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시작하는 소박한 드로잉 프로젝트
서울에서도, 이곳에서도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야 쉽지만 그 뒤가 문제입니다. 옷을 갖춰 입고 밖으로 나가는 일은 여전히 적지 않은 의지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아침 햇살이 포근하게 감싸는 센 강변의 아름다운 풍경과, 맛있는 커피와 크루아상이라는 보상은 그 작은 시험을 결국 이겨낼 수 있게 해 줍니다.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주는 작은 용기와 위안. 어쩌면 우리가 삶이라는 거대한 시험을 버텨낼 수 있도록 지탱해 주는 것은 어떤 화려한 보상이나 대가가 아니라, 사소하고 평범한 수많은 계기들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술가는 작업을 통해 스스로에게 상처 주고, 그러나 그로 인해 결국 위안을 얻는 일을 반복하는 사람들입니다. 그 작업의 주제가 세상을 향해있던, 자신의 내면을 향한 자기 고백이던, 작업을 수행하는 모든 형태의 일들은 그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잠들어있던 모든 기억과 감정, 감각을 끌어올리는 일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이미지라는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을 작업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완결된 형태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작업을 하는 이들은 스스로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곳에서 나는 완결된 형태나 결과물을 추구하기보다는, 그 '번역 과정'에서 다양한 언어를 사용해보는 연습을 통해 나 자신과 서로 풀지 못하고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대화를 나누는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센 강변을 숨이 차도록 달리고 나서,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동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업으로 위안을 받는 이 시간을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곳에서만 가능한 그런 일이 있을까? 예술가들이 자신의 내면의 상처들을 과감하게 세상에 내어 놓는 방법으로 스스로의 치유를 실천하고, 결국 작업을 통해 타인으로부터 공감과 위안을 받는 것처럼, 그와 같은 계기를 누군가에게도 선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로잉이라는 저의 소박한 고백을 거쳐 누군가가 용기 내어 꺼내놓은 단 하나의 고민에 대해 작고 사소한 위로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주제넘은 나의 참견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안이나 위로 같은 이야기는 제쳐두고서라도, 모든 변화와 계기는 거기에 대한 질문을 세상에 꺼내놓을 때부터 비로소 시작됩니다. 나의 작은 참견이 누군가에게 작은 화두와 위안이 되기를 바라며.
2022년 4월 16일, 파리에서
<도도새가 전하는 위로> 프로젝트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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