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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Feb 16. 2019

귀향

리투아니아, 카우나스.

내가 리투아니아라는 나라와 인연을 맺은 건 2012년, 그러니까 무려 칠 년 전이다. 그 전까지는 한 번도 들어본 적도 없고 어디에 있는지 조차 짐작도 하지 못한 이 나라에 각별한 감정이 생기게 된 것은, 당시 교환학생으로 떠나게 되면서 부터다. 사실 내게는 미국과 영국 등의 흔한 선택지가 주어져 있었지만, 파견 가능 국가 중 리투아니아 라는 범상치 않은 이름을 발견하고 나서, 단지 '재미있을 것 같아서' 라는 이유로 일 년 간 리투아니아의 제 2 도시인 카우나스에서 살게 된 것이었다.



만약 당신이 리투아니아라는 이름을 듣고 나서, "뭐?" 또는 "그게 어디 있는 나라야?"라는 반응을 보인다면 지극히 정상이다. 이 작은 나라는 발트 3국이라고 불리는, 폴란드와 러시아 사이에 종대로 나란히 늘어선 세 국가 중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리투아니아어라는 고유 언어가 있고, 과거 소비에트 연방에 (강제로)속해 있었다. 리투아니아가 소련의 일부였었다는 이유로 부모님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시기 까지 했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스물 다섯의 나는 난생 처음으로 유럽으로 향하는 비행을 했고, 카우나스에 도착해서는 너무나도 긴장한 탓에 과민성 대장염에 걸려 꽤나 고생을 해야했다. 물론 걱정과는 달리 밤에도 마음 놓고 돌아다녀도 될 정도로 평화로운 나라였지만.



2012년의 화창했던 여름부터 2013년 까지, 일 년 동안 나는 무려 강의를 단 두 개만 수강하는 기염을 토하며(그마저도 땡땡이 치기 일쑤였다.) 리투아니아를 베이스 캠프 삼아 고삐풀린 망아지 마냥 유럽 전역을 휘젓고 다녔다. 그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설레면서도, 성숙하지 못했기에 후회로 남은 기억들도 함께 떠올라 동시에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카우나스의 랜드마크, 소보라스 성당


사실 리투아니아 라는 나라는 여행을 오기에는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볼 만한게 형편없이 부족한 나라다. 동유럽 특유의 아기자기하고 엔틱한 느낌이 있기는 해도 , 그런 느낌을 원한다면 체코나 헝가리로 가는게 백만 배 낫다. 내세울만한 문화유산이나 건축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통이 아주 편리한 편도 아니다. 구글에 'Lithuania'를 검색하면 희한하게도 'Lithuania girl'이 연관 검색어로 출력된다. 당시 함께 지냈던 유럽 친구들은 리투아니아 여자들이 제일 예쁘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기는 했다. 아무튼, 일반적인 경우에는 한정된 시간과 돈을 가지고서 굳이 리투아니아까지 올 이유가 딱히 없다는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이 나를 다시 발걸음을 옮기게 했던 이유는 어쩌면 찬란하면서도 어설펐던 그 날들의 기억들이 자석처럼 나를 이끌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마치 어렸을 적 뛰놀던 옛 동네의 희미한 기억을 자꾸만 떠올리려 애쓰게 되는 것처럼.


리투아니아는 감자가 무척 많이 나서, 감자요리가 유명하다.



칠 년 만에 찾은 리투아니아는 겉으로는 크게 달라진 것은 그다지 없어 보였다. 리투아니아 고유 화폐였던 리타스가 유로로 바뀐건 조금 충격이었지만, 퉁명스러우면서도 마음은 따뜻한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여전했고, 겨우내내 우울의 끝을 보게 했던 우중충한 날씨도 그대로였다. 감자 요리는 콜라를 들이 붓게 할 정도로 느끼해서 다 먹지 못하고 남길 수 밖에 없게 만드는 것도 여전했다.


카우나스, 비타우타스 마그누스 대학 기숙사.


일 년 간 머물렀던 기숙사 건물의 점점이 불이 켜진 창문 안쪽으로 보이는 삶의 흔적들은 마치 지금이라도 기숙사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때의 친구들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게 했다.


수많은 우편물을 받고, 편지를 부쳤던 우체국.



여기 동유럽 변두리의 작은 나라, 리투아니아의 카우나스 거리 곳곳에는 여전히 내가 남아있다. 그때의 서투르고, 어리석고, 아무것도 손에 쥔 것이 없었던, 그래서 순수하고 꿈 많았던 그때의 내가 있다. 오늘의 나는, 그리고 먼 미래의 나는 아득한 북녘을 향해 오로라를 그리워 하며 그녀를 쫓았듯 그 시간들을 언제까지고 그리워 할 것이 틀림없다.


이제 다시 오늘로 돌아갈 시간이다.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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