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너머 또 다른 공간 속으로

은비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다

by 마들렌

은비가 집사의 사적인 공간에 들어가려고 안간힘을 쓴다.

뿜 뿜 뿜어대는 고양이 털 때문에 집사가 여름에 땀을 뻘뻘 흘리며 쌓아놓은 울타리를 넘어가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새로운 울타리를 넘어보려고 안간힘을 쓰던 은비는 세 번의 시도 후에... 드디어 포기를 하였다.


(사실 그 후로 은비는 더 이상 울타리를 넘으려고 애쓰지 않았다.)


야옹! 야옹! 야~옹!


은비는 힘차게 뛰어올라보지만,... 아직은 역부족인 것 같았다. 은비가 넘지 못한 마의 울타리의 높이는 166cm였다.

시무룩하게 돌아서는 모습이 우습기도 하고, 애처롭기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관절에 무리가 가는 건 아닌지, 발톱이 다 부러질까 봐...


그리고는 가끔 집사가 건너간 그 방의 울타리 앞에서 은비는 레이저를 발사하듯 두 눈을 부릅뜨고는 집사가 무엇을 하는지 지켜보곤 하였다.



한적한 휴일 오후, 청소를 하면서 드디어 침대방의 울타리를 열어주었다.


들어와 ~ 어서 들어와

양이둥절~?

청소를 하다가 문득 이 문을 열어주면 아이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큰맘 먹고 울타리를 열어 주기로 했더니, 냥이는 그저 집사의 얼굴만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은비는 한참 동안 우두커니 서서 선뜻 울타리를 넘어오지 못하였다. 막상 열어주니, 겁이 나는가 보다. 안아서 울타리를 넘어와서 내려주니, 마치 신세계를 탐험하듯 천천히 이리저리 방안을 탐색하기 시작하였다.


화장대 위에도 올라가 보고, 침대 위에도 올라가 보면서 말이다. 그리고는 구석에 들어가서는 나오지를 않았다. 뭐하나 싶어서 보니... 집사가 청소하지 않는 그곳은 어떻게 알고... 먼지를 잔뜩 묻히고 있어서 강제로 끌어내야 하였다.


넓은 데를 두고, 굳이 구석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고양이 심리하고는...


간식으로 유인해서 첫 투어(first-tour)는 무사히 마친 것 같았다.


지난번 통화에서 친구가 말하였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너는 그 울타리를 철거하게 될 거야. 은비를 위해서...

그럴지도 모르지. 한시적으로라도 조금씩 조금씩 냥이에게 허락해 주겠지, 나만의 공간을...




무더운 여름 내내 매트리스를 깔고 바닥에서 같이 동침을 하였다. 그러면서 우리는 만리장성(?)을 쌓았지... 사람이든 동물이든 서로 부대끼면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더 정이 들고, 좀 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시간이었다.


날씨가 갑자기 쌀쌀해져서 전기장판을 꺼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위를 많이 타는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였지만, 연약한 은비가 감기에 걸릴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보드랍고 폭신한 이불을 펼치자 은비는 어린 시절 내가 그랬던 것처럼 이불 장난을 하였다. 어머니가 이불 정리를 할 때, 이불 위를 뒹굴거나 아니면, 이불속으로 숨어 들어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따뜻해진 이부자리 위로 은비를 부르자, 은비의 골골 송과 함께 한동안 보지 못했던 꾹꾹이가 시작되었다. 그르렁, 그르렁...

쪼그마한 솜방망이로 이불을 꾸욱~꾸욱~ 주무르면서 은비의 기분은 한껏 고조되는 것 같았다. 책에서 읽었던 고양이의 꾹꾹이는, 아깽이 시절 어미 냥이의 젖가슴을 꾹 꾹 누르면서 젖을 먹을 때의 기분을 회상하는 것이라 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따뜻하고 평화롭고 안정된 기분...


아마도 지금 은비의 기분이 그러했을 것이리라. 그윽한 눈빛으로 집사를 바라보는 은비를 보고 있으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다. 나의 고갱님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해 준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런데 말입니다.

은비의 기분 좋은 이 시간이 쭈욱~ 계속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누우면 잠이 드는 집사인데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으니 말이다. 은비를 방해하고 싶지는 않지만, 쩝.....


은비야~, 이제 그만하면 안 돼? 고만하고 좀 자자~.

라고 하며 은비의 솜방망이를 살포시 잡으며 속삭였다.


20221009_210015.jpg [은비의 솜방망이]


그러자 은비는 집사의 얼굴 가까이로 무시무시한 수염을 찰싹 갖다 대며 킁킁거리더니 이내 이불속으로 사라져 갔다. 고마워~ zzz...




이제 한 살을 넘긴 은비는 나날이 몸무게만(!) 늘어가는 것 같다.

의사 선생님이 성장기는 끝이 난 것 같고 앞으로는 좀 더 성숙해질 것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몇 달 전만 해도 안으면 버둥버둥대던 녀석이, 이제는 동그란 눈에 힘을 주고는 나를 쳐다보며 저항의 메시지를 발사하는 것 같았다.


우. 심. 뽀. 해?(우리 심심한데 뽀뽀나 해볼까?)
엄~마! 왜 이러세요? 제가 아직도 어린애인 줄 아세요?

라고 하는 듯 앞발에 힘을 따악~ 주면서 내 가슴팍을 밀어내고 있으니 말이다. 밥 먹여서 키워놓은 보람은 있는 것 같다. 나날이 토실토실해지고, 골격이 안정되어 보이고 튼튼해지는 것 같으니까 말이다.


은비로 인해서 내 생활에 여러 가지 변화가 생겼다.

나를 바라보는 두 개의 반짝이는 눈동자가 생겼고,

나의 챙김과 보살핌을 받아야 할 식구로 인하여 귀갓길을 서두르게 되었고,

돈은 더욱 열심히 벌어야 할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신문물-은비에게 새로운 장난감을 선물하였다]


그 녀석은 나의 귀가를 반겨주기도 하였고, 내가 화장실을 가거나 샤워를 하고 나오면 "괜찮아요?" 하며 근심스러운 눈빛으로 나의 안전을 걱정하는 듯 매번 문 앞에서 기다려주기도 하였다. 조그마한 체구이지만, 때로는 따뜻하고 커다랗게 다가오기도 하였다.


집사가 하는 모든 일이 궁금한 듯 머리를 감을 때도 욕실의 선반 위에 앉아서 살펴보기도 하고, 설거지하는 집사의 손놀림 하나하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느라 정작 저의 꼬리가 물에 젖는지도 모르고 앉아있는 녀석이기도 하니 말이다.


은비는 나의 세계로 발을 들여놓으면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개척자적인 성향의 집사로 인해 앞으로 많은 모험을 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20221009_203309.jpg [사진 촬영을 싫어하는 은비는 장난감으로 혼이 반즈음 나가야 찍을 수 있다]


은비야, 나랑 살면 절대로 심심하지는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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