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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들렌 Feb 02. 2022

수원화성을 걷다

이제야 걸어보다니...

내가 수원에 이사를 오게 된 것은 수원화성[水原華城, 사적 제3호]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서였다.

오다가다가 지나치게 된 수원성이 너무 아름다워서, 언제 저곳을 마음껏 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다가 경기도로 이사를 오면서 좀 더 가까워지게 된 것 같았다.


누군가 내게 어떻게 수원으로 이사를 왔냐고 물어서, 수원화성을 실컷 보고 싶어서 이사를 왔다고 이야기를 하였더니, "혹 전생에 궁에서 사셨어요?" 하는 질문을 듣고는 한참을 웃었던 기억도 있다.


몇 해 전 날이 좋았던 어느 날, 야근을 한 후 퇴근길에 그 성을 한 바퀴 돌아보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하고 갔다가 허기와 피곤함을 이기지 못하고 성의 반만 돌고 돌아왔던 적이 있었다.

몸이 아플 때는 아파서 못 가고, 일을 시작하고 나니, 바빠서 못 가고... 참 못 갈 일이 많았었는데, 또다시 이사 날짜가 잡히고 보니, 내게 주어진 시간이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번 연휴에는 꼭 가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3일 동안 집에 머무르면서 청소도 하고, 요리도 하고, 이것 저것 정리를 하다가 옷을 챙겨 입고 튕겨나갔더니, 헉! 바람이 왜 이렇게 부냐??

춥기도 춥고, 하필 전날 눈이 펑펑 내린 뒤라, 산성은 온통 눈밭이었고, 길조차 미끄러웠다. 편한 운동화를 신기는 하였지만, 눈 위를 걸을 때는 나도 모르게 살짝살짝 뒤뚱거리기도 하였다.

'이럴 줄 알았으면 등산화를 신고 올걸...' 하며 잠깐 후회하기도 하였다.


버스를 타고 팔달문까지 가서, 지난번에 갔던 곳의 반대방향으로 한 바퀴를 돌아보기로 하였다.

[팔달문을 지나 지동시장 쪽에서 올라가서 동쪽 성곽 방향으로 걷다]


성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산책 겸 나들이를 하고 있었다.

가족단위로 온 사람도 있었고, 연인끼리 또는 부부가 다정하게 산책하는 모습도 보였다. 성곽의 경사진 곳에서는 아이들이 짧은 경사를 이용해서 신나게 썰매를 타는 모습도 보였다. 눈썰매도 있었지만, 어떤 사람은 비료 포대기 같은 것을 이용하여 한껏 기분을 내며 동심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저 멀리에는 방패연, 꼬리연, 새 모양 등 각양각색의 연을 날리는 모습도 보였다. 오랜만에 보는 제법 명절다운(?) 모습인 것 같았다.


[봉돈 : 봉화를 피우던 곳]

직진!

계속 직진하면서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이 도시의 아름다움과 활력을 마음껏 느껴보았다.

성곽을 따라 걸으면서, 옛날 정조대왕께서 실학자이며, 과학자였던 정약용으로 하여금 [수원화성]을 축조하도록 하였다는 글을 떠올려 보기도 하였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유래가 없는 과학적 방식으로 축조되었고, 부역에 동원된 많은 백성들에게 정당한 노동의 대가를 지불하였으며, 아무 사고 없이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완성된 성으로, 정조대왕이 꿈꾸었던 새로운 조선을 표방하는 혁신적인 건축물이라는 기록을 읽은 적이 있다.  


역시 정조대왕님은 정말 대단한 왕이시며, 백성을 사랑한 임금이셨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창룡문을 지나며-연이 하늘을 날다]


날씨는 흐렸지만, 간간히 해님이 얼굴을 비추면서 얼었던 눈길을 녹여주기도 하였다.

[수원화성 둘레길 지도]
[장안문을 바라보다]


사람들 무리에 섞여서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화서문을 지나 서북각루 쪽에 다다랐다. 그런데 이곳은 응달이고 오르막길이었다. 등산하는 것처럼 가쁜 숨을 내쉬며 올라가다가, 행여나 다른 사람이 내 거친 숨소리를 들을까 염려하면서 뒤를 살펴보기도 하였다.


[화서문을 지나 서북각루 쪽에는 눈이 많이 있었다]


눈에 미끄러질까 조심조심하며 계단을 오르고 또 오르니, 드디어 탁 트인 정상이 보였다!

도심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였으며, 위풍당당한 모습의 서장대(화성장대)의 지붕이 보였던 것이다.


[화성장대 : 조선시대 장대(將臺:장수가 군사를 지휘하던 곳)]


팔달문에서 시작하여 --> 창룡문--> 장안문--> 화서문--> 그리고 서장대까지

저 끄트머리 쪽의 서남각루(화양루(華陽樓)) 까지 살펴보면 오늘의 여정이 얼추 마무리되는 것 같다.


[표지석 : 수원화성,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


인적이 드문 서남암문 쪽의 눈길을 걷다 보면, 수원화성이 1997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표지석을 볼 수 있다.


[서남각루로 가는 용도(甬道)(양편에 여담이 설치된 길 : 전시에 비상통로로 활용되도록 만듦)]


소나무 위에 내려앉은 눈이 바람에 흩날리는 고즈넉한 용도(甬道)(양편에 여담이 설치된 길 : 전시에 비상통로로 활용되도록 만듦)를 걷다 보니 저 끝에 서남각루(화양루(華陽樓)가 보였다. 그 옛날 정조대왕께서 수원화성에 오시면, 항상 이곳에서 군사훈련을 관람하고 감독하셨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곳이 역사 속의 그 장소이며, 임금께서 서 계셨던 바로 그곳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자, 어느덧 시공간을 초월하여 옛날과 현재가 이어지고 있다는 묘한 느낌에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였다.


[서남각루에서 용도를 되돌아가서 저 문 너머 남포루 쪽으로 간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집을 나섰다가 어둠이 내려앉는 저녁 무렵에야 나는 나의 한 가지 과업을 달성할 수 있었다. 평상시에는 운동부족이었던 내가 오늘은 1만 1 천보를 걷게 되었고, 조금은 뻑적지근한 다리를 이끌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사람은 생각만 하면 안 되는 것 같았다.

생각을 하면 행동으로 옮겨야지 보고, 배우고, 얻는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하루였다. 책으로 익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라고 직접 보고 배우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도시의 야경도 내 눈에 그리고 내 마음에 담아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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