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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Apr 24. 2019

쓰루노유 다이어리 - 9

간헐적 은자 정도라면.



이제 집으로 돌아갈 날이 채 일주일도 남지 않았다. 산 속에 머물다 보면 시시각각 하늘의 색이 변하는 게 너무나도 분명하게 느껴져서, 도시에 있을 때보다 하루가 더디게 가는 느낌마저 든다. 카페를 열고, 작업을 하고, 글을 쓰고, 간간히 이토상을 돕고, 산책을 하고, 카페를 마감하고, 온천을 하고, 책을 읽는 하루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길게 느껴지지만서도, 결국 하루를 마칠 때면 이 모든 것이 무척 짧은 시간 동안 지나가 버렸다는 생각이 드는건 왜일까.

 


이틀 전에는 카페를 마감하고 장을 보기 위해 이토상과 함께 스즈키 웨건을 타고 40분 거리의 읍내까지 나갔다. 문득 첩첩산중의 암자에서 생활하는 스님들이 속세로 나갈 때 이런 느낌 이겠구나 했다. 일주일 만에 가로등과 신호등, 횡단보도를 다시 보았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다. 그리고 최종 목적지인 소비지상주의의 천국인 대형 마트에서는 그동안의 금욕(?)에서 해방되어 손에 잡히는 대로 카트에 이것저것 담아댔다. 이게 여기서의 마지막 쇼핑이고, 이걸로 다시 일주일을 살아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 과했던 것도 있다. 먹고 살아야하니까 쌀과 반찬 잔뜩, 작업하면서 먹을 엄청난 양의 주전부리들(특히 곤약젤리). 단 한 번의 쇼핑에 8천 엔(8만 원 정도)을 썼다. 이런 생활을 아주 오랫동안 계속 해 나간다는 건 삶에 어떤 의미가 될지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가 없다. 먼 옛날의 수많은 은자들은 그들의 지혜를 속세에 전해는 대신, 사람들은 그에 대한 대가로 그들이 기거하는 오지의 다 쓰러져가는 움막이나 동굴 앞에 음식과 물을 제공했다고 한다. 은자들은 지혜와 성찰을 위해 기꺼이 고독과 굶주림, 지루함을 견뎌낸 것이다. 마트 계산대 앞에서 카트가 넘치도록 담은 온갖 음식들을 바라보며 나는 전업 은자가 되기에는 이미 틀렸다고 생각했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정도는 하는 ‘간헐적 은자’ 정도는 괜찮을 것 같기도. 아, 물론 와이파이가 빵빵해야 하는 건 필수다. 



Dodo in Tsrunoyu II, 53x45.5cm, mixed media on canvas,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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