜 자신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냐고... 보험이 안 되는 00 성병 치료비를 지원해 달라고 떼를 쓰기도 하고 자신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는 신문고에 올리겠다고 협박하는 경우도 간혹 있었다.


며칠 뒤, 연계기관의 상담 선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동안에 있었던 아이의 자살시도, 가해자를 죽여버리겠다고 나간 사건 등을 전달해 주면서 걱정스러운 음성으로 '어머니가 지원을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내 의견을 물어왔다.

나는 상담 지원 기록에 나와 있는 내용을 다 훑어본 후, 걱정이 되던 차에 조용한 저녁 시간에 전화를 걸어 보았다. 한참 동안 벨이 울리고, 수화기 너머 힘없는 음성이 들려왔다.


"... 선생님, 전화를 받아보고, 목소리가 선생님이시면 받아보려고 했어요. 네, 힘들어요.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아요. 아이는 이제야 저한테 무슨 일이 생겼는지 안 것 같아요. 그놈을 죽이겠다고 나갔는데... 다행히 언니가 아이를 찾아내서... "

"네,.................................."


그날 밤, 어머니와 나는 긴 통화를 하였다.

얼굴을 맞대고 있지는 않았지만, 전화기 너머 어머니의 아픔이 너무도 선명하게, 고스란히 내게 전달되는 것 같아서 나도 (몹시) 힘이 들었다. 혹시라도 딴생각을 하실까 봐 오래오래 전화기를 들고 있었다. 비가 많이 내리는 그날 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 나에게 어머니는 감사의 인사를 남기며,


"오늘은 좀 잘 수 있을 것 같네요. 고마워요. 선생님~ 치료는 조금만 더 있다가 받을게요. 아이가 조금만 안정이 되면, 같이... 약속할게요."


조금은 가벼워진 음성으로 인사를 남기고 통화는 그렇게 마무리되었다.

나는 그 후 연계기관에 어머니와의 통화내용 등 상황을 전달하면서, 조금만 기다렸다가 꼭, 다시 연락을 해 주시도록 부탁을 하였다.


오랫동안 피해자 지원을 하신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수년 동안 많은 피해자가 다녀갔지만, 같은 피해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하였다. 내가 만난 피해자도 그랬고, 보호자도 그랬다. 하지만 이렇게 가슴이 아팠던 어머니는 없었다.


내 귀한 딸이, 어린 나이에, 진심으로 사랑하지도 않고, 존중받지도 못한 체, 밖에서, 옥상에서, 술집에서, 모텔에서, 심지어 화장실에서 짐승보다 못한 놈의 욕정을 채워주는 성노리개였다는 것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피해자는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딸이며, 자식이며, 누이이고, 친구이기도 하다.

종이에 살짝 베이기만 해도 아픈데... 내 살에 상처가 나면, 아파서, 쓰려서 죽을 것 같다고 표현하면서, 어떻게 타인의 고통에 그리도 무관심할 수가 있을까? 한 영혼을 송두리째 부셔버리고, 한 가족의 평안을 뒤흔들어버린 대가는 치루어야 할 것이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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