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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Mar 12. 2020

세토우치 자전거 소도시 여행 (4)(完)

시모카미가리시마 - 오사키시모지마

     

마지막 코스. 도비시마 카이도!





여정이 끝을 향해 달려갈수록 우리는 섬의 더 깊숙한 곳으로 달려 들어갔다. 해안도로를 따라 계속해서 달린다면 히로시마까지 도달했겠지만, 우리는 서쪽으로 향하던 진로를 남동쪽으로 틀어, 다섯 개의 작은 섬(시모카마가리-가미카마가리-도요시마-오사키시모지마-오카무라)을 징검다리처럼 건너서 오카무라 항구를 끝으로, 다시 이마바리로 돌아가는 페리를 타는 길을 택했다. 




숙소가 있는 미타라이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다케하라에서 이어지던 사자나미 해도를 벗어나 도비시마 해도로 들어섰다. 날씨는 흐렸고, 맞바람이 무지막지하게 불어오는 통에 자전거를 타는 내내 마치 누군가가 나를 계속해서 뒤로 밀어내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사실 이 날은, 크게 내색은 하지는 않았지만(어쩌면 모조리 다 티가 났겠지만) 내게 있어 일정 중 가장 힘들었던 하루였다. 다케하라에서 미타라이까지의 거리는 60킬로미터에 달했고, 유난히 언덕이 많았으며, 내가 미타라이에 가는 것에 무슨 불만이라도 품었는지 바람조차 무척 비협조적이었다. 게다가 크고 작은 다리를 네 개나 건너가야만 했는데, 그 말인즉 다리 위까지 이르는 오르막길을 무조건 네 번 만난다는 얘기였다. 나는 다리를 발견하게 될 때마다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길 중간중간에 있던 무인 가판대



그러나 섬과 섬을 잇는 인적 드문 해안도로를 달리는 일은 무척 즐거웠다. 사자나미 해도에서 질리도록 만나야만 했던, 우리를 위협적으로 스쳐 지나가던 커다란 트럭들은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고, 그저 수평선 위로 점점이 떠 있는 반짝이는 작은 섬들이 평화롭게 흘러갈 뿐이었다. 길 중간 중간에는 판자로 만들어 놓은 무인 판매대가 자리 잡고 있곤 해서, 근처 밭에서 일군 귤이며 채소며 하는 것들을 가격표를 붙여 선반에 진열해 놓고, 한켠에 돈을 넣는 통을 붙여놓은 모습이 재미있었다. 우리는 보기만 해도 새콤해 보이는 귤 몇 개를 집어 들고, 양심적으로 셀프 계산을 마친 뒤 찰나의 망중한을 즐겼다.      






바람에 출렁이는 몇 개의 다리와, 마치 다른 세상으로 이어 질것만 같았던 몇 개의 길고 긴 터널을 지나고, 채석장과 양식장, 끼룩거리는 수많은 갈매기 떼를 지나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우리는 오사키시모지마 섬의 서쪽 끄트머리에 있는 작은 항구 마을 미타라이에 도착했다. 우리가 머물게 된 숙소는 해변을 접한 어느 골목에 위치한 <게스트 하우스 구스시>라는 곳이었는데, 다이쇼 시대에 건축된 오래된 양옥 전체를 게스트 하우스로 꾸며놓은, 오래된 나무 냄새와 함께 여기저기 빛바랜 추억이 묻어 있는 고즈넉한 장소였다. 과거에는 어느 가족이 함께 지냈을, 다다미가 깔려있는 일 층의 거실 선반에는 <슬램덩크>며 <H2>와 같은 추억의 만화책이 잔뜩 꽂혀 있었다. 우리는 거실에서 체크인을 마치고 삐걱이는 층계참을 올라가 여장을 풀었다. 손님이라곤 우리 셋 뿐 이었기 때문에, 각자 이층 침대 하나씩을 점령하고서 저녁식사를 위해 가벼운 차림으로 미하라시 식당으로 향했다. 





미하라시 식당은 말 그대로 그냥 동네 식당이었다. 식당 천장 모서리에 설치된 소형 TV에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일본의 소식들이 계속해서 흘러나왔고, 우리가 오기 훨씬 전부터 앉아 있었던 것 같은 두 남자는 연신 담배를 피며 맥주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우리가 조금 늦은 시간에 와서인지, 아니면 손님이 그다지 없는 평일이어서 인지, 식당에 준비된 음식은 그다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간단히 요기를 하고서 식당 주인에게 물어 동네에서 가장 큰 구판장으로 가 술과 안주거리를 잔뜩 사가지고 돌아와 게스트 하우스의 거실에서 자전거 여행의 마지막 밤을 자축했다.




그렇게 마지막 축제를 마치고 이층침대 구석에 찌그러져 있는데, 효섭씨가 얼른 나와 보라며 나를 재촉했다. 다이나믹한 하루를 보낸 탓에 무척 피곤하기도 했고, 거기에 술까지 들어간 덕분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 그의 강력한 권고에 못 이겨 바람막이를 둘러쓰고 게스트하우스 앞의 해변으로 기어나가다시피 했는데, 그는 그런 나를 보더니 빙그레 웃으며 밤하늘을 가리켰다. 그의 손 끝 위로는 캄캄한 밤의 장막을 배경으로 촘촘히 박힌 보석 같은 별들이 쏟아질 듯 수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나와 보길 잘했죠?” 하는 물음에 나는 해야 할 대답을 찾지 못하고 그저 입만 뻐끔거렸다. 쏴아 하는 잔잔한 파도소리만이 적막하게 울려 퍼지는 캄캄한 밤의 해안에서 목이 아픈 줄도 모르고 고개를 쳐들고 하늘을 바라보는 동안 몇 개의 별똥별이 작은 꼬리를 남기며 반짝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미타라이를 떠나는 날 아침, 우리는 오래된 상점가가 그대로 남아있는 골목을 구경하려 했지만, 평일 오전이어서 그런지 제대로 오픈한 곳은 옛 유곽 건물로 알려진 <와카에비스>뿐이었다. 그곳에는 놀랍게도 1900년대 초반에 일본인 최초로 자전거로 세계 일주에 성공한 나카무라 슌키치의 자전거가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가 자전거와 함께 찍은 사진은 거의 사냥개와 사냥꾼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포스를 자랑하고 있었다. 슌키치의 모험에 비하면 우리의 자전거 여행은 동네 마트에 장보러 가는 수준인 것이다. 비교하는 일 자체가 무의미 하기는 하지만, 기죽지 말자. 이번 여행은 나에게 있어서는 적어도 세계 일주 급이었어. 





게스트하우스를 나서서 이제 마지막 목적지인 오카무라항으로 떠나려는데, 숙소 맞은편 집 대문에서 고양이 두 마리가 우리를 향해 쪼르르 걸어 나왔다. 뒤이어 잡초를 뽑던 주인 아주머니도 함께 등장했는데, 길거리를 배회하던 이 녀석들을 거두어 함께 살고 있다고 이야기 해 주었다. 한 녀석은 한쪽 눈이 불편한지 오른쪽 눈만 뜨고 있었지만, 두 마리 다 무척 건강해 보였고, 사람을 잘 따르는지 처음 보는 내게 머리를 연신 비비며 아는 체를 했다. 그건 마치 따뜻하고 사려 깊은 작별인사처럼 느껴졌다. ‘수고했어, 조심히 돌아가.’     





수많은 다리와 언덕배기 그리고 바람과도 같이 짜릿했던 내리막길, 길고 길었던 해안선과 크고 작은 삶들을 지나쳐 오는 동안 나는 내가 잠시 서울에 두고 온 일상에 대해서 거의(백 퍼센트가 되려면 더 고생해야 할 것 같다) 망각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쩌면 육체적인 고통이 주는 축복의 다른 이름이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보다는 길 위에서 목적지를 향해 조금씩 확실하게 나아가고, 가까워지고, 결국 도달하는 그 기분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그 무엇도 확실하지 않다는 사실’이라는 말마따나 제대로 확신할 수 있는 것이라곤 좀처럼 찾기 힘든 이 세상 속을 여전히 헤매고 있는 내게 확실한 위안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그 위안은 또 다른 종류의 확신을 잉태한다. 언젠가 어느 곳에서든지, 또다시 낯선 길 위를 걷고 있을 거라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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