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로 떠나오기 전 3월 중순에 소포 두 개를 미리 레지던시로 보냈다.
내용물은 작업을 하는데 필요한 각종 재료들과 여분의 옷가지들, 그리고 1인용 전기밥솥 등 3개월의 생활에 필요한 이런저런 잡동사니들.
소포는 일주일도 되지 않아 파리의 택배사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이곳 택배사의 무책임한 일처리 덕분에 아직도 레지던시로 배달이 되지 않았다.
첫 번째 배달 때는 관세를 레지던시 리셉션에서 지불하지 않아 다시 되돌아간 것 같고,
두 번째 배달은 아예 시도조차 않은 것 같았다.
나는 레지던시에 메일을 보내 내 대신 관세를 내준다면, 내가 나중에 입주할 때 돈을 갚겠다고 알렸다. 나의 조급함과 불안함에 그들이 과연 공감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오늘은 결국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파리 거주중인 지인인 - 명지씨에게 부탁해 택배사에 전화를 넣어봤는데,
택배가 오늘 갈지 내일 갈지 알 수 없다는 무책임한 대답.
택배사 웹사이트에는 오늘 11시에서 13시 사이에 배달을 간다고 배송추적에 뜨는데도 정작 직원은 모른다는 거다. 그래서 일단 불안한 마음에 레지던시 건물도 직접 가보고, 리셉션 직원과 안면도 트고 상황도 직접 볼 겸 숙소를 나섰다.
어제부터 속이 좋지 않아 아침에 달랑 물 한 잔 마시고 나온 탓에 기운도 없었고, 이러다가 소포를 받지 못한 채로 한국으로 반송 될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몸과 마음이 축축 쳐졌다.
레지던시는 숙소에서 지하철로 3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생 폴역 인근에 있었다.
지하철은 어제부터 타보기 시작했는데, 인터넷이나 J의 우려와는 달리 생각보다 아주 위험한 교통수단은 아니었다. 하긴,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고, 사람 사는 곳에서 일어나는 나쁜 일이란 아무도 예견할 수 없는 그것이니.
몸과 마음 모두 지친 상태로 레지던시 건물 앞에 도착했는데, 앞으로 삼 개월을 머물 곳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울렁거렸다. 숙소가 있는 아기자기한 16구와는 달리 굉장히 현대적인 직사각형 모양의 거대한 콘크리트 건물 한 채가 통째로 세계에서 온 예술가들의 집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다국적 예술인 마을 정도 되려나.
건물 입구에는 시떼 예술가 공동체를 상징하는 달팽이 모양의 로고가 그려진 빨간 간판이 서 있었고, 출입문 옆에는 금속으로 만들어진 고풍스러운 글씨가 이곳이 시떼 국제 예술가 레지던시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이런 곳에 내가 예술가 자격으로 앞으로 지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오는 감격은 잠시 뒤로 하고, 일단 건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굳게 닫힌 쇠창살 문 옆의 인터폰의 버튼을 눌러 내가 당도했다는 사실과, 내가 누군지 알려야 했는데, 거기에 대한 긴장과 부끄러움에 잠시 발걸음을 돌려 층계참에 앉아 구글 번역기를 한참이나 들여다보았다.
'내 이름은 선우 킴, 한국에서 온 예술가다. 4월 4일에 입주가 예정되어 있는데, 택배 문제로 오늘 확인하러 왔다.' 라는 문장을 입 속에서 한참을 굴려보다가, 드디어 결심을 하고서 일어나 인터폰을 버튼을 눌렀을 때 마침 누군가가 레지던시 입구에서 나왔고, 내게 들어올거냐고 물어봐준 덕분에 나는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결심이 무색하도록 너무나도 쉽게 리셉션으로 입성했다.
리셉션에는 하얀 티셔츠를 입은 건장한 남자가 앉아있었고, 리셉션으로 다가오는 안색이 좋지 않은 나를 발견한 그는 얼굴에 물음표가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에게 나는 아까 인터폰으로 하려던 말을 폭포처럼 쏟아냈다.
그는 내 말을 채 다 듣기도 전에 내 이름을 알아 듣고는, "이메일로 우리 이야기 나눴었지?" 하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아 이 친구가 프레드였구나. 나는 소포에 대해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오늘 이곳 로비에서 얼마간 기다려도 괜찮은지 물어봤다. 그는 얼마든지 기다려도 된다며, 다만 택배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으니 자기한테 맡기고 돌아가도 괜찮다고 이야기 했다. 나는 억지 웃음을 지으며 혹시나 내가 택배를 받지 못할까 봐 너무너무 불안하다고 말했더니,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원래 프랑스 택배가 좀 그래!"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원래 그렇다'는 그 거부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나도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 밖에.
먹은 게 없는 데다가, 스트레스까지 잔뜩 받은 상태에서 나는 그렇게 리셉션의 등받이 없는 소파에 앉아 박준의 산문집을 읽으며 내리 네 시간을 버텼다. 그 사이 프레드는 점심을 먹으러 다녀왔고, 그의 동료들이 리셉션을 지켰으나, 리셉션을 오가는 직원들과 예술가들만 보였을 뿐 내 소포와 연관되어 보이는 사람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어떤 괴로움이든 그것을 충분히
다 괴로워한 후에야
비로소 끝이 나는 것일 테니까요.
<계절산문> 중, 박준
결국 오늘도 소포는 오지 않았다. 아, 이 괴로움의 충분한 끝은 어디란 말인가.
우여곡절 끝에 소포를 정상적으로 받게 되던지, 아니면 바람과는 달리 소포가 한국으로 반송 되어 내가 이미 가지고 있었던 것들과 최대한 비슷한 물건들을 현지 조달 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될런지.
리셉션의 불편한 소파에서 버티다 못한 나는 결국 소포에 붙을 관세에 필요한 얼마간의 돈을 프레드에게 맡겨두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과연 4월 4일 레지던시 입주 전까지 어떤 결론이 나긴 할까?
계획했던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일은 괴로운 일이다.
이렇게 멋지고 매력적인 도시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잊게 할 만큼.
따지고 보면 인생을 즐겁게 살아간다는 일 자체가 그 가혹한 러시안 룰렛과도 같은 운명과 매 순간 결투를 벌여 크고 작은 승리를 쟁취해 나가는 일 아니던가. 마음의 문제는 거기서 발생한다.
그러나 작은 위안이 되는 것은, 그 어떤 괴로움이던 결국 마지막에는 그 나름 매력을 가진 결말이 있고,
나중에 돌아보기에 썩 나쁘지 않은 추억이 된다는 거다. 그러니 괴로울 때는 충분히 괴로워 하자.
이 괴로움의 끝이 가져다 줄 썰물과도 같은 시간을 기대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