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odoseeker Mar 03. 2020

세토우치 자전거 소도시 여행 (1)

오미시마  -  이쿠치시마



작년 가을즈음, 그림작가인 저와 사진작가인 효섭씨, 저희를 가이드할 인페인터글로벌의 후진씨와 함께 일본 남부의 지중해라고 불리는 세토우치에서 4박 5일간 자전거 여행을 했습니다. 일본 자전거의 성지라 불리는 그곳을 달리며 각자의 방식으로 풍경을 기록하고 음미했고, 마침내 여행정보와 각자의 에세이를 담은 책이 완성되었습니다. 오늘부터 연재할 총 세 편의 에세이는 이번에 완성된 책에 수록된, 제가 담당한 루트에 대한 단상들입니다 :) 


4박 5일간의 자전거 여행 루트. 다카마쓰로 들어와서, 기차를 타고 이마바리로 이동하여 여정을 시작했다.





등장인물

도도새


특징 : 필자. 멸종된 '도도새'를 주로 그리는 그림작가다. 멤버 중 최약체.


능력 : 그림그리기, 힘들어도 웃는척 하기 등등


임무 : 완주(...) 


라이딩 포지션 : 가운데

효섭


특징 : 사진작가. 각종 장비 사용에 능하다. 여행 내내 고프로를 부착한 무거운 헬멧에, 목에는 DSLR을 걸고, 10킬로그램에 달하는 온갖 짐이 든 배낭을 메고 달린 괴력의 소유자.


능력 : 일본 여행 처음 


임무 : 각종 사진촬영 및 영상 기록, 도도새 낙오 방지


라이딩 포지션 : 맨 뒤



후진


특징 : 인페인터글로벌 직원. 자전거로 일본 전국을 일주한 무지막지한 전력이 있다.


능력 : 일본어, 인간 네비게이션


임무 : 가이드, 통역, 맛집 탐색


라이딩 포지션 : 맨 앞









1화 : 오미시마 - 이쿠치시마 구간

이번 글에서는 위 지도 맨 아래의 이마바리부터 이쿠치시마까지의 여정을 다룬다.



에히메현에서 시작하는 세토우치 자전거 여행은 내게는 두 번째다. 지난 첫 번째 자전거 여행(https://brunch.co.kr/@gazarts/1)에서는 마침 태풍을 만나 자전거 여행이 하루 만에 무산되었던 전적이 있으니 사실상 제대로 된 자전거 여행을 즐기게 된 건 이번이 첫 번째였다. 물론 나에게 자전거 여행을 즐길 만큼의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 이느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자신 있게, “네!”라고 대답하지는 못하겠다. 


필자는 멸종된 '도도새' 관련 작업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우측에 오렌지 빛깔의 곰은 에히메를 상징하는 미컁(귤) 캐릭터다. 



나는 작가라는 직업에 걸맞게 일 년의 대부분의 시간들을 캔버스 앞에서 붓을 잡는데 사용해 왔고, 운동이라곤 가끔 헬스클럽에서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것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나는 사이클링과는 무척 거리가 먼 사람인 것이다. 자전거란 내게 있어 집 근처 마트에 장 보러가는 데 쓰이는, 조금 빠르고 편한 이동수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때문에 이번 여행은 어떤 의미에서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이마바리에서 처음 출발하면 만나는 시마나미 카이도의 대교


우리의 원래 일정은 배를 타고 오미시마에서 달리기 시작하는 계획이었으나, 타려던 배편이 매진된 덕분에 우리는 섬과 섬을 큰 다리로 잇는 시마나미카이도를 열심히 달려 오시마섬과 하카타섬을 지나 세 번째 섬인 오미시마로 들어갔다. 시마나미카이도의 자전거 도로는 그 위에서 야생마처럼 달리지 않고는 못 배길 정도로 자전거 도로가 환상적으로 잘 닦여있었다. 게다가, 그 길 위를 달리며 보이는, 수평선 위로 점점이 떠 있는 작은 섬들과 어촌의 소박한 삶들을 감상하는 일은 자전거 안장 위로 느껴지는 엉덩이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게 해주었다.


      


그러나 역시 자전거 여행을 하며 내내 나를 괴롭게 했던 것은 허벅지의 고통도 아니요, 무자비한 오르막길도 아니었다. 함께 했던 동료들은 그나마 자전거로 오랫동안 여행해 본 경험이 있었지만, 나의 엉덩이는 딱딱한 자전거 안장과 그다지 친분이 없었기 때문에 자전거를 타는 내내 이따금씩 나도 모르게 끄응 하고 신음소리를 흘려야만 했던 것이다.     




섬을 잇는 거대한 다리 위를 시원하게 달리는 기분도 무척 좋았지만, 자전거와 같은 자가 이동수단이 아니고선 만나기 어려운 이국의 소박한 마을 풍경과, 그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만나는 일은 나를 더 설레게 했다. 목이 긴 고무장화를 신고서 낚싯대를 어깨에 걸치고 휘파람을 불며 바닷가로 향하는 남자, 삼삼오오 무리지어 재잘거리며 하교하는 교복 입은 아이들의 유쾌한 모습들. 그리고 이 모든 풍경의 정점은 침샘을 자극하는 먹거리에 있다. 이 지역은 사면이 온통 바다로 둘러싸인 섬으로 구성된 동네인데다가, 지중해성 기후 덕분에 온갖 해산물과 귤, 레몬, 유자 등이 특산품이다. 이쿠치시마는 일본 레몬의 대표적인 생산지인 덕분에 달리는 내내 레몬이 모티프가 된 벤치나, 레몬관련 제품을 파는 곳이 눈에 띄었는데, 잠시 자전거를 멈추고 들어간 <시마고코로>에서 우리는 상큼하면서도 달콤한 레몬 케익을 하나씩 나누어 먹었다. 달리는 기차에서 먹는 삶은 달걀도 맛있지만, 이렇게 땀 흘리며 쉼 없이 패달을 달리다 멈추고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서 맛보는 디저트에 비할 데 있으랴. 비록 우리의 꾀죄죄한 몰골은 이 과즙미가 팡팡 터지는 예쁜 레몬 케이크 가게와는 조금 어울리지 않아 보이긴 했지만.     


'시마고코로'의 레몬빵!



문득 몇 년 전, 보름 동안 걸었던 스페인에서의 순례길이 생각났다. 그때의 경험은 나 자신의 온전한 힘으로 직접 길을 걷고, 어떤 목적지를 향해 조금씩 착실하게 나아가는 일에 대한 즐거움을 깨닫게 해 주었다. 그런 즐거움을 새삼스레 느꼈던 것은, 문명이 발전하며 이동수단의 비약적인 변화로 인해 세계가 좁아지고, 풍경은 소비하는 것으로 대체가 되면서 이동이라는 행위는 단축되어야만 하는 비생산적 시간으로 여기게 됐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우리는 그 편리함으로 인해, 목적지로 가는 동안 만나게 되는 수많은 아름다운 풍경들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걷기나 자전거와 같은 조금 느린 이동수단들은 육체적으로 조금 고생스럽지만, 모든 것이 지나치게 빨라진 이 세상 속에서 우리에게 풍경을 제대로 보는 법을 다시금 깨닫게 해 줄지도 모른다.      


순례길에서는 노란 화살표를 따라가야 한다면, 여기서는 파란 화살표를 따라가면 된다.



우리가 분주하고 벅찬 하루를 보내는 나날들 속에서 아침을 먹으며 점심 메뉴를 생각하고, 점심을 먹는 와중에 저녁 메뉴를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 나는 자전거 위에서 엉덩이와 허벅지의 고통과 싸우는 동안 내내 점심메뉴를 생각했다. 실패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맛있는 걸 먹겠다는 일념으로 오미시마섬을 지나 도착한 이쿠치시마의 세토다 항구의 활기찬 거리에서 우리는 이곳에서 유명하기로 소문난 고로케집과 문어튀김 덮밥집을 차례차례 격파해 나갔다. 





이 고즈넉한 항구 거리를 걷다 보면 연예인들의 온갖 자필 싸인과 일본 아이돌 가수들의 사진으로 도배된 한 허름한 고로케집을 만날 수 있는데, 세토다 항구의 모든 사람들이 여기 모여 있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주인 할머니는 인자한 미소를 짓고서 “맛있어~”라며 우리를 유혹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손에 고로케가 들려있었으며, 눈을 깜빡이고 나니 손에는 기름자국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점심을 해결하러 들어갔던, 거대한 문어 문양이 대문짝만하게 붙어있는 문어 튀김 덮밥 식당인 <치도리>에서도 우리는 음식이 나오기가 무섭게 그릇을 싹싹 비워버렸다. 남자 셋 모두 취재만 아니라면 음식 사진 촬영이고 뭐고 까맣게 잊어버릴 뻔 했다.  


점심을 먹었던 문어덮밥집 '치도리'



배를 가득 채우고, 본격적으로 다시 길을 달리기 전에, 우리는 항구거리 초입에 있는 작은 카페에 들러 잠깐의 여유를 만끽했다. 저 멀리 사이타마에서 비행기로 출퇴근 한다는 주인장이 정성스레 커피를 내려주는, 아기자기한 자전거 용품들과 테마로 꾸며진 이 작고 아담한 카페는 수많은 사이클리스트들이 거쳐 가며 그들의 지친 다리와 엉덩이를 잠시 쉬게 했을 것이다. 거기서 얻는 찰나의 달콤한 휴식과 따뜻한 위안은 어쩌면 일상에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종류의 특별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여행이 주었던 그 피곤함과 고생스러움, 모든 귀찮은 일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서 결국 다시 떠날 준비를 하게 되는 게 아닐까.  





<다음 화에 계속>


텀블벅 펀딩 페이지 입니다 :)

https://www.tumblbug.com/cycletravel/?utm_source=facebook&utm_medium=share&fbclid=IwAR3O3D9yNDPrHWAZxwfTZcUEI2noAZz3Y37_1OcfSGYcC-pVELU2qlIhI0k


작가의 이전글 쓰루노유 다이어리 - 12(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