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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ayoung Park Nov 04. 2015

의미 있는 삽질

지난 5개월,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이야기

2015.05 - Present (in SF)


샌프란에 온 지도 어느덧 5개월에 접어들었다.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것들을 해나가 다 보니까, 시간이 더 금방 흐른 것 같다. 졸업도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 12월 드디어 졸업한다ㅎㅎㅎ) 앞으로 무엇을 해야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 보니, 결국은 조금 더 힘들고, 조금 더 고생하지만 나 스스로 만족하고 배울 것이 더 많은 길로 가보자고 결심했다. 그리곤 내가 제일 사랑하고 아끼는 소현이 (현 코파운더이자  CTO)를 설득해 같이 재미있는 일을 해보자고 얘기를 나누고 다짐했던 게 벌써 5월 말이다. 사실 이 전에도 많은 기회가 있었지만, 그땐 나 자신이 준비되어있지 않았던 것 같다.



지난 5개월간 소현이와 함께 의미 있는 삽질을 많이 해왔다. 


제일 처음엔  PickEat이라는 가벼운 앱을 만드는 것으로 시작했다 (Tinder for Food). "매번 뭐 먹지/어디서 먹지?" 고민하는 결정장애자인 우리 둘이 쓰겠다고 만들어서, 아직 앱스토어에 릴리즈는 하지 않았는데, 조만간 시간이 날 때 올려야겠다 (성민이가 디자인을 도와줬다. 땡큐!).  


사용 방법은 간단하다. 앱을 키면 현재 위치 혹은 원하는 주소를 사용해, 거리 옵션만 설정하면, Yelp API와 Google maps  API를 이용해, 랜덤으로 주변 별 3개 반 이상인 곳으로 추천해준다. 


PickEat 의 첫 화면과 결과 화면. Simplicity 를 강조했다. 현재 위치 혹은 원하는 위치와 Distance 그리고 Yelp 의 평점만으로 결과를 보여준다.


만들고 나서 보니, 비슷한 앱들이  이후 많이 출시되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었던 테크 크런치 해커톤에서도 발표되었고, Cal Hacks 해커톤에서도 만들어져 yelp 의 상을 받았고, 버클리 벤처 프로그램에도 뽑혀 속해있었다. 물론 전부 다른 앱들이다. 우리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빠른 시간 내에 만들었지만, "출시" 까지 하진 않았다. 


실행에도 두 가지 단계가 존재하는 것 같다 

1) 즉시 행동으로 옮기고 실천하지만 결과물 자체로 만족하고, 만들어서 애물단지로 품고 있거나(aka 나만 아는 실행)
2) 결과물을 만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끊임없는 실험을 통해  발전시키고, 이 과정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치를 전달하는 것 


PickEat 같은 경우는 1번 전자인 케이스이다. 우리가 필요해서 만든 앱이기 때문에 우리가 잘 사용하면 됐지! 에서 끝이 났다. 앱을 만드는 과정에서 느끼고 배운 부분도 많지만, 2번까지 갔다면 더 깊이 느끼고 배우지 않았을까? 그래서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다시 준비해서 조만간 릴리즈하려 한다. 



그리고 6월 초, TasteHome (marketplace for home cooked meals/ AirBnB for home cooked  meals)이라는 서비스를 시작해, 8월 말까지 약 3달 동안 운영했다. TasteHome 은 "음식을 할 수 있는  native"와 "집밥을 먹고 싶은  소비자"를  연결시켜주는 집밥 플랫폼이다.  Authenticity를 core  value로 두었다. (쉽게 설명하자면, 인도 사람은 인도 음식 판매자에게 음식을 시켜먹을 수 있고, 한국 사람은 한국 판매자에게 음식을 시켜 먹을 수 있다). 미국에  거주하는 유학생 및 이민자들은, 식당에서 접하기 힘든 집밥을 접할 수 있고, 판매하는 사람 역시 자신의 시간과 스킬을 활용해 자신의 음식을 나누고, 수익까지 얻을 수 있었다. 우리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 음식으로 시작했지만, 인도/중국 음식이 더 인기가 많았다. 집밥을 먹고 싶은 모든 유학생의 마음은 똑같은 것 같다! 


베타서비스를 시작하기 전,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기 위해 몇 시간만에 랜딩 페이지를 만들어 홍보하였다. 


일반적으로 집밥 플랫폼이라고 하면, 소비자가 집밥호스트의 집을 가서 식사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거나, 호스트의 집을 가서 음식을 픽업해야 한다. 누군가에게는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는 일이다. 우리는 이런 행위가 매일 매일 좀 더 자연스럽고, 쉽게 일어나길 바랐다. 그래서, 호스트의 집에 가서 하는 식사가 아닌 온라인을 통해 호스트의 음식을 판매하는 매개체 및 배달부의 역할을 함께 하였다. 


왜 굳이 직접 배달을  했느냐?라고 묻는다면

1. 퀄리티 컨트롤이 필요했고,
2. 고객을 직접 만나고 싶었고,
3. 집밥을 좀 더 accessible 하게 제공해주고 싶었다. 


이런 환경을 제공해줌으로 인해, 판매자는 홍보/배달/운영/결제를 신경 쓸 필요 없이 본인이 가장 잘하고 자신 있는 요리만 하면 되었다. 그 외 부수적인 것은 우리가 다 신경 써주니까. 


판매자에게 우리 서비스는

1. 부수입을 제공하고,
2. 개인의 브랜드를 만들고, 홍보하고,
3. 본인의 이야기와 음식을 나눌 수 있는 장이었다.  

서비스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관심도 많이 받고, 팀원도 늘어났고 (10명까지 늘어났었다), 매출도 물론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TasteHome으로 잘 되어서 올리는 글이면 참 좋겠지만, 운영하면서 겪는 문제점들이 많았고, 현재 우리의 자본과 능력으로는 해결하기 참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어려웠던 부분 

1. 사람, 사람, 사람 - 서비스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았고 함께하고 싶어 했다. 이 때는 사실 사람이 많으면 일도 더 잘하고, 빨리 할 줄 알았다. 그래서 전부 받아들였었다. 현실은 내가 했던 선택 중 가장 큰 실수이지 않았나 싶다. 스타트업의 특성상 빠르게 의사결정을 하고 움직여야 하는 반면, 인원이 늘어나니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고, 무엇보다 일을 준비하고, 정리해서, 이해시키고, 또 결과물을  받는 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결국 소현이와 나 2명으로 돌아와 모든 걸 해결했다. 섭외, 배달, (가끔은) 요리도, 홍보, 개발 등등 둘이 진행하기에 힘들었지만, 더 효율적이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다. 


2. 복잡한 운영 프로세스 - 판매자와 소비자에게 최고의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다 보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많았다. 판매자가 Food Handler's  License를 딸 수 있도록 안내를 해주고, 테이스팅 세션을 통해 판매자를 검증하고, 온/오프라인을 통해 직접 홍보하고, (전단지도 직접 나눠주며 거절과 무시도 당하고, 하루에 10채가 넘는 건물들을 다 돌았다) 판매자에게 음식을 받아, 소비자에게 직접 배달을 했다. 


3. 레귤레이션 - 한국도 그렇지만, 미국에서도 개인의 집에서 만들어지는 음식을 판매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되어있다. 물론  AirBnb와 Uber 같은 케이스도 있지만, 음식은 좀 다른 문제다 (혹여라도, 음식이 잘못되어 직접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 있기에). 이를 해결하고자, 중간에서 우리가 허가된 주방을 사용하고자 했으나, 판매자가 그 장소까지 와서 요리하는 것에 대한 시간과, 돈도 무시할 수 없었다. 또한 상업적 키친을 빌리는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격...). 비슷한 서비스들을 하는 곳들이 몇 군데 있긴 하는데, "서비스" 본인들은 중개만 해주기 때문에, 법적인 책임이 없다고 terms 에 적어놓았다. 이런 식으로 피해갈 수 있긴 하지만, 결국은 맞닥드려야 할 문제이다. 


4. 수익 모델 - 이 모든 걸 해주고, 15%의 수수료를 떼어갔다. 추가로 배달비를 $2.50 받았지만, 우리 자본으로 이어가기엔 역부족이었다. 플랫폼의 특성상 스케일이 커지면, 수수료로 유지할 수 있지만, 우리 돈을  끌어모아하는 상태에서 더 이상 비즈니스를 이어갈 수 없었다 ㅠㅠ... 



초반엔 홈페이지도 제대로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이미지만으로 홍보를 했고 주문을 받았다. 


아직도 정말 많이 아쉽다. 그렇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피봇을 해, 짧게나마 레스토랑들과 파트너십을 맺어 Meal Plan Provider로써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이것 역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에 비해, 효과적인 아웃풋이 나지 않아 이어갈 수 없었다 (수수료 비즈니스는 일정 스케일이 나오지 않으면 힘들다). Sustainable 한 비즈니스를 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 역시 사람들의 관심도를 파악하기 위해, 랜딩페이지를 만들어 이메일을 받았다. 2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등록했다. 


이렇게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벌써 9월이 왔다. 딱히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고 3달 후면 졸업인 상황에서, 미국에 남아 있으려면 9-10월 리크루팅 시즌을 준비해서 풀타임 잡을 찾거나, 내 일에 올인해야 했다. 마음은 조급했고, 불안했지만, 그래도 내 힘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무언가를 마무리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또 한 번의 선택을 했다. 

수많은 피보팅 끝에 Miisik - Korean Meal Kit  (미식)이라는 서비스를 내놓게 되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단 15분 안에 모든 걸 만들 수 있는 한식 쿠킹박스다. 레시피 카드와 함께 1인분의 식재료가 손질되어 배달이 된다. 요리 준비 시간을 줄여주고, 누구나 쉽게 한식을 경험할 수 있다. 

(왼쪽) 모든 재료가 알맞은 양으로 손질이 되어 포장되어 온다  (오른쪽) 레시피카드를 보고 10분내에 음식을 만들 수 있다.


지금까지 진행했던 서비스랑 다른 점이 있다면,

1. 모든 프로세스를 우리가  컨트롤한다 - 이로 인해 비용은 줄이고, 퀄리티는  향상하였다.
2. Scalable 하다 - 두 명이서도 어느 정도까지 사이즈를 키울 수 있다. 또한 Shipping 가격만 저렴하게, 가져갈 수 있다면, 어느 곳에서 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어려운 점은,

1. 경험해보지 않은 음식을 온라인으로 판매하는 것이 어렵다. 리텐션은 괜찮지만, first timer 들을 attract 하기가 쉽지 않다. 
2. 육체적 노동이 크다 (나중엔 물론 사람을 쓸 수 있지만...) 


놀랄만하게 창의적인 서비스도, 기술이 중요하게 작용하는 서비스도 아니다. 그렇지만 소비자에게만큼은 정말 큰 생활에서의 편리함을 줄 수 있는 서비스다. 모든 재료가 손질되어있고, 레시피 카드와 함께 정해진 양이 배달되어, 요리하기 번거롭거나, 바쁘거나, 잘 모르는 사람들에겐 한 줄기의 빛이 되어줄 수 있는 서비스다. 그냥 유학생 혹은 한인들에게만 필요한 서비스 아니야?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그치고 싶진 않다.



현재 오픈 베타 서비스를 진행 중인 웹사이트의 메인 화면


유학생으로 지내왔던 시간이 이제는 8년이 넘어가는데, “왜 한식은 아직까지 mainstream 에 올라오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을 항상 품었다. 케이팝 열풍 및 다양한 분들의 노력으로 한식의 인식이 조금씩 좋아졌지만, 아직까지는 중국음식/인도음식/태국 음식/베트남 음식 등에 비하면 한식에 대한 인식 및 presence 가 턱없이 모자라다.


그렇기에, 미식의 존재 이유도, 누구든 언제 어디서나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한식이다. 한국인이 되었던, 외국인이 되었던, 우리 서비스를 통해 한식이 누구에게나 “accessible” 한 음식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향후 5년 이내에 그렇게 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지난 9월 클로즈 베타를 시작해 무사히 마무리 후, 피드백과 리뷰들을 토대로 보완해 10월 중순부터 오픈 베타를 시작했다. 현재 온라인 홈페이지  (www.miisik.com)를 통해 오더를 받고 있다.


Miisik: Fully Prepped Korean Style Meal Kit that lets you cook in 15 minutes

웹사이트: www.miisik.com 
페이스북: www.facebook.com/miisikbox
인스타그램:www.instagram.com/miisikbox



지난 5개월간 정말 많은 일을 겪었고, 경험했다. 사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하루 하루가 고민이고, 힘들고, 전쟁이다 (육체적 노동도 많고, 배달도 지금은 내가 다 한다). 소현이랑도 매일 서로 묻곤 한다 


우리 잘 하고 있는 거겠지?  


라고 한 명이 물으면, 다른 한 명이  

그럼! 

이라고 대답한다. 지금의 우리가 잘하고 있는 거라고 믿고! 생각하고! 내 결정에 후회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 


쓰다 보니 글이 길어졌지만.. 적어도 지난 몇 개월 동안, 우리는 대학을 다니면서 배운  것보다 훨씬 더 많고, 값진 것을 배웠다. 그래서 절대 시간을 헛되이 쓰었다고 생각 안 한다. 지난 5개월 동안 "의미 있는  삽질"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삽질을 잘 해서, 금을 좀 캤으면 좋겠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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