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이 이만큼 가까이...

코 골며 자는 냥이

by 마들렌

은비가 나의 생활공간 속으로 들어오고 나서 몇 달이 흘렀다.

한동안은 서로를 지켜보고, 관찰하느라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고 지냈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이 필요하였고, 조금도 급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시간이 다 해결해 줄테니까......

각자의 자리에서 잠을 자고 일어나는 날들이 여러 번 지나갔다.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서 방문을 열고 나가면, 은비는 항상 그 자리에 조용히 앉아서 집사가 언제 즈음 나오려나 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식탁 모퉁이 아래에서 내가 나오기를 몇 날 며칠을 똑같은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망부석같이 조용하게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처음에는 대견하고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복사를 한 듯 똑같은 자세로 앉아있는 모습을 보니, 도대체 이 녀석이 밤에 잠은 제대로 자고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하였다.


'내가 잠자리가 좀 예민한데... 저 녀석과 동침을 해볼까?'


침대방을 두고 다른 방에 이부자리를 마련하고는 먼저 드러눕자, 은비는 처음 보는 집사의 널브러진 모습이 낯선지 한참 동안은 멀치감치 떨어져 살피느라 옆에 오지도 않았다.


잘 자~!

집사가 빨리 정신줄을 놓고 꿈나라로 가버려야지 옆에 와서 킁킁거리며 냄새라도 맡아보지 않겠나 싶었다.


20220822_062925.jpg [집사의 다리를 베고 누워있는 은비]




어두컴컴한 동물보호소의 작은 방에서 은비를 데려오기 위해 두 번째 만남을 가졌을 때였다.

동물보호소의 담당자의 안내로 철장 안에 있는 은비를 조심스레 꺼내 안았을 때, 이 아이는 제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살피기라도 하듯 한참 동안 킁킁거리며 나의 체취를 맡았었다.


길 위의 생활을 한 아이라 경계심이 있는 것 같기도 하였고, 모든 것이 낯설고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롭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도 한참 동안은 자신이 살게 될 낯선 공간에 대해 탐색전을 하느라 옆에 오지도 않았다. 밤에 자다가 일어나서 조용히 살펴보면, 저만치 떨어져서 잠을 자는 건지, 보초를 서는 건지... 웅크리고 있곤 하였다.


이제 집사의 옆에 데려다 놓으니 집사가 돌아눕는 소리에도 귀를 쫑긋 거리며 잠을 깨서 쳐다보기도 하였다. 귀는 또 어찌나 밝은지... 마치 소머즈(The Bionic Woman, 추억의 미드)의 귀 같다고나 할까?

20221009_204302.jpg [어디를 보고 있니? 여름에 털 밀 때 잘려나간 수염이 거의 다 자랐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은비도 조금씩 경계를 풀며 점점 집사 가까이로 다가오는 것 같았다. 집사가 이름을 부르면, 돌아보았다. 그래! 네 이름은 "은비"란다.


은비야! 은비야~ 은비!

하며, 반복해서 지 이름을 부르면 다~ 반응을 해 주었다. 그런 녀석이었다.


은비와 시간을 보내다 보니, 자연스레 방귀는 트게 되었다.

내 방귀는 공갈 방귀, 소리만 요란한 쌍바위골의 비명소리~

은비 방귀는... 독가스... 코를 틀어막거나, 환기를 시켜야 하는 수준이었다. 맨 처음 그놈의 방귀 냄새에 나도 모르게 창문 쪽으로 달려가야 했으니까... 쪼꼬만 녀석이 방귀는 거의 핵폭탄급이었다.


이제는 '풍~' 하고는 무심한 척 가까이 와서는 부비부비 하다가 집사의 종아리 사이에 자리를 잡고는 잘 준비를 하곤 한다. 이 아이는 그곳이 편한 것 같았다. 집사는 돌아눕지를 못하는데...


어느덧 집사 바라기가 된 은비는, "자러 가자", "자자" 하면 따라나섰고, 어떤 때는 소등을 하면 먼저 그 방으로 '쌩'하고 들어가서 앉아 있곤 하였다. 집사가 누워서 좀 더 가까이 오라고, 이불 위를 톡톡 치면은 슬그머니 옆으로 왔다가 내가 잠이 들면 어느새 이부자리 아래로 내려가서 잠을 청하는 것 같았다.


어느 날 새벽, "크르렁~ 크르렁~" 하는 소리에 놀라서 잠을 깼다.


어? 나 아닌데?

나는 잠결에 내가 코를 골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내가 아니었다? 우와! 은비가 내 팔을 베고 누워 대짜로 뻗어서 잠을 자고 있다. 그것도 열심히 코를 골면서 말이다.


한참 동안 내려다보면서 생각했다. '내가 없는 낮동안 너는 뭘 하면서 놀았니? 몹시도 피곤한 가 보구나...'

은비는 그렇게 떡실신하여 꿈나라로 갔는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하이고~ 예뻐라! 어느새 너와 나사이가 이렇게 가까워졌구나!'





모처럼 집에 손님이 왔다 갔다.

고양이 집사 선배이며, 고향 후배가 다녀갔다. 낯선 사람의 방문에 은비가 조금 경계하기는 하였지만 그렇게 예민하게 굴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 동생이 은비가 과체중인 것 같다는 말을 하였다.


"뭐라구? 난 그냥 의사 선생님이 g재지 말고 많이 주라고 해서 그냥 줬는데...?"


신경이 쓰이네...

손님을 배웅해주고, 사상충 외 내외부 감염병 예방접종을 하러 가는 날에 의사 선생님에게 문의를 해 보려고 동물병원에 방문하였다. 담당 의사 대신 처음 보는 젊은 의사가 진료를 해 주었다. 내 걱정을 듣고는 아이를 다시 보고 오더니, 조금 과체중인 것 같다고 하였다. 심하게 과체중은 아니지만, 라이트 사료라는 것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러고 보니, 은비의 아랫배가 두리뭉실 해진 것이 언제부턴가 눈에 띄긴 하였다. 원시 주머니가 추~욱 늘어진 것이 언젠가부터 좀 거슬리기는 했는데...

맨 처음 진료를 하였을 때, 동물 병원의 원장 선생님은 갈비뼈가 드러나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는 일단 많이 주라고는 했는데..., 내게 "그만"이라는 말은 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

이건 너에 대한 나의 사랑(?)이 철철 넘친 탓이기도 하였고~, 초보 집사의 무지로 만들어진 결과라고 볼 수 밖에...


은비는 다이어트를 해야 했다.

사료양을 재고, 간식을 제한하고..., 갑자기 안쓰러워졌다.


"엄~마! 왜 이러세요?? 제가 너무 많이 먹어서 화났어요?" 하는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올려다본다.

넉~넉하던 마음이 어느 날 갑자기 인색하고 몰인정한 팥쥐 엄마로 돌변하였으니, 아이도 당황스러운 것 같았다.


"미안해, 아가야~. 내가 살이 찔 때 너도 살이 쪘구나. 우리 같이 다이어트하자꾸나."라고 말하는 수밖에...

20221009_213316.jpg [누워있어서 더 동그랗게 보이는 은비의 얼글]




도로가의 은행나무 가로수가 야릇한 향기(?)를 풍기며 노란 열매를 우수수 떨어뜨리는 그런 계절이 무르익어 간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안의 감나무에는 제법 커다란 감이 발갛게 익어가고 있었고, 또 다른 곳의 모과나무에는 주렁주렁 설익은 모과 열매가 달려 있었다. 저 열매가 노랗게 익어갈 무렵에 이 가을은 더욱 깊어 갈 것 같았다.


시간은 마치도 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쏜살같이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새 해는 짧아지고 있었고, 은비가 오고 나서 세 번째 계절로 접어들고 있으니 말이다.

여느 날과 같이 바쁜 하루를 보내다가 날이 어두워져서야 사무실을 나서게 되었다. 피곤에 절은 고단한 몸은 벌써 은비에게로 달려가고 있었고, 현관문을 열고 바쁘게 들어서니, 오늘은 은비가 중간문까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잘 놀았어? 애옹~"

"밥은 다 먹었니? 야옹~"

"배가 고프니, 빨리 밥 내놓으란 거야?" 하자, "야~옹!" 하고 대꾸라도 하듯 쪼르르 따라다니며, 집사의 걸음걸음을 재촉하기도 하였다.




"와옹~"

은비가 부르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비가 내리는 어느 연휴의 아침이다. 거실로 나와서 보니, 넓은 창문 너머 난간에는 새벽부터 내린 비가 조롱조롱 매달려서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내가 창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으니, 은비도 어느새 옆에 와 있었다.

내가 쭈그리고 앉아서 비 구경을 하고 있으니, 은비도 스크래쳐 위에 오도카니 앉았다. 둘이서 나란히 쪼그리고 앉아 비 내리는 아파트 건물 사이로 우산을 받쳐 들고 나오는 사람을 쳐다보았다.


20221010_073351_HDR.jpg [비 내리는 날 아침 은비와 함께]


평화로운 아침이다!

우리는 가끔 이렇게 바깥을 바라보곤 하였다. 때로는 은비를 동그랗게 말아 안고 먼산을 바라보기도 하였다. 몇 달 전에는 안으면 온몸을 배배 틀면서 빠져나가려고 하였지만, 이제는 한 30초 정도는 참아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서로의 따뜻한 체온을 느끼며 이쪽저쪽을 바라보면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어느 날 내품으로 오게 된 은비는, 순둥 순둥 순하고도 착한 고양이. 초보 집사인 내게는 정말 선물과도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이 소중한 생명체와 함께 오래도록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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