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유증의 시작, 그때는 몰랐지
처음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나는 사고 전날 밤 무서운 꿈을 꾸었다.
퇴근 후, 느긋하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잠깐 잠들었다가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숨도 못 쉴 만큼의 두려움에 안감힘을 쓰며 허우적대다가 깨어난 것이다.
이게 무슨 꿈이지???
다음날 아침, 나는 출근 시각이 다 되었지만 뚫어지게 시계만 쳐다볼 뿐 선뜻 집을 나서지 못했다. 어젯밤의 꿈이 마음속에 두려움으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야 하나? 나가야 하나? 일이 생겨서 못 간다고 할까?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오고 가는 중이었다.
매일 집을 나서던 그 시각을 훨씬 지나서야 운전대를 잡고 출발을 하게 되었다. 행여나 모를 어떤 일을 피해 갈 수 있을까 하여... 어쩌겠나, 승용차가 아닌 대중교통으로 가기에는 너무 먼 산 넘고 강을 건너야 하는... 직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조심조심 좌우를 살피며 나아갔다. 대로에서 합류를 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러 좌측을 보니, 마침 신호가 걸려 있어서 나는 천천히 우회전을 해서 진입하였고, 좌측으로 차선 변경을 한 후 속도를 높였다.
얼마가지 않아 내차는, 어떤 물리적 충격에 의해 앞으로 튕겨져 나갔고, 운전석 옆 작은 서랍이 열리면서 모아두었던 동전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쏟아졌다.
"으악!!!"
나는 분명 2개의 신호등에 정지 신호가 걸려있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새 저만치 떨어져 있던 신호가 바뀌자마자 냅다 달린 어떤 차가 제 속도를 이기지 못해 내차를 들이박아버린 것이다. 충격으로 너무 놀란 나머지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핸들을 잡고 있을 때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 허공에 떠 있는 듯하다가 온 사방에 파편처럼 널브러져 있는 동전들을 보자 뭔 일이 난 것을 알게 된 것이다.
30여 m 튕겨 나가 있는 내 차 뒤로, SUV 차량의 상대방 차주(가해자 놈)가 신고를 했는지 얼마 후에 경찰이 도착했다.
남자 경찰이 '괜찮냐' 고 물어서 아마도 나도 괜찮다고 했던 것 같다. 상황을 확인하고 나서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한다고 하면서 '운전할 수 있겠냐' 고 물어서, 나는 갈 수 있다고 했었다. 당시 나는 스틱기어(수동변속기) 운전을 하고 있었다. 사고의 여파로 팔다리가 사시나무 떨리듯 덜덜 떨렸지만, 사고 현장에서 멀지 않은 경찰서로 직접 운전을 해서 달려갔다.
이건 분명 내 잘못이 아니야 라는 생각을 하면서,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설마...? 하는 생각을 하며 약속된 장소로 찾아갔다.
그곳에서 나는 피해 운전자로 보호받기는커녕, 여자 운전자라서 사고가 났다는 식의 성차별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경찰의 언행에 분노하여 언성을 높여야 했다.
"아줌마! 아줌마! 소리 지르지 말고 앉아보이소." 경찰아저씨가 큰소리로 외쳤다.
"저 아줌마 아니거든요! 사회복지사라구요. 출근도 못하고 여기와 있잖아요. 저 사람이 제차를 박았고 저는 받힌 사람이라구요.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경찰아저씨, 제가 여자운전자라서 교통법규도 잘 모르는 그런, 무조건 제 잘못이라고 하고 있잖아요! "
경찰서로 달려온 언니와 형부는, 평소와 다르게 머리끝까지 화가 나있는 나를 진정시키며 자리에 앉혀야 했을 정도였으니까.
경찰서를 나와서 집으로 돌아와 앉자마자 피곤과 통증이 몰려왔다. 원장 신부님이 사고 보고를 받으셨는지 전화를 주셨다.
"괜찮아요?... 지금은 잘 모르겠지. 어디예요?
"집...인데요. 조사 마치고...."
"선생님, 집에 있으면 안 돼~! 당장 출근은 안 해도 되니까, 집에 있지 말고 빨리 병원에 가세요. 그리고 병원에서 하라는 대로 하고 결과만 알려주면 됩니다. 아시겠죠?" 하며 통화를 마무리하였다. 처음 당하는 사고에 당황했을까 봐 안심시켜 주시려고 전화를 하신 것이다. 감사하게도...
그 해는 유독 직원들의 교통사고가 많았던 때였고, 나 역시 그중에 한 사람이 되었다.
나는 잠깐 누웠다가 다시 밖으로 나갈 채비를 해야 했다. 오후에 <사고 현장조사>에 나오라고 아침의 그 담당 경찰이 말했기 때문이었다. 시간에 맞춰서 그 자리로 나갔다. 내 화를 돋우던 투박스러운 말투의 폴리스맨은, 아침과는 다르게 신중하고 점잖게 행동했다.
가해차주, 피해차주, 경찰 이렇게 3명이 현장에 모여서 사고 현장을 살펴보았다. 폴리스맨은 워킹거리측정기로 스키드마크가 찍혀있는 거리를 측정하고 살펴본 후, 가해차주에게 다가가 버럭하고 소리를 질렀다.
이 양반아 당신이 잘못했네! 과속했는 게 딱 나오구만!
그럼 그렇지!
의기양양하던 가해자가 뒷머리를 벅벅 긁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나는 병원으로 향할 수 있었다.
여러 가지 검사를 마치고 난 뒤, 나는 입원을 했다. 링거를 맞으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면서 과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링거액이 주삿바늘을 통해 내 몸속으로 스며 들어갈수록 눈꺼풀은 점점 무거워졌고, 나는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해 침몰하는 배처럼 깊은 잠의 세계로 빠져들어갔다. 무의식 저 너머에서 한참 동안 머물렀던 것 같았다.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어머니가 가만히 나를 쳐다보며 앉아계셨다.
"아이고 야야~ 엄마는 공을 들이러 갔는데, 니는 사고가 났네? 내가 얼마나 놀랬는 줄 아나? 그래도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다 아이가!"
그래, 전날 어머니는 불공을 드리러 오랜만에 절에 가셨더랬지.
어머니와 마주 앉아 어젯밤에 꾸었던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의 사고는 어머니의 기도와 나의 꿈으로 인해 더 큰 피해를 피해 갔다고 생각하기로 하였다. 정말 더 큰 차에 받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나는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예지몽을 꾸는 사람이었다. 전에도, 후에도 예지몽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