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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Apr 25. 2019

쓰루노유 다이어리 - 10

야마노야도의 고독한 미식가



카페가 휴무였던 월요일에는 쓰루노유에서 도보로 40분 정도 산길을 내려가면 나오는 쓰루노유 별관 <야마노야도>에 다녀왔다. 양 옆으로 삼나무가 빼곡한 산길을 새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오랫동안 걷는 일은 무척 유쾌한 일이었다. 날씨 또한 완벽했다. 투명하게 파란 하늘을 가로질러 쏟아지는 봄볕은 포근했고, 따뜻한 봄바람이 산등성이를 타고 실려 왔다. 길 저편에서는 아지랑이가 새싹들처럼 피어올랐다. 이 지역은 <미즈바쇼>라고 하는, 습지에서 자라는 식물의 군락지로 유명하기도 한데, 마침 미즈바쇼의 꽃이 피는 4월 말 이기도 해서 길을 걷는 동안 눈이 녹아 물이 고인 연못에서 하얀 꽃들이 흐드러지게 핀 모습과도 마주할 수 있었다. 





덕분에 그때마다 나는 잠시 멈춰 서서 말없이 풍경을 바라보며 보온병을 꺼내 커피를 홀짝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40분 거리였던 쓰루노유 별관까지의 짧은 여행길은 느슨해져가는 매듭처럼 조금씩 더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딱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 까지만 점심 식사를 제공하는 쓰루노유 별관에서는 일본 전통방식의 화로인 <이로리>위에 매달아 놓은 냄비에 담긴 따끈한 <이모 나베>를 즐길 수 있다.



이모는 일본어로 <마>다. 다진 마를 동그랗게 뭉쳐서 만든 것들과 함께 채소와 고기 등을 넣고 함께 끓인 것이 바로 이모 나베. 마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소한 찹쌀떡과 같은 식감을 준다. A정식을 주문하면 여기에 이곳 산지에서 채취한 나물과 버섯으로 정성스레 만든 반찬이 곁들여진 한 상 차림과, 꼬치에 구워져 나온 곤들메기 소금구이를 맛볼 수 있다.





너무 오랜만에 식당에서 남이 해 준 밥을 먹어서인지, 음식이 군더더기 없이 정갈하고 깔끔한 맛이어서 그런지, 둘 다인지는 몰라도 올해 들어 가장 기억에 남을만한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 점심을 먹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기도 했기에 사람이라곤 나뿐이어서, 그 넓은 홀에 홀로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마치 <고독한 미식가>처럼 수많은 감탄사들을 마음속으로 내뱉으며 정성스레 만들어진 음식과, 그 재료들의 맛을 하나씩 조심스럽게 느끼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내게 있어서 식사란 대부분 그저 의무적으로 이루어지던 익숙한 업무마냥, 빠르고 신속하게 처리해 오던 일과 같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곳에서 홀로 시간을 보낼수록 나는,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시간의 온전한 형태를 조금씩 찾아가는 것 같다. 수다스럽지 않은 시간들은 오히려 종종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법이다.  








이모나베 정식.
쓰루노유 별관 <야마노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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