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지도 못했던 유도분만
38주에 들어섰다. 이제 정말 언제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법한 주수였다. 혼자 마음속으로 제왕절개를 해야 할지 자연분만을 해야 할지 몰라서 갈팡질팡 고민을 하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별다른 안내 사항이 없었기에 웬만하면 자연분만을 한다고 했다. 제왕절개는 낳고 나서 고통이 심한 후불제고, 자연분만은 낳을 때 아픈 선불제 개념이라고 출산 선배들은 말하곤 했었다. 이래나 저래나 아픈 건 마찬가지일 거 같은데 자연분만을 하던 제왕절개를 하던 상관없으니 제발 조금만 아프고 쉽게 낳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1월 28일이 예정일이었기에 그때쯤 혹은 초산이라 그 후에 진통이 올 거라고 생각했고 많이 걷고 운동하라는 의사 선생님의 조언에 따라 산책을 다니며 종종 짐볼을 탔다. 1월 20일, 전과 같이 일주일에 한 번씩 하던 태동검사와 출산 전 검사를 하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초음파를 보고선 의사 선생님께서는 한동안 고민을 하셨다. 말씀을 안 하시고 고민하시는 모습을 보고 남편과 나는 뭔가 잘못 됐나 걱정이 됐지만 애써 침착하려 했다. 1 시간 같던 5분의 침묵을 깨고서 말씀하시길 뱃속의 아기가 주수에 맞게 더 자라지 않기 때문에 당장 유도분만으로 출산을 하자고 하셨다. 현재 주수로 출산을 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뿐더러 아기가 주기보다 조금 작기 때문에 낳아서 키우는 게 나을 거라고 판단하셨다.
" 당장 내일 입원하러 오세요."
'쿵' 하고 한 대 맞은듯한 기분이었다. 난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바로 '입원이요? 당장 내일요?' 당황스러워서 허탈한 웃음만 나왔다.
유도분만이란 진통이 아직 걸리지 않은 산모에게 촉진제를 사용하여 출산 유도를 해서 자연분만으로 이끄는 출산 방법이다. 하지만 유도분만은 성공한 사례도 실패한 사례도 많았기에 지레 겁부터 났다. 성공하면 자연분만이지만 실패하면 자연분만의 진통을 다 겪고 제왕절개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가장 하기 싫었던 출산 방법이었는데 그 고난의 행군을 내가 걸어야 한다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진료 후 집으로 돌아가면서 양가 어른들께 전화를 해 내일 당장 입원하게 됐다고 말씀드렸다. 갑작스러운 출산예정 소식에 양가 부모님들은 걱정하시며 병원으로 가도 되냐 하셨지만 산부인과는 코로나로 인해 아직 보호자 1인외에는 출입이 금지되었기에 건강하게 잘 낳고 돌아와서 인사드리겠다고 말씀드렸다.
일단 맛있는 거부터 먹자고 했다. 출산 전 마지막 만찬을 즐기기 위해 우리는 어떤 메뉴를 선택할지 고뇌했다. 입원당일은 유동식을 간단히 먹고 입원하라고 안내받았기에 토요일 저녁이 마지막 만찬이었다. 우리가 선택한 메뉴는 초밥이었다. 임신 전에는 회를 못 먹었었는데 임신을 하니 회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고 곧 잘 먹곤 했다. 임신을 하면 입맛이 바뀐다더니 남들은 피한다는 회를 임신기간 내내 맛있게 먹었다. 마지막 만찬으로 선택된 초밥을 배가 터질 만큼 많이 먹었다. 그렇게 먹어야 왠지 위로가 될 것만 같았다. 물론 만삭이 되면서 위가 눌려 아주 많이 먹진 못 했지만 배부른 느낌은 아주 확실히 들었다.
한 달 전 미리 싸둔 출산가방을 다시 한번 체크했다. 생리대, 고무줄 없는 돌돌이 양말, 빨대, 보온병, 임산부용 속옷, 일회용 속옷, 세면도구, 양배추가슴팩, 모유저장팩, 물티슈, 젖병세정제, 퇴원 시 필요한 아기 용품, 휴대폰 충전기, 가습기, 남편용 일회용품 등이었다. 큰 캐리어가방 하나를 꽉 채우고 남편이 쓸 침구등도 챙겨야 했기에 큰 부직포 가방 가득 짐을 챙겼다. 자연분만을 하게 될지 유도분만을 실패하고 제왕절개를 하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기에 두 가지 분만에 관한 준비물을 다 챙겨야 했다.
병원 입원 후에는 외부 출입이 안 된다고 했다. 밖은 코로나의 영향에서 벗어난 듯 마스크 해제도 되었지만 병원은 예외였다. 특히 산부인과는 더욱 엄격히 관리한다고 했다. 출산가방에 남편이 먹을 간식과 김, 3분 카레등의 부식도 조금 챙겨 넣었다.
급하게 잡힌 출산일정에 남편은 급히 회사에 연락해 2주간의 휴무를 냈다. 2주간 병원이든 조리원이든 같이 있어 주겠다고 했다. 역시 든든한 내편이라는 생각과 함께 고마움과 감동이 밀려왔다. 바깥 외출도 안되고 먹는 것도 싰는 것도 불편하고 눈치 보일 수도 있는데 남편은 내가 묻기도 전에 같이 있겠다고 당연하다고 말해 주었다. 남편이 고생할 생각에 걱정이 되면서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혼자 있기 두려울 거 같았다. 같이 산 이후로 한 번도 1박 2일 이상 떨어져 본 적이 없기에 심심하고 허전할 것 같았다. 아마 남편도 마찬가지였지 싶다.
그렇게 출산 전 마지막 밤, 우리는 서로 긴장되지 않냐고 안부를 물으며 서로를 토닥거리며 잠에 들었다.
다음날, 입원을 위해 아침 점심은 죽으로 시켜 먹고 저녁은 두유 한잔을 마셨다. 밤 9시,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차 트렁크에 짐을 실었다. 진통이 걸리고 입원하는 산모들의 영상을 보면 방지턱 넘을 때도 고통스러워하고 도로의 상황에 따라 울퉁불퉁한 지면을 지날 때면 얼굴에 힘을 주고 악을 쓰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난 그런 영상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힘들게 출발하겠지라고 생각했다. 현실은 달랐다. 마치 태풍의 눈인 마냥 고요했다. 다올이는 나올 생각이 없어 보였고 그 덕에 진통의 'ㅈ'자도 느껴지지 않았다. 병원으로 향하면서도 이게 정녕 출산하러 가는 산모의 모습이 맞는 것인가 의문스러웠다.
병원에 도착 후 분만산모 차량이라고 주차장에 등록을 했다. 분만산모라는 단어가 낯설게 느껴졌다. 분명 금방 임신한 것 같은데 오늘 분만을 위해 입원을 한다니! 두렵고 설렜다. 드디어 아기를 만나는구나 싶으면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대의 고통이라는 분만의 고통이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감히 짐작하기도 어려웠기에 내내 긴장을 해서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제 정말 출산만 남았다. 다올아, 빨리 만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