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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Nov 08. 2020

반려동물, 죽음에 대하여

깜돌이



유기묘를 분양받아 함께 데리고 산지 이제 3년쯤이 되었다. 독립하고 나서 얼마 되지 않아 데려왔으니 나름 새 출발을 함께 해 온 녀석이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것도 처음이었지만, 일단 반려동물이라는 존재 자체가 내게는 너무 낯설고 신기했다. 다행히 성묘인데다가 성격이 무던해서 나를 애먹이지는 않았다. 

다만 내가 모든게 처음이어서 소소한 문제에 허둥댔고, 걸핏하면 이상있나 싶어 병원데려가고 했던건 어쩔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고양이라는 동물은 상대적으로 다른 반려동물에 비해 손이 많이 가지 않는 편이라는 말이 사실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물론 다른 반려동물을 키워본 경험은 없지만, 주변에 강아지를 데리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배변을 정해진 장소에 정확하게 처리한다는 것 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닫게 된다. 


허나 늘 미안한 것은, 내가 아침 일찍 작업을 하러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느라 오랜시간 집에 혼자 있을 녀석이 외롭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강아지도 아닌것이 내가 계단을 올라오고, 도어락 버튼을 누르는 소리에 다다다 달려와서 냐옹냐옹 하는 모습을 보면 참 행복하면서도 미안하고 그렇다. 처음 녀석을 데려왔을 때는 작업실이 따로 없었고, 집에서 종일 작업을 하느라 늘 함께 있었으므로 그런 감정은 느낄새도 없었는데, 작년 봄부터 외부 작업실이 생기는 바람에 졸지에 녀석은 고독해지고 만 것이다. 그 와중에 녀석에게 위로가 되는 일이 있었다면, 처음 녀석과 함께 살았던, 햇빛 한 조각도 들어오지 않는 반지하를 탈출해 이제는 달동네 슬럼가 같은 동네긴 해도 온 집안 사방에 햇볕이 가득 들어오는 집으로 이사를 왔다는 것이다. 작업을 하러 나가지 않는 주말에 커피를 마시다가, 창문으로 들어오는 네모진 볕에 뛰어들어 온 몸을 데굴데굴 부비며 고로롱 거리는 모습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웃게 된다. 그냥 나는 그런 일들이 가장 좋다. 집에 와서 혼자 저녁을 먹고 이야기 할 사람이 없어도, 이 네 발 달린 까맣고 작은 생물이 숨을 쉬는 모습을 보는 것 만으로 슬며시 미소가 지어지는 일들. 처음 데려올 때는 그저 고양이가 좋았고, 독립을 하게 된다면 반드시 데려와야지 하는 다짐과 같은 것이 동기였다면, 함께 살게 된지 삼 년 차인 지금은 반려동물이라는 존재가 어째서 '반려'인지를 알아가게 되었고, 그래서 이 녀석의 존재가 한없이 소중하고 고맙기만 하다.





내가 두서없이 내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된 연유는, 여자친구가 키우는 말티즈가 많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서다. 동물의 일 년은 사람의 사 오 년에 해당된다는데, 그래서 그들은 어느날 갑자기 아프다가 갑자기 떠난다. 우리는 우리 인간의 죽음도 애써 외면하고, 마치 다가오지 않을 것처럼 이야기조차 꺼리기에 그들이 우리보다 반드시 먼저 떠난다는 사실 또한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나 또한 유기묘인 이 녀석이 몇 살인지 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데려왔고, 필연적으로 녀석이 내 시간 속에 영원히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도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며, 그 냉혹한 사실이 결국 내게 무서운 슬픔을 가져다 줄 것을 적확하게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기어코 우리의 짧은 시간을 함께 공유하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반려동물이란 그저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행복감만을 주는 존재임에는 틀림 없으면서도, 우리가 늘 생각하려고 하지 않는 것, 삶 이면의 죽음이라는 필연적인 사건에 대해 생각하게 해 주는것 같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그런 것들을 가장 크게 느낀다. 대적할 수 없고, 막을 수 없는 일. 언젠가는 반드시 일어나는 일. 그렇기에 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이 녀석에게, 결국 죽음이라는 생의 마지막 결말 까지도 온전히 내게 맡기게 될 이 녀석에게 나는 하루도 허투루 마음을 쏟지 않을수가 없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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