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와 회복
오래전 3월 초의 어느 날, 업무차 서울 출장길에 직장 동료를 태우고 승합차 운전석에 앉게 되었다.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차선을 변경하면서 갑자기 차가 로데오 경기장의 흥분한 소처럼 날뛰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태까지 운전하면서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너무도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고, 옆에 앉은 수녀님도 “아유, 차가 왜 이러지?” 하면서 급작스런 상황에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피시 테일(fish tailing) 현상! (사고 후, 나중에 자료 찾아낸 것)
(오버스티어링, 차량의 뒷 타이어가 견인력을 잃어 뒤쪽 끝이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좌우로 흔들릴 때 발생함. 이 불안한 움직임이 물고기의 꼬리를 닮았기 때문에 "물고기 꼬리"라는 용어가 생김)
운전석의 핸들(steering wheel)이 만화영화에서처럼 쑥 하고 빠지는 느낌에 몹시 당황하였다. 그 긴박한 와중에 톰과 제리의 한 장면이었던 것 같다고 기억 저 언저리에서 누군가 내게 확인시켜 주는 것 같았다. 미친 듯이 날뛰는 소처럼 통제가 되지 않는 차로 인해 순간 나는 저승 문 앞으로 쏜살같이 달려가는 것 같아 겁에 질려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이렇게 죽는 건가?’
‘저 가드레일 너머는 뭐가 있을까? 천 길 낭떠러지일까? 아니면 강물일까? 아니면… 떨어지면서 차는 박살이 나고 내 온몸은 찢겨서 죽는 것일까?’
빠르게 스치는 공포와 밀려오는 두려움에 나는 잠식당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내 귀에, 아니 내 가슴속에서 들리는 강한 소리가 들려왔다.
정신 차려!
하며 호통치는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나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어 나를 집어삼키고 있던 공포의 소용돌이에서 가까스로 헤엄쳐 나와서 다시 핸들을 고쳐 잡게 되었다. 비상등을 켜고, 백미러를 통해 뒤를 살펴보니, 다행히 달려오는 차는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다!’
‘그래 이렇게 죽을 수는 없지!’
옆에 앉은 동료를 위해서라도 필사적으로 핸들을 조작하면서 속도를 늦추기 위해 애를 썼다. 사실 살이 찢어져서 내 몸이 도로 위에 나뒹굴고 싶지는 않았다. 풋브레이크를 가볍게 밟으면서 속도를 늦추었고, 중앙분리대 쪽으로 달려가는 차의 방향을 우측 가장자리로 이끌어 내려고 노력하였다. 좌우 사이드미러를 보고, 뒤를 살피면서 가까스로 고속도로 우측 가드레일을 박고서야 멈추어 설 수 있었다!
‘오, 하느님~, 저를 죽도록 내버려 두실 건 아니었네요!’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
옆에 앉았던 수녀님이 성호를 긋더니 격하게 나를 끌어안고는 내 등을 빠르게 토닥였다.
아~ 정말 내 생애 가장 무서운 순간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고속도로 순찰> 마크가 찍힌 차가 도착해서 상황을 확인하고 정리해 주었다. 1차선 쪽 길이 조금 얼어 있어서 미끄러진 것 같다는 말을 하였다. 나는 고속도로 순찰차가 어떻게 그렇게 빨리 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당시에는 정말 고마웠고 안도하였다.
사고상황에 대한 보고와 차를 정비소에 보내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몇 주 전에 다른 기관의 선생님도 비슷한 사고로 승합차를 폐차했다고 했는데, 다행히 오늘 사고는 견적이 많이 나오지는 않았다. 나는 고속도로 가드레일이 그렇게 단단한지 머리털 나고 처음 알게 되었다. 강철로 만들어진 가드레일에 생긴 흠집(자국)의 넓이와 크기만큼 과태료가 부과된 걸로 기억한다.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그동안의 긴장이 풀린 듯 온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빨리 자리에 눕고 싶었다.
아까 무쇠 같은 가드레일을 “쿵” 하고 들이박으면서 받은 충격으로 인해 옛날에 다친 허리가 다시 아파서 드러누울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끙끙거리다가 무의식의 소용돌이에 휩쓸리듯 정신을 잃었다. 비몽사몽간에 저 멀리서 어머니의 음성이 들려왔다. 점점 가까이 느껴지는 따뜻함과 같이….
아이고 ~ 또 허리가?
하시며 내 허리를 ‘철썩’ 한 대 후려치는 소리와 함께 어머니의 따뜻한 손이 내 등에 와닿는 것 같았다.
“엄마~”
그리움이 몰려오자, 잠결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무겁게 내려앉은 어두움을 찬란한 태양이 밀어내듯, 따스하고 포근함이 나를 감싸고 있었다. 끙끙거리는 신음소리는 점점 잦아들었고 조용한 아파트에는 평온함과 고요함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큰 별, 작은 별,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더 넓은 우주가 보였다. 허공 속을 넘나들며, 더 깊은 무의식의 세계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아득한 꿈결에서 딸의 안위를 걱정하신 어머니가 찾아오셔서 허리를 한 대 후려치고 가신 뒤, 허리 통증은 거짓말 같이 줄어들었고 나는 빠르게 회복하였다.
그 사고가 있고 난 뒤, 나는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이 세상에는 안 계시지만, 혼자 남겨진 자식을 걱정하시는 마음은 그대로 남아있구나. 그런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이 나를 지켜주고 계시는구나 하고...
내게 피와 살을 나누어 주셨고, 어려운 형편에서도 고생하시면서 사랑과 희생으로 보살펴 주셨던 어머니.
그런 분이 어느 날 갑자기 귀천하시고 나서 나는 한참 동안 방황했었다. 세상 속에 홀로 남겨진 듯, 망망대해에 떠 있는 조각배처럼 바람에 떠 밀리듯 흔들리던 그런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영원 속에서 우리 모녀의 관계는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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