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떼 입주한 지 벌써 2주. 사실 '벌써'라는 말을 붙이기 조금 어색할 만큼 시간은 천천히, 그러나 그 흐름이 아쉽게 느껴질 만큼 빠르게 지나갔습니다. 일상을 보내는 데에는 꽤나 익숙해졌는데도, 잠에 들고 잠에서 깨는 일이 여전히 어색함은 아마도 날이 저물 때마다 그 아쉬움의 감정이 하루만큼 늘어나기 때문일 것입니다.
4월 중순에 접어든 파리의 아침은 살짝 쌀쌀한 기분이 들 정도로 조금 움츠러들게 되지만, 햇볕이 쏟아지는 거리를 조금 걷다 보면 이내 몸이 덥혀집니다. 봄의 새 잎으로 단장한 연녹색 이파리들이 흔들리며 여린 아침의 햇살을 잘게 부서뜨려 오래된 돌 타일 위로 흩뿌리는 이른 아침에 생루이 섬과 시떼 섬을 잇는 작은 다리를 오가며 걷거나 가볍게 뛰는 일은 단언컨대 이곳에서 아침을 시작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일 것입니다.
시떼에는 정말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모여듭니다. 나와 같은 시각 예술가부터 시작해서, 춤, 시와 소설, 음악, 미디어 등등 예술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든 기회가 열려있는 곳입니다. 이런 큰 규모의 예술인 인큐베이터를 국가에서 운영하고 있으니 파리는 세계의 예술가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들게 할 만한 차고 넘칠 매력을 가진 도시라고 할만합니다. 파리의 예술 관련 기관 및 전문가와의 교류에 방점을 두고 이곳으로 떠나온 예술가들은 그들의 활동으로 하여금 이곳의 문화다양성과 새로운 예술 관련 정책에 영감을 주게 될 것이고, 예술가 개인에게 있어서도 작가로서 개인적인 역량의 성장 이외에도 새로운 계기나 기회를 충분히 만들어 볼만한 멋진 환경임에 틀림없습니다. 장점을 늘어놓았으니 굳이 단점을 꼽자면.. 소음에 예민한 사람이라면 상황에 따라 본의 아니게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는 점. 옆방에 입주한 작가는 음악 관련 분야 종사자인지, 아니면 그냥 파티 중독자인지는 모르겠지만 종종 밤늦게까지 음악을 틀고 여럿이 떠드는 통에 찾아가 항의도 해봤지만 며칠 뒤 또 난장판을 벌이기에, 결국 레지던시 운영진에 직접 문의하기도 했습니다. 시떼에 처음 입주할 때 받는 안내문에는 입주자들이 지켜야 하는 규칙이 항목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데, 오후 10시 이후에 다른 거주자들이 불편해할 소음을 유발하면 제재한다는 냉혹한 경고도 쓰여 있습니다. 물론 예술가들이 그걸 곧이곧대로 지키는 게 더 이상한 일이긴 하지만요. 아무튼 그렇게 신고(?)한 뒤로는 어느 정도 조용한 분위기를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역시 낮 시간에도 작업실의 열린 창문을 넘어 둔탁한 베이스 소리와 노랫소리,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가 하루 종일 들려옵니다. 지금이야 조금 신경 쓰이고 왜 저럴까 싶을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장담할 수 있는 확실한 한 가지는, 내가 사랑한 파리의 봄 날씨만큼이나 이 수많은 종류의 소음 또한 언젠가는 그리워하게 될 거라는 사실이겠죠.