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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마야~ 잘 가!

내 인생의 첫차

by 마들렌

동생이 회사의 해외법인 설립 준비를 위해 인도로 장기 출장을 떠나게 되었다.


동생이 떠나고 난 후, 그의 차가 덩그러니 아파트 주차장에 붙박이처럼 남아 있게 되었다.

기계는 잘 굴려줘야 되는데...

5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니, 동생이 마지막으로 세워놓았던 그 자리에 계속 주차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께서 어느 날 내게 오셔서 넌지시 말씀하셨다.


야아, 니 저차 니가 해라!
예?
니 동생도 없는데, 저 차를 계속 저렇게 세워 둘기가?
엄마는, 여자가 무슨 운전을 하냐고 하셨으면서...
그때는......

그리고 얼마 후, 나는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가 큰 맘먹고 '저 애물단지를 나의 교통수단으로 만들어야겠다'라고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출근날 평소보다 일찍 차의 시동을 걸어 천천히 핸들을 잡고 아파트를 벗어났다. 백미러를 보니, 어머니가 저만치 서서 보고 계셨다. 내가 아파트를 벗어날 때까지 계속 그 자리를 지키고 계셨다.


골목길, 2차선, 왕복 12차선... 나의 온 신경은 전방을 주시하였고, 좌우를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

나는 초보 운전 자니까...

60km를 넘지 못하고 거북이처럼 기다시피 운행하니까, 좌우로 피해 가는 차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왔다.

초보 운전

초보운전 표시를 부착해서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그렇게 그렇게 회사에 도착하게 되었다. 식은땀이 이마에, 얼굴에, 등골을 타고 흘러내렸다.


교대근무를 마치고 다음 날 아침, 퇴근을 하려고 차 앞에 서고 보니 바윗돌 같은 부담감이 나를 엄습해 왔지만, 어떡하랴, 왔던 길로 되돌아가야지 하면서 다시 운전석에 앉았다.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시동을 걸었다.

천천히, 천천히... 남동생으로부터 운전연수를 받으면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던 말이 "천천히" 였던 것 같다. 동생에게 운전연수를 받겠다고 기분 좋게 둘이 나갔다가 싸우고 들어오면서 '다시는 동생놈하고 나가나 봐라!' 했던 기억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앞을 보면서 잠시 딴생각을 하다가 도로바닥에 그려진 화살표 표지가 보였다. 아이쿠, 어떡하냐! 차선 변경을 못해서 어제와 다른 길로 들어서 버렸네. 한참을 가다 보니 그 길이 고속도로 진입로였다! 모르는 길에 대한 두려움은 나만 있는 게 아니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면서 백미러를 쳐다보니, 맙소사! 내 뒤에 꾸불꾸불 꿈틀거리는 뱀같이 줄을 지어 있는 차들이 눈에 들어왔다! 스틱이라 시동이 꺼질까 봐 조심조심 운전하느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으니, 저 뒤차들은 길이 평소보다 왜 이리 막히나 했을 것이다.

여차여차해서 간신히 집에는 도착할 수 있었다. 이것이 초보운전 때 에피소드 중의 하나이다. 이런 에피소드는 운전을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에게나 하나씩은 있을 것이다.




운전을 시작하고 한 달 후, 나는 심한 몸살로 몸져눕게 되었다. 비슷한 시기에 어머니도 3일 정도 앓아누우셨다. 나는 운전으로 인한 긴장감과 피로, 근육의 경직으로 몸살이 난 것이었고, 어머니는 난생처음 막내딸이 운전대를 잡고 불안 불안한 모습으로 출퇴근하는 것을 보고 속이 타들어가듯 하셨던 것이다. 거기다가 막내아들을 멀리 타국으로 떠나보내고 나서 가슴속에 쌓이는 걱정과 불안, 애틋함 등의 복합적인 감정으로 병이 나셨던 것이었다.


1년에 두 번 어머니가 기다리시는 본가로 돌아오는 동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동생도 비슷한 시기에 3일을 앓아누웠다고 하였다. 물 설고, 말도 선 모든 것이 낯선 타향에서 어머니와 집과 고향의 음식이 그리워서였던 것 같다고 하였다.


코끝이 저려왔다. 그래 우리는 이렇게 가족인 게야...




나는 동생이 10년가량 탄 세단 스틱 차를 중고로 샀다.

새로 내비게이션을 단지 두어 달 정도 되었다고 해서 값을 후하게 쳐주었다.

나도 차가 필요한 상황이라 모르는 사람이 타던 차를 사는 것보다는, 동생이 탔던 그리고 내 손길도 묻어있는 차가 났겠다 싶어 흔퀘히 구입하게 되었다.


그 차를 타고 타지에 있는 직장과 본가를 오고 갔으며, 그 차를 타고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나에게 날개가 달린 듯 자유롭게 해 주었고, 내가 원하는 곳은 어디든지 갈 수 있게 해 준 이 차가 내게는 진정한 애마였다.

071.jpg [나의 애마-깨끗하게 관리함]


그런데, 기계는 오래 쓰면 녹이 슬고 탈이 나지. 구형 모델은 나중에는 부품도 단종되어 고치기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수리비가 많이 들게 되면 차를 보내야 할 때가 된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차가 그랬다.

어느 날 출근길에 고속도로를 열심히 달리다가 갑자기 '펑' 하며 꿀렁꿀렁하더니 속도가 급감하고 경운기 소리가 났다면???

긴급출동 기사님이 손을 가리며 몰래 웃는 것을 보았다. 이런 경우를 처음 봤다고 하면서... 엔진룸에 이상이 생겨 믿고 가는 지정 정비소에 수리비 견적을 의뢰했더니, 경비가 만만치 않게 들어가겠다고 하였다. 전문 엔지니어는, 엔진을 교체한 차는 예전보다 못하다는 말을 하였다. 그래서 나는 16년을 달린 소중한 나의 애마를 폐차하기로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새로 구입할 차를 알아보고, 출고 날짜가 정해지고 나니 자연스레 폐차 날짜도 잡히게 되었다.

나는 쉬는 날, 열심히 세차를 하였다.


[16살 나의 애마-수동기어 변속의 손맛이 제법 괜찮았는데...]


"폐차하러 갈 건데 세차는 무슨??"

동생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쩔레쩔레 흔들었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교육이고, 출장이고, 피정이고, 여행이고, 전국 구석구석으로 나를 안전하게 데려다준 고마운 차였기 때문에 보내는 마음은 아쉬웠고, 그게 이차에 대한 마지막 예의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견인차에 연결되어 떠나가는 애마를 나는 한참 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

낮이든 밤이든 상관없이 길 위에서 안전하게 나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었고,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주었던 고마운 차는 이제 제 역할을 다하고 떠나간다. 점점 작아지던 차는 그렇게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애마야 잘 가! 너는 내 인생의 첫차였어!


#나의 첫차 #애마 #승용차 #스틱 기어 #초보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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