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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Apr 27. 2019

쓰루노유 다이어리 - 12(完)

흰 연기로 가득 찬 깊은 숲의 무풍지대를 떠나며




긴 시간이 지난 뒤에 내가 이곳에 대한 기억을 다시 떠올리려 애쓰게 될 때면 나는 무엇을 기억해낼까. 4월임에도 불구하고 발목까지 푹푹 빠지며 매일 걸었던 숲길? 몸이 녹아내리도록 들락날락했던 노천탕? 아니면 늘 그랬듯 습관처럼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던 카페 한 켠의 작업대? 어쩌면 그런 구체적이고 설명적인 기억보다는 코끝을 간지럽혔던 나무 사이를 타고 불어왔던 봄 내음과 온천의 구수한 냄새, 눈이 녹는 소리, 하루 종일 들려오던 이름 모를 산새들의 지저귐과 같은 이곳에서 느꼈던 공감각적인 것들을 추억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결국 우리가 그리워하게 되는 것들은 대부분 과거의 사물이나 사람이 아닌 그 흘러간 시간들만이 갖고 있는 아련한 감성들과 그리움들이 아닌가.      







사실 집을 떠나와 타지에서 이번만큼 많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게 된 건 쓰루노유에서가 처음이다. 뉴욕과 도쿄에서의 레지던시에서는 쫓기듯 그림을 그리는 데만 집중했고, 7년 전 스페인에서 스물 하루 동안 순례길을 걷는 동안에는 거의 매일 탈진 상태에서 그림은 고사하고 간신히 짧은 일기를 휘갈겨 쓰고는 쓰러져 잠들었던 게 생각난다. 그러나 쓰루노유에서는 유난히 나 자신과 단 둘이 대화할 시간이 많았다. 혼자 숲길을 걸으면서, 노천탕에 누워 밤하늘을 보면서. 






미시마 유키오는 그의 저서 <금각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삶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어떤 순간에 대한 충직함과 그 순간을 영원화하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다."라고. 내가 수많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써 내려가는 행위는 결국 무엇이 주제가 되었든 간에 현재에 충실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충만한 현재는 다가오는 시간들을 고대하게 만들고, 그 앞에 무엇이 놓여있던지 부딪혀 볼만한 용기를 준다. 어쩌면 수많은 현자들이 기꺼이 은둔했던 까닭은, 결국 고독과 마주하는 것이 현재의 나 자신과 마주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자신과 마주하는 순간은 끝없이 고독함과 동시에 지금의 나를 온전하게 바라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삶은 성난 바다에 덩그러니 내던져진 작은 조각배와 같다. 나 자신 조차 자신이 어디로 휩쓸려가고 있는지 깨닫지 못한 채,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이리저리 표류하고, 누군가와 부딪혀 산산조각나기를 반복한다. 그 와중에 고독은 순식간에 우리를 잔잔한 무풍지대로 인도한다. 쓰루노유는 나에게 있어 흰 연기와 숲 내음이 가득한 그런 무풍지대였다. 이제 나는 또다시 삶의 거친 해류 속으로 돌아가지만, 언젠가 그 끝없는 방랑의 조타操舵가 필요하게 될 때, 나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 무풍의 숲을 떠올리게 될 것 이다.     








“고독은 상처에 바르는 진통제이다. 또한 고독은 공명상자이다. 혼자 있을 때 받는 인상들은 평소보다 수십 배는 더 강하게 느껴진다. 고독은 우리에게 어떤 의무를 부과한다. -중략- 고독은 모든 수다를 물리치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고독은 우리의 기억 속에 사랑하는 사람들의 추억을 불러낸다. 또한 고독은 은둔자로 하여금 식물들과 동물들, 그리고 떄로는 잠시 지나가는 어떤 작은 신과 우정을 맺게 해준다.”     


- 실뱅 테송 <희망의 발견 : 시베리아의 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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