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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Mar 04. 2020

세토우치 자전거 소도시 여행 (2)

오노미치-미하라-타케하라

오늘의 코스. 사자나미 카이도!






오노미치 시내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작은 해협을 건너야 했다.




오노미치에 처음 당도했을 때의 감상은 딱 두 단어였다. ‘힘들다’ 와 ‘배고파’. 우리는 이른 아침부터 하루 종일 꽤 많은 거리를 달렸지만 오노미치 시내로 넘어가는 작은 페리를 타기 위해 항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땅거미가 내린 뒤였다. 설상가상으로 후진씨가 예약했던, ‘오노미치가 한눈에 내려다보일 정도로 뷰가 정말 끝내주게 멋진’ 료칸은, 당연하게도 오노미치 시내의 한 언덕배기(라고 적고 산이라고 읽는다) 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었기에, 우리는 사이클링에 이어 등산을 해야만 했다. 우리는 점점 말수가 적어졌다.      





산꼭대기의 호텔에서 맞이하는 아침 풍경은 끝내줬다!




‘고생 끝에 낙이 있다’는 격언은, 사실 일상 속에서는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꽤나 많다. 우리네 일상에서는 고생 끝에 또 다른 고생이 있고, 그 뒤에 또 다른 고생이, 그리고 그 뒤에는 또 다른 고난과 역경이 기다리고 있는 꼴이 흔하기 때문에 오히려 고생 끝에 낙이 있다는 희망고문 같은 이야기 보다는 ‘포기하면 편해’ 라는 말이 마음에 더 절절히 와 닿을 때가 많은 것이다. 그래서 일까? 내가 ‘사서 고생하는’ 이런 종류의 여행을 사랑하는 이유는 이 여정이 주는 모든 고생 끝에는 분명히, 확실하게, 반드시 낙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언덕 꼭대기에 있는 료칸 <센코지 산소>까지는 자전거를 탈 때 보다 더욱 땀을 비 오듯 줄줄 흘리며 고생스럽게 올라갔지만, 도착하자마자 땀에 절고 냄새나는 옷을 벗어 던지고 대욕탕의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담그고 반쯤 정신을 놓고서 오노미치의 야경을 바라보는 일과, 우리 방에 정성스럽게 차려진 저녁식사를 산뜻한 기분으로 음미하는 기분을 어찌 달리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으랴. 이것이야 말로 확실하고 명백하고 명료한 ‘낙’이라고 할 밖에.     



오노미치 미술관을의 입구 표지에도 고양이가.



다음날 아침,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서기 전에 센코지 공원 근처의 이곳저곳을 방문했다. 전날 오노미치에 도착했을 때는 그저 작은 도시라고만 생각했지만, 미술관을 비롯해 이곳저곳에 휴일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처음 방문했던 시립미술관 같은 경우에는, 사실 그곳의 작품들 보다는 미술관을 대표하는 고양이 켄짱과 고짱이 더 기억에 남았다. 이 고양이들이 미술관을 대표하게 된 계기는, 어느 날 한 녀석이 미술관에 무단 난입(?)하려 했고, 그를 제지하려던 경비원의 모습이 포착되어 트위터에 올라가면서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고. 그래, 무조건 귀여운 게 최고다. 본인도 한 고양이의 집사로서 백만 번 동의하는 바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고양이로 유명한 미술관에 걸맞게 미술관이 위치한 센코지 공원은 온 천지에 고양이가 득실대는 고양이 천국인데다가, 근처의 센코지 절을 지나면 온통 고양이 테마로 골목이 꾸며져 있는 <네코노호소미치>까지 만나 볼 수 있다. 덕분에 길을 걷는 내내 우리는 사람을 보면 도망가기는커녕 배를 뒤집고서 ‘어서 날 쓰다듬으라옹!’이라고 하는 듯한 눈빛으로 말을 거는 묘생들을 영접할 수 있었다.      







차마 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고양이 천국을 뒤로 하고, 잠시 들른 혼도리 상점가에서 우리는 운 좋게도 마침 축제 기간에 이곳을 방문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징과 피리소리에 맞춰 춤을 추며 행진하는 사람들과, 상점가 여기저기에 펼쳐진 다채로운 가판들과 가게를 구경하며 달콤한 푸딩을 먹고, 맛좋은 말차라떼를 마셨다.    





  



나는 여행이라는 행위가 내게 선사하는 이 예측할 수 없고, 선택하기 힘든 모든 일들이 너무나도 사랑스럽고 즐겁다. 어쩌면 분명 고된 일이다. 시간이 금이라는데, 그 시간을 어렵게 내야하고, 금과 같은 돈도 꽤나 써야만 한다. 집을 떠나는 순간 고생할 일들은 뻔히 예정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든 기회가 된다면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이유는, 여행이라는 행위가 익숙한 일상과는 너무나도 다른 선택지들을 보여주기 때문이지 않을까? 여행지에서 우리는 마치 세상을 처음 본 어린아이마냥 무엇 하나 무심코 지나치지 않고, 다시 한 번 시선을 주고, 다른 방식으로 보게 된다. 이렇게 ‘신선하게 보는’방법은 비단 내 업인 창작에 있어서도 무척 유용하다. 창작뿐이랴. 여행은 일상이 주는 수십, 수천 가지의 매너리즘에서 벗어나는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방법일 것이다. 여행은 내일에 대한 기대를 확신시켜주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나는 매일매일 내일이 기다려지면서도, 벌써부터 이곳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사자나미 카이도를 상징하는 파란 화살표





잠시 오노미치에서 관광객이 되었다가 다시 본업으로 돌아가 자전거 안장 위에 올라 목적지인 다케하라로 달리기 시작했다. 묵직한 배낭만 없었어도 조금 나았을 것 같은데, 여행하는데 필요한 모든 물건들을 배낭에 넣고 달리자니 어깨도 아프고, 다리도 아프고, 엉덩이도 아프고. 그야말로 삼중고였다. 하지만 나는 불평할 처지가 아니었다. 우리를 가이드하기 위해 선두에서 달리는 후진씨는 일단 길을 찾기 위해 구글 지도와 끊임없이 고군분투 해야만 했던 데다가, 카메라를 비롯해 이런저런 자료들, 기타 등등의 무게를 감당해야 했고, 후미에서 달리는 효섭씨는 머리에는 이번 여정을 몽땅 영상으로 기록할 고프로 카메라가 달린 헬멧에, 목 디스크가 걱정될 정도로 무거운 납덩이같은 DSLR을 가슴팍에 걸고, 등에는 자기 몸통만한 배낭을 메고서 묵묵히 달려오고 있었다. 이 정도면 후진씨는 인간 네비게이션이고, 효섭씨는 달리는 인간 기록 장치였던 것이다. 음, 내가 제일 날로 먹었구나. 다들 고생했어요..     








다케하라로 가는 길은 지금까지 달렸던 큼직한 다리나 큰 길과는 사뭇 다르게 작은 마을과 항구의 이차선 도로가 주를 이루었다. 거친 바닷바람에 조금씩 녹슬어가는 거대한 조선소들과 공장을 지나고,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마을을 지나, 왼쪽엔 바다, 오른쪽엔 기차 철로를 두고 그 사이를 비집고 솟아난 것만 같은 좁은 길을 오랫동안 달렸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말을 할 필요가 없는 여행도 있구나 싶었다. 말없이 묵묵히 풍경을 달리다 문득 멈춘 식당에서 오코노미야끼를 정신없이 흡입하고, 잠시 쉬어갔던 작은 항구의 휴게소에서 타코야끼를 집어 먹는 와중에 서로의 컨디션과 앞으로 남은 길, 그리고 우리가 달려온 길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것이 하루에 있었던 대화의 거의 전부였다. 그러나 하루의 시간은 우리가 달리는 거리만큼 느리게 흘러갔고, 그 시간들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길고 선명한 풍경들로 채워져 나갔다.      







미하라에서 다케하라로 넘어가는 고개로 넘어가는 내내 나는 속으로 욕을 했다. 아니, 어떤 오르막길이던 저 너머에서 보일 때부터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그리고 오르막길을 만날 때 마다 효섭씨는 뒤에서 가수 정인의 <오르막 길>의 한 소절을 나지막이 읊조렸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거야아아~”      


모든 오르막길은 힘들었지만 이 날 다케하라로 넘어가는 오르막길은 진짜였다. 자전거 기어비를 최소치로 낮추고, 몸을 앞으로 빼고, 허벅지에 젖 먹던 힘까지 짜내서 힘을 주어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그야말로 나 자신과의 싸움이 되었다. ‘자존심을 버리고 여기서 내려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갈까? 아닛, 후진씨와 효섭씨는 아직 잘 버티는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할 때 쯤, 후진씨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우리 걸어갈까요?” 라며 나를 구원했고, 결국 우리 셋 다 자전거에서 내려 천천히 언덕을 올라 다케하라로 넘어가는 고갯길의 정점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래도 오르막길의 좋은 점은 여기에도 역시 고진감래의 법칙이 완벽하게 적용된다는 것이었다. 긴 오르막의 끝에는 마치 거친 바람이 된 것만 같은 착각을 하게할만한 짜릿한 긴 내리막길이 반드시 있었기에. 이번 여행에서는 이 단순한 법칙이 우리를 유난히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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