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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Apr 01. 2022

파리에서, 4월의 첫 날



파리에서 맞이하는 4월의 첫 날.

짐을 잃어버린 뒤 홀가분한 마음으로 루브르 미술관도 가고, 파리지앵보다 파리에 대해 더 속속들이 알고 있는 멋진 안내자와 함께하는 시내 워킹투어도 다니면서 아주 천천히 파리를 알아가고 있습니다. 

보통 사흘, 길면 일주일 머무르며 번갯불 콩 볶아먹듯 도시의 스팟을 도장깨기 하듯 격파하는 조급한 여행자가 아닌, 임시 거주자로서 가질 수 있는 속도의 특권을 누리고 있어요. 

가끔은 그 특권에서 오는 나태함이 혹여나 이 멋진 기회에 대한 기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되지만 지금 여기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속성 속에서 느끼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을 온전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술래잡기 하듯 굳이 애써 무리하게 좇지 않으려 합니다.








아직 입에서 나오는 프랑스어라곤 '메르씨' '봉쥬흐' 뿐이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길눈이 익어 이제는 숙소 근처에 오면 구글맵을 꺼내지 않아도 되고, 망설임 없이 지하철에 올라타는 빈도도 눈에 띄게 늘어났습니다. 익숙해진다는 건 처음의 신선함과 설렘의 눈부신 빛깔이 조금 옅어지는 대신, 불안과 긴장의 농도 또한 그만큼 희석된다는 의미겠죠. 물론 고작 삼 개월 안에 능숙한 파리지앵이 되기는 어렵겠지만, 어느 정도 이 도시에 익숙해진다손 치더라도 떠나는 그 날 까지의 하루하루가 빠짐없이 올 한 해에, 서른 다섯의 시간 속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들로 기억될 일이 의심의 여지 없이 분명합니다.  


파리에 처음 도착했을때, 외투를 괜히 가져왔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따뜻했던 날씨는 몽마르뜨르 언덕을 쏘다녔던 3월의 마지막 날 진눈깨비로 시작해, 4월의 첫 날 아침에는 함박눈을 흩뿌리며 하얀 입김이 나올 정도로 하늘은 낮아지고, 공기는 차가워졌습니다. 눈이 잘 오지 않는 파리에서는 흔하지 않은 일이라고 합니다. 흔치 않은 나날들입니다.







아침이면 긴 시차 덕분에 떠나온 곳에서 전해진 밀물처럼 쌓인 소식들과 이런저런 공과금, 월세와 일에 관련된 연락들에 답을 하고, 대충 머리에 물을 뭍히고 다락을 내려가 골목의 작은 카페에서 프랑스 사람들 틈에 섞여 바에 서서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 속에 섞여 있는 일이 오히려 안도됩니다. 이해할 수 없기에 낯설지만 포근한 음율처럼 들리는 나직한 그들의 목소리가 이방인에게는 작은 위안이 되는 법입니다.  


2022년 4월 1일, 파리 16구 6층 하녀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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