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분만실패, 응급제왕절개
1월 21일 오후 9시 45분. 산부인과 5층의 분만실로 입원을 했다. 분만가운으로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20분쯤 누워있으니 코로나검사를 마친 남편이 짐을 끌고 분만실로 들어왔다. 남편의 눈도 긴장으로 가득 차 보였다. 우린 서로의 심리적 상태를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분만 당일의 굴욕 3대장 코스가 있다. 그 첫 번째가 바로 제모다. 위생을 위해 안전한 분만을 위해 제모를 하게 되는데 미리 왁싱을 받고 입원하는 산모들도 있고 나처럼 준비 없이 그냥 입원하는 산모도 있다. 난 40주 이후로 출산하겠지라고 생각했기에 '슬슬 왁싱 예약을 잡아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덜컹 입원을 해 버렸다. 덕분에 준비 없이 굴욕 3대장중 첫 번째 코스인 제모를 맛보게 되었다.
분만당일의 제모는 간호사님이 오셔서 밑에 패드를 한 장 깔고 면도기로 가차 없이 밀어주신다. 다들 굴욕 3대장중 하나의 코스라고 하던데 난 별로 굴욕적이지 않았다. 이분들은 수도 없이 많은 산모들의 제모를 하셨을 테고 나도 단지 그들 중 하나일 뿐이니까. 딱히 부끄럽거나 힘들진 않았다.
11시쯤 돼서 링거를 꼽았다. 그리곤 곧바로 굴욕 3대장중 2번째 코스. 관장을 시작했다. 관장에 대한 악명을 익히 들었었기에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어릴 때 기억에 관장은 항문으로 어떤 알약을 넣고 했던 거 같은데 산부인과 관장은 달랐다. 항문을 통해 바로 액체 관장제를 쏟아 넣었다. 간호사님은 10분을 참다가 화장실로 가라고 했지만 간호사님이 분만실을 나가자 말자 곧바로 일어나서 화장실 갈 준비를 했다.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만 같았다. 간신히 3분 정도를 참아내고 화장실에 들어가 화산이 폭발하듯 모든 것을 쏟아냈다. 상당히 새로운 경험이라 아찔했다.
관장이 끝난 후 간호사님이 곧바로 들어오셨고 태동검사기를 배에 부착했다. 매주 병원에 와서 하던 건데 분만 전 아기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태동검사기를 계속 붙이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태동검사기는 배에 총 2개를 붙이는데 하나는 아기심박을, 다른 하나는 자궁 수축 정도를 검사하는 장치다. 그간 매주 2~30분씩 할 때는 심장박동 소리가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해서 즐겁게 검사를 하곤 했는데 몇 시간을 내리 기기를 붙이고 움직이지 못한다고 하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나는 비염도 있었기에 한쪽으로 돌아누워 태동검사기를 붙였는데 자꾸 코가 막혀서 너무 고통스러웠다. 굴욕 3대장 보다 나에겐 태동검사기를 붙이고 한 자 세로 계속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게 너무 힘들었다.
드디어 3대장중 마지막 관문. 내진을 할 차례였다. 내진 역시 악명이 높다. 그간 산부인과 검사를 하며 받았던 내진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했다. 담당 간호사님께서 오셔서 내진을 하셨는데 생각했던 것만큼 아주 죽을 정도의 아픔은 아니었다. 아마 내가 고통에 무딘 편이라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참을만했다. 물론 평소 받았던 내진보단 굉장히 불쾌하고 힘든 느낌이었지만 악명만큼 아주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내진 후 자궁문이 1cm 정도 열렸다고 했고 촉진제를 투여하기 시작했다. 이미 병원에 올 때부터 가진통이 아주 살짝씩 있었던 터라 '오늘 아침이면 아기를 볼 수 있겠지? 자연분만에 성공하나 보다'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촉진제 투여를 시작하고 나서 살짝 매스꺼운 느낌과 함께 어지러움이 느껴졌고 출산이 처음이라 원래 그런 거겠지라고 생각하며 참다가 2시간가량 지났을 때 간호사님께 이런 증상이 정상이냐 물어보니 놀라시며 아니라고 촉진제량을 줄여 주겠다고 하셨다. 이상한 느낌이 들면 바로 말했어야 했는데 이때부터 뭔가 잘못되고 있나? 하는 불안감에 휩쌓였다.
촉진제량을 줄였고 어지러움과 매스꺼움이 사라졌다. 가진통은 점점 주기가 짧게 오기 시작했고 15분, 10분, 8분, 5분 순으로 점점 당겨졌다. 하지만 초산인 나도 느낄 만큼 이건 진짜 진통이 아니었다. 수축이 느껴지고 통증이 있긴 했지만 참을만했다. 진진통이 걸리면 아무 말도 못 한다고 하던데 스스로 느끼기에도 아직은 아닌 듯싶었다.
아침 6시, 긴장감과 설렘에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몇 번의 내진과 태동검사 위치변경등을 했다. 언제쯤 아기가 나오려나 걱정만 됐다. 통증은 조금 더 심해졌고 주기가 아주 정확하게 진통이 왔다. 하지만 여전히 참을만했다. 아침 7시에 담당의 선생님께서 회진을 하시고 계획을 잡는다고 간호사님께 설명 들었다. 아침 해가 뜨면 아기를 만날 줄 알았던 초산모의 착각과는 다르게 분만은 아주 천천히 진행된다고 하셨다.
아침 7시, 담당의 선생님의 회진이 시작되었다. 분만실에 들어오시자 말자 내진을 했는데 이제까지의 내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악명 높은 굴욕3대장의 관문인 내진이 아마 이때의 내진을 말하는 것이구나 깨달았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듯한 느낌과 굉장히 껄끄러운 느낌의 내진이었고 유도제 양을 줄여서인지 진행이 늦다고 짐볼 운동을 하라고 하셨다.
의사 선생님께서 나가시고 짐볼운동을 시작했다. 30분 정도 타라 하셔서 남편과 손을 잡고 열심히 짐볼운동을 했다. 쿵쿵 내려찍는듯한 동작이 출산에 아주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하셨다. 30분 짐볼 운동을 하고 침대에 다시 누웠다.
10분 뒤 거짓말 같은 고통이 몰려왔다. 진진통이 시작된 것이었다. 짐볼운동 30분 만에 진통이 시작된 건데 마취과 선생님과 간호사 두 분이 들어오셔서 급하게 척추관을 꼽고 태동검사기를 고쳐 붙이셨다. 고통스러운 진통과 분주해진 분만실을 보며 긴장이 되었는지 혈압이 올랐다.
이제 진짜 진통이 시작되었고 곧 아기를 낳을 수 있겠구나 설레었다. 정말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진통은 아플 땐 아무 말도 못 하게 아프다가 진통이 끝나면 정말 거짓말같이 아무렇지도 않아 졌다. 고통을 느끼다가도 정말 아무렇지 않아 졌다. 역시 새벽 내내 느낀 그건 고통의 축에도 속하지 않는 것이었다.
고통이 최고조를 찍을 때마다 태동검사기의 수축수치가 무섭게 치솟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진통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자궁수축이 진행될 때마다 아기의 심박이 주기적으로 같이 떨어졌다. 진통이 오면 심박이 떨어지고 진통이 가시면 심박이 돌아오는 걸 반복했다. 뭔지 잘 모르겠지만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직감적으로 느꼈다.
결국 상황이 안 좋은 건지 담당의 선생님이 심각한 얼굴로 분만실로 오셨다. 한참을 태동검사를 지켜보시더니 수축이 올 때마다 아기 심박수가 내려가서 더 이상의 유도분만으로 자연분만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하셨다. 이 말을 들은 후 나는 더욱 긴장되고 심박이 빨라졌다. 혹시나 아기가 잘못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과 두려움에 정신을 못 차리고 진통이 더욱 강하게 나를 조여오는 듯했다.
사실 이후의 기억은 잘 나지 않는다. 아기가 위험하다는 소리와 함께 내 심박은 미친 듯이 솟구쳤고 빨리 응급으로 수술을 진행해야 한다고 남편에게 말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진통에 온몸을 덜덜 떠는 내 모습을 본 남편은 본인마저 머리가 새하얗게 회로정지가 올뻔한걸 힘들게 붙잡았다고 했다. 나는 후에 바로 수술실로 들어갔고 남편은 수술 동의서와 추가 약품, 약물 사용에 대해 동의서를 작성했다.
수술침대로 옮겨지는 그 순간이 아직 생생히 기억난다. 진통에 하늘이 노래졌고 긴장으로 인해 식은땀이 계속 났다. 배는 아프고 정신은 없고 그러다 온몸이 추워져서 덜덜 떨렸다. 수술방으로 옮겨지는 내내 "너무 추워요. "만 반복해서 말했다. 차가운 수술대에 눕혀졌다. 더 추워졌다. 내 긴장감은 한계치에 다 달았고 냉동창고에 갇힌 기분이었다. 온몸이 너무 추웠고 한겨울 발가벗겨진 채로 눈밭을 구르는 느낌이었다.
마취과 선생님은 마취가 잘 되었는지 확인하셨다. 제왕절개를 하면 보통 정신이 있는 채로 복부절개를 하고 아기를 꺼내고 엄마에게 보여준 뒤 수면마취를 진행한다. 나도 그 수순을 밟기 위해 하반신 마취를 진행하고 복부 절개를 하려고 칼을 대는 그 순간. 애석하게도 나는 칼끝의 차가움과 살이 찢어지는 그 느낌이 생생히 들었다. 너무 긴장하고 떨었던 탓일까. 마치과 선생님께서는 산모가 너무 긴장을 해서 재워야 된다고 하셨다.결국 급히 수면마취를 진행한채 출산을 했다. 이 기억을 끝으로 나는 24년 1월 22일 오전 11시 16분 예쁜 공주님을 출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