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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Mar 05. 2020

세토우치 자전거 소도시 여행 (3)

기묘한 도시 타케하라

등장인물

도도새


특징 : 필자. 멸종된 '도도새'를 주로 그리는 그림작가다. 멤버 중 최약체.


능력 : 그림그리기, 힘들어도 웃는척 하기 등등


임무 : 완주(...) 


라이딩 포지션 : 가운데

효섭


특징 : 사진작가. 각종 장비 사용에 능하다. 여행 내내 고프로를 부착한 무거운 헬멧에, 목에는 DSLR을 걸고, 10킬로그램에 달하는 온갖 짐이 든 배낭을 메고 달린 괴력의 소유자.


능력 : 일본 여행 처음 


임무 : 각종 사진촬영 및 영상 기록, 도도새 낙오 방지


라이딩 포지션 : 맨 뒤



후진


특징 : 인페인터글로벌 직원. 자전거로 일본 전국을 일주한 무지막지한 전력이 있다.


능력 : 일본어, 인간 네비게이션


임무 : 가이드, 통역, 맛집 탐색


라이딩 포지션 : 맨 앞












3화 : 기묘한 도시 타케하라





대나무가 유명한 도시라는 걸 강조하듯 대나무 조형물로 장식된 다케하라 인포메이션 센터 앞에서 우리가 길을 찾기 위해 자전거를 멈추었을 때, 우리를 처음 맞이한 것은 어느 현지 아주머니였다. 사거리에서 전단지를 배포하고 있었던 아주머니는 효섭씨의 헬멧에 달린 고프로를 흥미로운 표정으로 가리키며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어떤 여행을 하는지 이것저것 질문을 해 왔다. 일본어가 가능한 사람은 후진씨 뿐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멀뚱멀뚱 서서 후진씨의 통역을 기다리며 웃거나, 미소 짓거나, 놀라거나 했다. 우리가 저녁에 <다이카엔>이라는 유명한 라멘집에 갈 예정이라고 이야기 했더니, 아주머니는 그 가게는 인기가 많으니 늦지 않게 가야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충고해주셨다. 아주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들이 몇 가지 더 있었던 것 같긴 했지만 그 이야기만큼 우리에게 중대하게 느껴진 것은 없었다. 우리가 하루 머물 호텔 <다이코엔>을 찾아가는데 조금 헤매기는 했지만, 서둘러 짐을 풀고 곧바로 자전거에 올라타 라멘집으로 향했다. 







호텔에 도착할 당시에는 하늘이 보랏빛으로 물들어가던 해질녘이었는데, 낮고 작은 집들로 가득한 그 조용하고 작은 동네에 커다란 초록색 호텔 광고판이 조명을 받고 있는 모습과, 바로 맞은편의 빨간 네온사인이 큼지막하게 반짝이는 빠칭코 가게가 있는 풍경은 어쩐지 무척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다음날 일어나 정신을 차리고 나면 호텔과 마을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영문도 모른 채 산 속 한가운데 덩그러니 남겨져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지게 했다.     





자전거의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지해 고요한 밤거리를 달려 도착한 라멘집에서 우리는 다행히 성공적으로 주문을 할 수 있었고, 차슈와 파가 듬뿍 올라간 라멘에 가라아게와 시원한 맥주를 한 잔씩 곁들여 그 날 하루의 여정을 무사히 마친 것을 자축했다. 하루를 꼬박 잘 달렸다는 사실 만으로 이렇게 작고 소박하게 축하 하고, 서로를 격려할 수 있는 나날들은 정말 오랜만에 내가 무언가를 제대로 해 나가고 있다는 기분을 들게 했다. 그리고 그건 생각했던 것만큼 어렵지 않은 일이라는 것도.     








우리가 머문 호텔 <다이코엔>은 처음 받은 인상만큼이나 정말 기묘한 장소였다. 로비와 복도에서는 일본 걸그룹 AKB48의 <포츈쿠키> 오르골 버전이 들릴 듯 말듯한 은근한 볼륨으로 끊임없이 울려 퍼지고 있었는데, 그 음악을 들으면서 호텔 복도를 걷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흔한 도시전설 속 존재하지 않았던 방이나 다른 세상으로 가는 층계가 등장 할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그 와중에 가장 압권이었던 것은 하루의 피로를 풀기 위해 들렀던 대욕탕이었다. 욕탕과 탈의실에는 온 몸에 화려한 동양화가 그려진 아저씨들이 다양한 자세로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덕분에 우리는 이번 여행을 통틀어 가장 빠른 속도로 몸을 씻고서 최대한 착해 보이는 표정을 지으며 욕탕을 빠져나와서는, 다시 <포츈쿠키>가 흐르는 복도를 지나 조용히 방으로 돌아가, 무사히 하루를 마쳤음을 다시 한 번 함께 자축하고 잠들었다.      








이틑날 아침, 우리는 타케하라를 조금 둘러보고 다시 출발할 요량으로 가벼운 차림을 하고서 시내로 나갔다. 타케하라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오래된 절 <사이호지>에 잠시 올랐다가 <미관지구> 거리를 둘러보는데, 별안간 골목에서 스쿠터를 탄 어제의 아주머니가 나타나서는, 효섭씨에게 다가와 그 라멘집에서 라멘을 먹는데 성공했는지 무려 세 번이나 물어보셨다. 우리가 라면을 먹었다고 하자 그제서야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이 거리에는 행복을 가져다주는 하트 모양의 장지문이 있다며 꼭 찾아볼 것을 당부하고서는, 다시 부릉거리며 저 멀리 사라져버렸다. 그걸 찾으면 사랑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나. 아니나 다를까, 이 거리의 온갖 점원들, 트럭을 타고 지나가던 할아버지마저 우리에게 그놈의 하트 장지문을 찾으라고 강력하기 권하는 통에 우리는 결국 ‘그 명물’을 찾아내서 사진까지 찍고 나서야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었다.      





다시 패달을 밟아 타케하라를 떠나며, 어쩐지 다음에 이곳을 방문하면, 타케하라라는 도시 자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전혀 다른 무언가가 자리하고 있을 것만 같은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지나가는 행인에게 “타케하라가 여기 맞나요?”라고 물어보면, 그는 의아한 표정으로

“타케하라요? 그런 곳은 이 근방에는 없는데요.”라고 대답하는 것이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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