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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Mar 30. 2022

메이드 인 프랑스

자다가 새벽에 두세 번은 깬 것 같습니다. 

꿈속에서도 소포를 잃어버렸고, 결국 영영 찾지 못하는 꿈이 반복되었습니다. 

그렇게 깰 때마다 비몽사몽 하며 송장번호를 크로노포스트에 입력했고, 거기에는 여전히 배송 예정이라는 글씨가 프랑스어로 쓰여 있었습니다. 제대로 발음할 수는 없었지만, 이제 아마도 '배송 예정'이라는 프랑스어는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침이 되어 메일 알람이 왔고, 프랑스어로 된 그 문장을 번역해 보니 한국으로 반송된다는 내용이 쓰여 있었습니다. 어제 배송을 한다더니, 어제 하루 종일 코빼기도 보이지 않고, 이제는 아무 이유 없이 한국으로 돌려보낸다니 아주 기가 찰 노릇이었지요. 


이른 시간이었지만 프랑스어가 가능한 M에게 급히 연락을 해 전화를 부탁했습니다. 반송이 되기로 했다면, 잠깐만 소포를 어디 맡아 달라고, 오늘 내가 직접 찾으러 가겠다는 이야기를 전해달라고요. 그 전화가 오가는 몇 분이 굉장히 길게 느껴졌습니다. 


잠시 후 제게 전화를 건 M은 침통한 목소리로 비보를 전해주었습니다. 이미 어제 월요일에 반송이 시작되었다고, 그래서 소포를 찾으러 갈 수 없으며, 무언가 착오가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튼 소포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여정을 시작했다고요. 


소식을 듣고 잠시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오히려 단단히 체했던 무언가가 쑥 내려가는 상쾌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원했던 방향은 아니었지만, 번민하던 일이 이렇게 단번에 해결되었다는 사실이, 이제 이 고민을 끝내고 비로소 다른 방향으로의 답을 찾아 나설 수 있는 준비가 되었다는 사실이 유쾌하게 느껴졌습니다. 

괴로움을 끝내기 위한 괴로움은 충분했고, 덕분에 프랑스의 우편 시스템을 마음껏 험담할 수 있는 자격이 생기기도 했고요.






오후에는 지하철을 타고 파리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는 화방을 찾아가 시험 삼아 둘러보았습니다. 눈에 띄는 재료와 도구들은 그동안 익숙하게 사용해 왔던 것들과 다소 다르고 낯설었지만, 오히려 새로 이사할 집에 들여놓을 새 가구들을 고르는 기분이 되어 마음이 가뿐했습니다. 새 집에 들어갈 중고는 저 하나로 충분하니까요. 


이제 원래 사용하려던 재료와 도구들을 전혀 사용할 수 없게 되었으니, 앞으로 프랑스에서의 작업들은 정말 프랑스에서 구한 원료(?)들로만 이루어진, 순도 백 퍼센트의 'MADE IN FRANCE'가 되겠네요. 이제야 비로소 프랑스에서의 진짜 여정이 시작 된 것 같습니다. :) 



프랑스판 호미화방 <Rougier & 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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