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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Apr 03. 2022

Mon Paris!

파리에 눈이 오던 날


어제는 날이 어두워 질 때 까지도 금방 녹는 눈과 차가운 비와 바람이 세차게 내렸습니다. 

그저께 진눈깨비 속에서 벌벌 떨며 몽마르뜨 언덕을 오르던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아 문 밖으로는 한 발짝도 나갈 생각 조차 하지도 않고, 그저 다락의 창가에 기대서서 16구의 예쁜 골목과 지붕, 굴뚝 사이로 비행하는 눈송이를 가만히 지켜보는 일 만으로도 마치 크리스마스가 다가온 양 마음에 오색전구가 들어왔습니다.


오후에는 장을 보러 센강 남쪽으로 다녀왔습니다. 이곳 사람들은 우산을 잘 쓰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장마처럼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일이 흔치 않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날씨가 이유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거추장스러운 우산을 드는 대신, 날씨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기로 합니다. 부슬비만 만나도 우산을 펴 왔던 저도, 어쩐지 우산을 펴는 일이 외지인임을 티 내는 일인것만 같기도 하고, 오히려 눈과 비를 맞는 일이 마치 목마른 식물에게 뿌려진 단물처럼 상쾌한 기분이 들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흐넬르 다리를 건너, 에펠탑과 자유의 여신상 사이를 당당하게 걸었습니다. 아무 날씨 속에서 아무렇게 걷는 일이 이렇게 유별날 일 입니다. 





돌아오는 길에 와인을 파는 '니콜라스'라는 가게에 들어가 샴페인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백발의 친절한 주인은 어떤 맛을 선호하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샴페인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달달한 느낌이면 좋겠다고 대답했더니 곧바로 자신 있는 표정으로 몇 종류의 샴페인을 보여주었습니다. 와인은 포도로 만들어진다는 지당한 사실 정도를 아는 일이 와인에 대한 제가 가진 지식의 거의 전부였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적당한 가격의 샴페인을 손으로 가리켰습니다. 가게 주인은 바스락 거리는 종이 포장지로 샴페인 병을 감싸며 "누군가에게 선물할 건가요?"라고 물었고, "For me!"라고 대답하자, 그는 함박 웃으며 축하한다고, 좋은 하루 보내라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샴페인을 처음 따는 순간의 기분좋은 파열음은 이틀 뒤인 월요일, 시떼에 입주하는 첫 날 밤에 작업실에서 듣게 될 것입니다. 

프랑스어에는 '몽mon'으로 시작하는 단어나 지명이 흔합니다. 프랑스어에 대한 지식이 전무해 여기저기 찾아보니, 몽mon은 대개 '나의'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합니다. 몽(mon) 아미(ami)는 '나의 친구', mon monde는 '나의 세상', mon amour '내 사랑'.. '몽'의 뜻도 뜻이지만, 어쩐지 입 안에서 발음을 굴려보기만 해도 몽글몽글한 애정이 듬뿍 담겨지는 꿈夢결 같은 형용사 입니다. 물론 몽마르뜨의 몽mont은 언덕을 뜻한다고는 하나, '몽'의 둥글몽글한 뉘앙스가 담긴 프랑스의 지명과 단어들은 어쩐지 분명히 깨어 있는 시간 속에서도 꿈을 꾸게 합니다. 그런 멋진 기분이 평소에는 알콜을 입에도 대지 않는 나로 하여금 니콜라스의 문을 열게끔 인도한겁니다. 꿈꾸는 도시에서 꾸는 멋진 꿈들을 위해, 

Mon Paris, À notre santé!


2022년 4월 2일, 파리 16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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