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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doseeker Apr 21. 2022

시떼에서의 일탈

오픈스튜디오에서의 댄스파티



여기서 나는 보통 11시-12시면 잠에 드는데, 어제는 잠이 들락 말락 하던 시점부터 옆 방에서 큰 음악소리와 떠드는 소리가 들려와서 결국엔 반바지에 티셔츠를 걸치고 옆 방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이런 일로 두 번 항의한 적은 있었지만, 나의 이웃과 제대로 대화를 나눠본 적도, 이름도 알지 못했던 터였고, 단지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분이었다는 것만 확실했습니다. 


내가 노크를 하자마자 문이 열렸고, 내 이웃은 "암 쏘 쏘리!!!!" 하고 외치면서 나를 와락 안아주었습니다. 그녀는 몇 번이고 내 방에 찾아와 노크를 하고 사과를 하려고 했다며 무척 미안했다는 말을 쏟아냈습니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그저 "오.. 오케이"라고 대답했는데, 내가 더 이상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자신이 지금 오픈 스튜디오와 아래층에서 전시를 하고 있다며 얼른 들어오라고 잡아끌었습니다. 방에는 그녀 이외에도 두 사람이 더 있었는데, 그렇게 강제로(?) 입장하고 나서야 우리는 서로 통성명을 했습니다. 튀니지에서 온 수염이 멋진 영화감독, 핀란드에서 온 소설가, 그리고 설치미술가인 나의 이웃 소냐.(다른 분들의 이름은 잊어버렸습니다. 미안해요!) 소냐는 그들에게 나를 자신의 이웃이며, 자기가 본의 아니게 나를 괴롭혔다고 고백하면서, 하지만 이제 우린 친구라고 맥주를 한 병 내게 쥐어주며 신나게 자신의 작업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열정적인  설명이 끝나고, 나도 내친김에 "지금 내 작업실에 와 볼래?" 하고 그들 모두를 오후 12시가 다 되어가는 그 시간에 내 방으로 초대했습니다. 그들은 내게 시떼에 도착한 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이제 2주가 조금 넘었다고 이야기했고, 내 작업량을 본 그들은 내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핀란드 소설가는 내 어깨를 툭 치면서 "너는 좀 밖으로 나가야 돼."라며 웃었습니다.







소냐는 1층 마당에서 어느 작가의 작업실을 전시장 삼아 여러 작가가 의기투합해 단체전 겸 오픈 스튜디오를 진행하고 있다며 함께 내려가자고 제안했습니다. 내가 "난 이제 좀 자고 싶은데"라며 우물거리자 그들은 빨리 바지나 갈아입고 나오라고 재촉했습니다. (이 박력 무엇..)

결국 긴 바지로 갈아입고, 후드티 차림으로 복도로 나온 내게 소냐는 "해냈구나! 가즈아!!!!!!!!"라고 외치며 신나게 복도 끝으로 달려가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습니다. 어쩐지 난생처음으로 바지를 혼자서 입는 데 성공해서 감격에 겨운 칭찬세례를 받는 어린아이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1층의 마당과 바로 접해있는 8008호 스튜디오의 문은 활짝 열려있었고, 그 앞의 테이블에는 이미 수많은 빈 와인과 맥주병이 나뒹굴고 있었으며, 스튜디오 안에서는 전시가 아니라 댄스파티가 열리고 있었습니다. 인싸 중의 핵인싸인 소냐는 나를 데리고 다니면서 온갖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웃이고, 한국에서 온 작가라고 나를 소개해주었고, 그렇게 소냐가 자리를 깔아주면 나는 내 이름을 말해주고 인스타그램 맞팔을 했습니다. 몇 마디 대화보다 일단 서로의 작업을 확인하는 일이 작가들 사이에서는 가장 확실한 자기소개니까요. 나는 원래 심각한 신데렐라 증후군(10시가 가까워지면 집에 가고 싶어서 안절부절못함)이라는 불치병을 앓고 있는 데다가, 클럽 근처에도 가본 적도, 그런 종류의 즐거움도 모르는 유교 보이였기 때문에 쭈뼛거리며 어색하게 몸을 흔들고 있었는데, 인싸 중의 핵인싸 우리의 소냐는 그런 내가 답답했는지 "썬!!!! 인생은!!!! 한 번이야!!!!"라고 외치며 나를 댄스머신들이 벌이고 있는 광란의 춤판 한가운데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물론 춤이란 건 쿵작과 장단이 맞아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얼마 못가 나는 퇴출(?) 되었고, 혼란한 상황을 틈타 새벽 2시가 되어서야 숙소로 돌아와 잠에 들 수 있었습니다.





더 어렸을 때는 이런 일들을 어쩐지 온전히 즐기지 못하는 나 자신이 부끄럽고 답답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고, 그런 일들을 멋지게 즐기는 사람들을 무척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가진 것들을 조금 더 소중하게 여기는 일에 집중했던 것 같습니다. 가끔은 그것이 어떤 한계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소냐의 말처럼 '인생은 한 번'인 만큼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일에 지금처럼 온 힘을 다 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오늘과 같은 멋진 일탈은 (너무 자주만 아니라면) 언제든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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